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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님

나사르 본주 2022. 10. 1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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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맏물민물 가재 먹는 날

 

 

 

함께 처마에서 비를 피하던 사람이 손가락에 들고 있던 담배를 튕겼다. 확 뿌려진 불티가 낙숫물에 가라앉았다. 물이 불을 지지는 소리. 이곳은 지대가 낮아 이미 발밑이 진흙 웅덩이였다. 정강이를 꽁꽁 싸맨 장화여서 망정이지 캔버스화를 신은 옆 사람은 바짓단이 죄 젖어 있었다.

아드니엘이 에이버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척 흔한 일이었지만 집 바깥에 혼자 서있는 건, 그러니까 에이버리를 생각하며 곁에 있지 못한다는 건 여전히 외로운 일이기도 했다.

아드니엘은 이미 십여 분 전부터 여길 떠나고 싶었다. 옆 사람이 잘 포장된 담배를 뜯어 한 까치 물 때부터 그랬다. 아드니엘은 상대에게 라이터가 없기를 바랐지만 눈치 보더니 지팡이 끝으로 불을 붙이는 게 아닌가. 그는 울컥했다. 마법사 주제에 저런 멋없는 공산품을물론 그의 개인적인 불호였다. 아무리 마법사래도 기호품은 이렇게 구매하는 게 보통이다.

그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 않고 있는 건 오로지 에이버리의 신신당부 때문이었다. ‘거기서 기다려요, 딴 데로 가지 말고.’ 그것이 바로 이 팻말 밑이라고 덧붙였고 아드니엘은 에이버리가 한 말뜻을 굳이 널찍하게 해석하지 않았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빌미 삼아 놀림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예컨대 거깄으랬더니 딴 데 가 있었던 강아지라든가말이 되나? 아드니엘은 자신의 객관적인 신상정보를 에이버리의 평과 대조할 때마다 부끄러웠고, 미묘해졌다. 싫다기에는 좋은 것에 가까웠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분.

하여간 옆 사람이 세 대째 줄담배를 시도하고 있었으므로 아드니엘은 처마에서 나왔다. 뒤집어쓴 후드 위로 물줄기가 툭툭 떨어져 금세 스몄다.

에이버리가 도착한 건 바로 그때였다.

아드~!”

포도(鋪道)에 괸 물기를 죄 휘발시킬 것 같은 활기였다. 이 거리는 불룩한 언덕의 아랫부분이었고, 에이버리는 처마에 가려진 아드니엘이 불쑥 나왔을 때부터 그를 보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데서 튀어나오는 남자를 목격한 게 놀라운 표정이었다. 에이버리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거기 있었어요?”

아드니엘은 저 활달함을 칭송하려다가 말을 잃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이 여기라고 했잖습니까.”

아닌데. 식당에서 보자고 했는데? 문자 안 봤죠?”

.”

아직도 이 휴대기기를 거들떠보지 않는 건 아드니엘의 약점이었다. 애초에 연락할 사람도 많지 않고, 일적인 연락은 더 익숙한 수단이 있으니까. 이것을 쥐여준 장본인인 에이버리조차 내 전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단지 꺼내 보는 게 익숙지 않을 뿐 늘 부적처럼 지니고 있기는 했다. ‘에이버리 전용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드니엘은 기계의 원리를 채 다 이해하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마법이 아니라는 것만 알 뿐이지.

[끝내주는 중식당 발견 ^V^]이라고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드니엘은 문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삐딱하게 하여 에이버리를 쳐다봤다. “어디서 만나자는 얘기는 아닌데요.” 에이버리는 당당하게 대꾸했다. “요 앞에 바로 있으니까 당연히 가 있을 줄 알았죠.”

확실히 눈에 잘 안 띄는, 허름한 녹색 간판이 있긴 했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아드니엘로서는 읽을 수 없는 표의문자였다. “이라고 에이버리가 말했다. 그는 유학한 학자이기도 했으므로 번역 문제를 마주칠 일이 많았는데, 동아시아의 이 개념을 아드니엘에게 설명해주기는 조금 까다로운 문제였다. 때문에 짧은 발음만 주워들은 아드니엘은 bokk이구나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저 간판이 이 식당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에이버리도 들어가서야 알았다. 주인은 이곳으로 이주한 중국계 마법사였는데, 대체 어디서 듣고 찾아왔냐는 듯 의아한 얼굴이었다. 시커멓게 키 크고 서구식 미인의 자태가 흐르는 두 남자는 아시아계 마법사 무리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천장이 낮고 보도블록에서 약간 꺼진 듯하게 자리한 문을 밀어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여타 마법적 장치는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발 들일 수 있었다. 아드니엘은 낯선 장소에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리고 그 자신이 버릇 들인 대로 삼엄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에이버리는 짧은 중국어를 살려 가게 주인에게 2인 만찬이 되겠느냐고 묻고 있었다. (평범한 중식당은 예약해야 가능하겠지만, 여긴 아니니까.)

아드니엘의 수확은 이랬다. 주인 한 명, 주방장과 조리 보조로 추정되는 소년, 그리고 공기 중에 떠도는 매운 냄새.

물론 그가 아시아 음식에 무지한 건 아녔다. 가끔 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푸드트럭에 들르기도 했다. 오로지 저녁을 차릴 시간이 없을 때만이었고, 아드니엘이 가리지 않고 먹는 모습에 에이버리는 어떤 감명을 받아온 차였다. 물론 에이버리의 감명받았어가 무슨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드니엘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엄청나게 매운 음식을 먹을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벽에 그려진 그림은 알고 보니 영화 스틸컷이라는 모양이었다. 에이버리가 자리에 앉기 전, 아드니엘이 겉옷 수발을 들었다. 레인 코트를 벗어 걸어 둔 그가 아는 영화냐고 물어보았다. “한 번 봤어요. 뭐였더라, 꽤 재밌었는데. 까마귀에 관련된 오래된 전설이 메인 스토리죠.” 에이버리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대꾸했다. 아드니엘은 자기 외투도 걸어두면서, 액자 안을 무상하게 바라보았다.

옥으로 조각한 뭔지 모를 동물인데, 마법적인 생물이겠지, 그는 무심코 생각했다. 에이버리는 그가 오해하는 걸 뻔히 알면서 정정해주지 않았다. 신화적 생물이란 때로 마법 생물과 비슷한 결이어서 실제로 생태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존재하기도 했다. 저 기린은 아니었지만.

에이버리가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그가 말했다.

, 무슨 음식이 좋아요?”

메뉴판은 당연하게도 중국어였다. 에이버리도 음차를 읽을 수 있을 뿐 전부 알지는 못했고, 사진조차 없었다. 복불복이라. 그는 이런 유의 도박을 좋아했다, 특히 아드니엘이 무언가 선택하게끔 종용하는 데에는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위해 저녁 메뉴를 고르며 인상을 쓰는 모습이라거나.’ 흐뭇하게 떠올리고 있는데 아드니엘이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짚었다. 눈동자가 방황하는 걸 보아하니, 뭔지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마라롱샤 꼬리였다. 에이버리는 잠시 고민했다. 머리 떨어진 민물 가재가 동그랗게 말려 있는 시각적 자극을 아드니엘이 견딜 수 있을까? 아니, 더한 것도 많이 봐온 데다 바닷가재를 봐왔으니 괜찮을 테지만, 그걸 입에 넣을 수 있을까? 에이버리는 본토에서 이 요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식욕이 약간 달아났던 걸 상기했다. 조그매서 오히려 벌레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었다.

맛이 좋아서 결국엔 잘 먹었지만.

어쩌면 재미있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에이버리는 사고 치기 전 눈치를 보는 고양이처럼 아드니엘을 흘긋 올려다보았다. 아드니엘은 이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만 그냥 눈감아주기로 했다.

복이라는 건요,”

에이버리가 또다시 말을 돌렸다. 횡설수설함은 그가 들떴을 때의 버릇이었고 아드니엘은 이런 순간을 좋아했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빗소리가 들렸다. 그치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아까 그 사람은 아직 담배를 피우고 있을까. 떠올려 보면 이 식당의 고객이었을지도. 미묘하게 향신료 냄새가 났으니 말이다. “그냥 같은 게 아니에요. 굿럭이라고 번역하는 건 게을러요.” 에이버리의 말은 퍽 유창한 학구적 향기를 풍겼다. 아드니엘은 맞장구쳐주듯 대꾸했다. “그럼 뭐죠?”

눈앞의 점술사는 그냥 빙긋 웃었다.

음식이 나왔을 때 에이버리는, 눈을 감고 턱을 괸 채 식탁을 두들기고 있었다. 색이 밝은 나무로 만들어 유리를 씌운 식탁은 이날 습도 탓에 차갑고 축축했다. 옷깃에서 떨어진 물방울을 손끝으로 집어 빙글빙글 돌리는 일은 쉽게 지루해졌다. 습한 훈풍과 동시에 음식 냄새가 풍겨 눈을 뜨니, 아드니엘이 접시를 받아들고 있었다.

냄비에 잔뜩 흩뿌려진 붉은 민물 가재(반토막) 수십 마리가 그를 맞이했다. 에이버리는 아드니엘의 표정이 미미한 당혹으로 물드는 걸 즐겁게 지켜보았다. “이거 괜찮죠?” 에이버리가 짓궂은 물음을 던졌다. “.” 아드니엘이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은 걸 그는 예리하게 포착했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따뜻하게 덥혀져 나온 접시를 만지며, 에이버리가 손수 음식을 덜어주었다. 미적지근하게 열 오른 국자가 뜨겁다며 호들갑을 떠는 게 유쾌한 기색이었다. 에이버리가 앞에 그릇을 놓아주며 말했다.

식혀 먹어요. 아까 영화 얘기했었죠?”

……. 뜨겁네요.”

여기에 이라고 걸려 있고, 아마 까마귀 때문일 거예요.” 에이버리가 자기 몫의 마라롱샤를 젓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그러고 보니 아드니엘에게 포크를 줘야 할 것 같았다. 먹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가 계속 말했다. “중국에서 까마귀는 길조거든요. 복을 불러온다는 거죠.”

이라는 건?”

삶의 충만함잠시 반짝이는 행운과는 달라요. ‘행복과도 약간 다른데먹을 복이 있다라고 하면, 죽을 때까지 굶지는 않겠다, 뭐 이런 의미인 거예요. 좋지만은 않죠?”

의미심장한데요.”

, 정말 괜찮아요? 표정이 안 좋네.”

제 표정은 원래 안 좋습니다.”

말은 잘한다니까. 아무튼, ‘행운보다 지속적이며 불변하고, ‘행복보다는 처량한 개념이라고 봐야겠죠. 실은 그 긍정성보다도 소망하는 행위에서 서양과 맞닿아 있고.”

대강 이해했습니다. 에이버리, 혹시 이 가재는 먹는 겁니까?”

까는 법 알려줘요?”

아뇨, 그냥 알아서 하죠.”

다리가 징그럽죠?”

…….”

아드니엘이 한숨을 쉬었다. 복이고 뭐고 입맛이 떨어진 표정이었다. 애초에 그가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는 것도, 에이버리는 이미 알았다. 에이버리가 즐거운 얼굴로 면을 덜어주었다. 김이 폴폴 나는 게 팔팔 끓인 옥수수면이었다.

그러니까, 이 가재를 먹는 처량한 당신 표정이 보고 싶네요.”

이게 본론이군. 아드니엘이 퍽 우아하게 젓가락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 에이버리는 단지 그 손길의 처연함에 감탄했다. 그냥 먹기 싫은 걸 입에 집어넣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상했다. 게다가 젓가락질을 못 하지도 않았다. 서툴렀지만.

말하자면 아드니엘은 뭐 씹은뚱한 얼굴로 가재를 아그작거리고 있었다. 귀여웠다.

행운보다 지속적이고, 불변하며, 도박에서 잡는 승기보다 지루하지 않은 것. 에이버리는 스승에게서 의 개념을 이렇게 알아들었는데, 그것을 숭상하는 일이 더는 낯설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 딱딱하다면서도 결국 사주는 것을 먹는 저 이를 보는 일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느껴서였다.

음식이 끓는 기운을 상실해갈 무렵 비는 그쳐있었다. 까마귀 말고 흰 비둘기가 창가에서 깃을 고르고 있었다만, 이곳은 영국이니 그럴 만도 했다. 에이버리는 그제서야 음식에 입을 댔다.

매운맛이 제법 기호에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