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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ㄴ님

나사르 본주 2022. 11. 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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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를 아교 삼아 낙원

여덟 가교 목도

 

 

 

 

티누아 니티스 나인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등에 달린 곤충 다리 같은 갑각 마디가 축 늘어진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평소 촉수나, 바르작거리는 벌레 따위를 연상케 했던 그것이 광배의 일식, 먹으로 묘사한 금빛 같았다. 젠은 벌벌 떨었다. 신의 죽음보다, 저 광휘가 떨어져 버릴 것이 두려웠다. 티누아 니티스 나인을 신성한, 확언하는 자로 만들던 저 다리 말이다.

.”

그는 더듬지도 않았다. 어느 시절에 젠은 눈물 흘리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때 그의 꽉 다물린 잇새와 일그러진 눈썹은 목놓아 우는 사람의 것이어서, 되레 마른 얼굴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나인의 가슴팍에 은 탄환을 박아 넣은 자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총검을 떨구고 도망치는 발소리가 들렸다. 젠은 뒤따라가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나인의 생명이었다. 이이가 살아 있지 않다면 복수건 뭐건 소용없다, 애초에 그럴 의리를 가진 사이가 아녔다. 살아서, 서로를 증명하는 이야기 속에 둘은 머물러 있었고 이제 나인은 잉크를 저버리려 하고 있었다.

젠은 배신감을 느꼈다. 나인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거미 다리가 파들파들 떨리며 젠의 목 언저리를 긁었다.

당신 피가 나더러운 게 내 옷을 적시잖아요.”

네 피야.”

나 죽나 봐.”

아니야.”

들어봐, 나 지금 죽어가요. . 아니, 들어.”

젠은 차마 나인을 놓지 못했다. 귓바퀴에 스미는 한기처럼, 나인이 속삭였다.

이 죽음은 징표야. 우리가 하나 된다는 거지. 드디어 한 몸이 되어서 사는 거야

차라리 황홀하다고 할 만한 목소리였다. 젠은 거기에 도취 당한 것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나인을 끌어안고 어깨를 붙든 손에 으스러뜨릴 것 같은 힘이 들어갔는데, 나인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듯 텅 빈 눈을 하고 있었다. 이미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걸, 젠은 깨달았다.

너는 나를 눌러 죽이지 않을 거야.”

 

죽여버려요.”

나인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젠은, 이제 고철 덩어리에 불과한 샹들리에에 집 지은 거미를 두고 쩔쩔매고 있었다. 거미줄이 점점 두터워지고 거미가 알을 깔 듯 몸이 부풀어 처리해야 했는데, 빗자루를 든 젠은 차마 거미를 눌러 터뜨리지 못했다. 나인이 별 웃긴 꼴을 다 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그가 물었다.

설마 이런 생각 해요? ‘그래도 네 동족인데.’”

이런 축생과 너는 달라.”

오 이런. 잠깐, 죽이지 마시고.”

젠이 마음 먹고 벌레를 내치려는 순간, 나인이 벌떡 일어섰다. 그가 여태 앉아 있던 벨벳 쿠션이 붙은 의자에서 먼지가 폴폴 날렸다. 둘은 새집을 대청소하는 중이었다. 시시각각 추적자가 늘어 거처를 옮길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의 끝에 종종 피난처로 쓰던 을 사용하기로 작정했다.

하필 여기에서 거미가 대를 잇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쉬운 일이었을 거다. 젠이 찡그리면서 나인을 흘겨보았다. 나인은 어딘지 황홀한 눈으로 다가와서 손을 뻗었다. 하얀 손톱 위에 거미가 다리를 펼쳤다.

젠은 멍하니, 거미와 거미가 만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를 목격하는 순간 사람은 다른 생각을 죄다 잊어버리는 법이다. 천지창조의 우스운 변주처럼 축생의 신과 축생 자체가 손가락을 맞댄 모습은 젠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나인은 지금 제대로 홀려 있었다. 이 작고 버르장머리 없는, 수태한 벌레를 아기 다루듯 조심스레 손바닥에 얹었다.

이것 봐. 아름다워.”

과부 거미였다. 등에 독특한 붉은 무늬가 있었다. 젠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렸다. 과부 거미 수컷은 아무런 이유 없이 늙고 생식능력이 떨어지는 암컷에게 끌린다. 젊은 암컷을 기피해 성숙한 개체에게 다가간 수컷은 굳이 그녀에게 잡아먹히는 길을 택한다. 이것은 죽음에 관한 본능적인 충동이다. 우리는 벌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수컷 사마귀나 과부 거미 같은…….

오로지 인간만이

오직 우리만이 신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젠은 철석같이 믿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불신자가 된 지금 그게 완전 거짓말이란 걸 알았다. 저 광경을 보라. 신과 신자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젠은 입을 열어 당신 지금 아름답다고 말하려 했다. 죽음을 개의치 않고 홀린 수컷처럼, 너는 버러지마저 미학을 갖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나인이 거미를 확 움켜쥐었다. 주먹 쥔 손안에 그 과부 거미가 있었다. 젠은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젖빛 유리처럼 뿌옇고 차가운 웃음소리가 굴 안을 쟁쟁하게 울렸다. 박쥐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젠이 뭐가 그리 웃기느냐고 물었다. 발치에 긴 빗자루를 떨어뜨린 채였다. 나인이 웃음을 이기지 못해 힉힉대는 호흡으로 대꾸했다.

아니이, 그렇잖아. 이게 날 동족이라고 착각한 거야. 내게 그런 페로몬이 있나 봐요.”

손 줘.”

.”

통통한 벌레를 터뜨린 탓에 끈적한 물기와 거무죽죽한 얼룩으로 젖은 손바닥을 젠은 아무 말 없이 닦아주었다. 자기 옷깃으로. 나인은 그게 또 우스운 모양이었다. 자꾸 재미난 걸 본 양 굴기에 젠이 뾰족하게 지적했다.

뒀으면 내가 놔줬을 텐데.”

뭐 하러?”

나인은 진짜 궁금하다는 듯 의아한 투로 되물었다. 그 투명한 대꾸에 젠은 아무 말 할 수 없어졌다. 사실, 알량한 자비가 아니고서야 한낱 버러지 따위를 살려둘 이유는 없다. 젠의 시선이 축 처지는 걸 보던 나인이 슥 미소 지었다. “아하, 알았다.” 나인이 말했다.

이게 새끼를 품고 있었죠? 쥐고 나서야 알았어.”

나인은 멋대로 이야기했다. 젠은 그냥 들어주었다. 저 치가 지어주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늘 그럴듯한 기억이 완성됐고 그는 그걸로 만족했다. 감정과 이지를 의탁하기만 하면 되었다.

마치 계시받는 듯.

알을 밴 걸 알았다면 안 죽였을 거야. 대를 잇는 게 중요하거든, 우리 같은 건.”

묘하게 들리는 어휘였다. 젠은 자식을 맞이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인은 이번에는 좀 짜증스러운 듯 턱을 치켜들었다. 그가 등 뒤에서 다리 하나를 스르륵 꺼냈다. 그것이 젠의 턱을 툭 찔렀다.

.”

나인이 말했다.

 

비가 죽죽 긋는 날이다. 붉은 황토가 수렁이 되어 발목을 붙잡았고 추적자들조차 곤란을 겪고 있었다. 무기를 버린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젠은 막 생각을 바꾸었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그들을 죽이러 갈 생각이었다. 그는 온몸에, 그러니까 검고 검은 장화부터 희디흰 팔뚝까지 온통, 독특한 붉은색으로 범벅이었다. 철분을 짙게 띤 흙이 물을 만나 움직일 때마다 탁탁 튀었다.

쓰러진 나인은 극심한 꼴이었다. 피와 진흙이 섞여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인이 중얼중얼 유언하는 동안 젠은 그보다 큰 빗소리를 들었고 물이 쌓여가는 땅 위에서 빨려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 썼으며 나인의 얼굴이 말끔하게끔 연신 뺨과 이마를 닦아주고 있었다. 해괴한 꼬락서니였다. 어쩌면 추레했고.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분께서는 열흘 밤낮 피와 땀에 절어서도 이 세기까지 추앙받지 않는가. 젠은 마지막 남은 신자로, 나인의 살갗에 향유를 바를 의무가 있었으나 이처럼 비가 내리니 아쉬운 일이었다.

나인이 젠의 뺨을 때렸다.

들었죠.”

…….”

기억해?”

.”

모르는 척하네…….”

나인이 훗 웃었다. 이제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젠은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대체 뭘.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어? 그러는 체가 아니라 진짜 몰라 난.

조금 전에 네 생각을 하긴 했어. 그게 다야. 아는 건 너밖에 없다고 그는 소리치고 싶어 입을 벌렸다. 빗소리는 시원하지 못하게 찰방찰방 떨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붉은 늪이 될 터였다. 숲의 중앙에 신묘하게 난 늪지대, 과부 거미의 등 무늬처럼.

고인 물에 새 비가 떨어져 좋은 풍경이다. 젠의 눈꺼풀에서 자꾸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차가워서, 눈물 같진 않았다. 찝찝한 짠맛이 나지도 않았고. 조금은 비렸다.

설령 금수래도 새끼는 죽이지 못하는 거야.”

본능이라고 나인은 말했다. 그런데난 여러 가지를 죽여봤거든…… 거기에는 새끼도 있었지. 그럼 난……. 젠은 그만 말하라고 했다. 어쩌면 넌……. 젠은 그만 말하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나인은 멈추었다. 신체 시계가 완전히 늘어져 태엽이 뚝 끊기는 순간 젠은 나인의 몸이 턱, 하고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말을 막아선 것이다.

신성이 육신을 벗으면 승천해 신이 된다. 그는 재림하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신이 죽으면 무엇이 되지?

짐승을 섬기는 부족의 이야길 들은 적 있다. 호랑이 곰 늑대 혹은 여우나 뱀이기도 했고그것들은 죽으면 사체를 곱게 미라 제조한 뒤, 다음 신을 삼는댔다. 대를 이은 새끼로 계승하는 예도 있고 사체가 썩어진 경우 나무나 돌을 깎아 숭배한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신앙은 주로 그러한 것들이며 마녀사냥에 잘 희생되었고, 배타적 사냥철은 동류의식을 고취시켜 신앙심을 키웠다.

젠은 나인의 시체를 안아 든 채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

어쩔까티누아 니티스.”

그는 일단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쌀쌀한 기온에 장마가 겹치어 적적한 날씨가 연이었다. 젠은 집으로 가는 대신 자연 발생한 바위 동굴을 찾아 앉았다. 그의 경로대로 피처럼 빨간 발자국이 뚝뚝 찍혔는데, 가량맞게도 진짜 핏방울은 한참 연해져 연분홍빛 물기에 불과했다.

젠이 불을 피우고 날을 지새웠음은 분명하다. 그 추운 밤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을 키워 사체를 태웠는가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제 욕망대로 거미 다리만 뚝뚝 꺾어 불태웠을지 모른다. 그쪽이 더 수분이 적기에 장작처럼 잘 타지. 반대로일지도 모르고. 인간의 몸이란 오래도록 보관하기에는 곤란하기 짝이 없으니까. 우리가 괴물이라고 나인은 말했고 나인의 이름을 잡아먹은 순간 젠은 저 처량한 버러지 갑각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쪽이건, 젠은 면구한 낯짝이었겠다. 둘로 나뉘어 티누아 니티스-나인이 된 그것들을 가지고서 요리하듯 지지고 볶았으니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장례를 치르기에 적합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부활할 신체神體를 망치기 싫었다.

그래서 일단은 횃불을 묶고, 드물게 벽화가 그려진 고매한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 편평한 곳에 티누아 니티스 나인을 누이고, 칼을 들어 올렸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울었을 것이다. 냉기뿐인 석반에 관짝도 없이 나동그라진 나인은 한낱 몸에 불과했기에. 젠은 살아생전 그런 오열은 겪어본 적 없었다.

그러나 착각일 뿐이다. 인제 와서 떠올려 보면 한갓 횃불 빛이 지나치게 영명했고 티누아 니티스 나인의 누더기는 새초롬한 잎사귀처럼 이슬을 맺고 있었다. 철분과 피의 달콤한 냄새가 섞인 좋은 향기가 났다. 기름 한 점 붓지 못했는데. 어찌 그랬겠는가? 나인을 내려다보는 천정의 시야에 비유하자면 광배의 일식, 먹으로 묘사한 금빛. 결코 저절로 떨구지는 않은 천국의 다리들.

증자로서 단언한다. 그때 티누아 니티스 나인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