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유어 오너(23.07.29)
올 유어 오너
이스마엘, 영어가 들렸다. 그는 부름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긴 행진 시위 중이었고 그의 강건한 육체는 쉽게 질리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한여름에 한 시간 넘게 걷고 있는 다른 시위자들은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이스마엘을 부른 ‘동지’도 마찬가지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선캡 밑의 얼굴이 일그러진 걸 보고 이스마엘은 피식 웃었다. “불렀는데 못 들었어? 저기서 누가 널 지켜봐.” 뭐, 흔한 일이었다. 스포츠 선수라는 건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고 알 사람은 다 알아서 선글라스를 써도 파파라치가 붙게 마련이니까…….
특히 동물실험 반대 시위 따위에 참여하고 있다면 더하지. 정경유착의 온상지에서 출두한 기자들은, 기업의 이익과 반대되는 이스마엘 카슨의 행동을 비난할 것이다. 그의 스폰 기업을 운운하면서. 상관없었다. 이스마엘은 오로지 실력으로 증명할 뿐이었고 그것이 스포츠의 좋은 점이다. 룰에 따라, 합리적으로, 그리고 정정당당히. (심판이 뇌물을 먹지만 않는다면!)
그는 여유롭게 선글라스를 벗으며 고개를 돌렸다. 군중 한가운데에서 빛을 받는 그의 얼굴은 반들반들하고 잘 가꾸어진 젊은이처럼 보였다. 실은 그리 젊지도 곱지도 않은데, 사람들은 그가 지닌 명예의 휘광과 외관을 착각하고는 했다. 저 남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손톱 사이를 바늘인지 은색 이쑤시개인지로 긁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이스마엘은 저 치가 어딘가에서 본 선수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 저런 압도적인 인상을 코트 위에서 마주했다면 잊었을 리가 없다.
도미니크 미텔스탯은 이스마엘을 보고 있었다.
이런 대사가 있잖은가.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 다오.”
모비딕의 첫 문장은 번역에 따라 간곡한 청이 되기도, 원문에 따르면 강경하면서도 초라한 명령이 되기도 하는데, 도미니크는 상대의 시선에서 바로 그것을 느꼈다. 뙤약볕 밑에서 번쩍이는 두 알의 앰버 혹은 호안석 같은 눈빛은 원근감을 무시하는 근사한 육체에 관한 일말의 애욕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바로 그래서, 도미니크는 관심을 가졌다.
실상 그의 조악한 ‘임무’는 이스마엘 카슨의 시위 참여를 지켜보고 ‘온건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설득이란 게, 갖추어진 자리에서 변호사와 함께 있을 때보다는, 뒷골목으로 끌려 나와 담배를 태울 때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니 이스마엘은 캔콜라 뚜껑을 똑 떼어버리며 지껄였다. “그건 깡패들이나 할 생각이군.” 이때 도미니크가 가죽 채찍을 꿰매고 있었으므로 이스마엘의 목소리는 제법 즐거워 보였다. 손톱 밑을 파던 것이 진짜 바늘일 줄이야. 독특한 상황에 부닥쳤다는 즐거움이 무더위로 인한 갈증을 몰아내고 있었다.
그게 상대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못 됐지만, 가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이스마엘은 미지근한 콜라를 단번에 마시고 캔을 구겼다. 펩시 라임… 그리고 빨간 트럭이 시위의 마지막 줄을 따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