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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는 어설픈 물빛(24.08.13)

나사르 본주 2024. 8. 19. 09:54

매미 소리는 어설픈 물빛

 

 

 

 

 

 

 

 

 

매미가 운다.

북미를 가로질러 2,500마일을 걸어가기 전에, 첫발을 떼기 전 네간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눈 뜬 그는 생각했다. ‘오래간만의 악몽이구나.’

 

네간은 날이 잘 드는 플라잉 나이프로 손장난 치며, 눈앞에 붙잡혀 온 여자애 하나를 흘낏 보고 있었다. ‘구원자일원 중 네간이 신임한 두 사람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 여자애를 붙잡고 있느라 싸우지는 않았다. 잠시 오디오가 빈틈을 타서, 한이 말문을 열었다.

 

! 저는 기록자예요. , 스케치북 보세요, ? 모든 걸 기록해놨어요. 그리고 당신아니, 보스의 이야기도 전부 기록할 수 있어요! 이 일은 분명히 후대에 길이 남아서 당신에게…….”

 

이 애 이름이, 그러니까 죽은 동료들 사이에서 눈을 바락바락 뜨고 변명하는 여자애 이름이 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꿈이 만화경처럼 돌아간다.

 

네간은 감옥에 있었다. 아이와 민간인에 돌아갈 식량조차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죄수의 신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네간은 밤낮으로 바뀌는 감시역간이 간수들이 베푸는 동정 어린 먹이를 삼키며 연명했다. ‘어째서 나를 살려 두는가.’ 그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본보기라면 끔찍한 처형이 낫지 않을까.

네간은 그렇게 해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본보기적 처벌이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네간이 한 짓을 아는 사람들은 그 이상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예컨대 무리를 지키는 방법이라거나. 그는 공포정치를 믿었다. 불우한 사람들은 카리스마 있고 합리적인 지도자에게 이끌린다, 자연히.

그런데 왜 졌던 걸까…….

굶주림, 추위와 더위, 모기의 습격,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고열과 피땀에 불결한 몸뚱어리는 그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갈수록 부풀어 오르는 의아함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변모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을 질문을 되뇌며 그는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을 꿈꾸었다. 도박과 술과 어여쁜 아이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 안락에 젖은 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거긴 그래도 되는 세상이었다.

거친 벽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던 그는, 누군가 창살 너머에서 손을 붙잡아 오자 놀랐다. 저도 모르게 콱 당겨보니 쉽게 딸려 왔다. 창살에 이마를 댄 한이 말했다. “보스, 같이 가요.”

 

……네간!”

 

그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졸고 있었다.

얼굴에 피를 묻힌 한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네온이 다 망가지고 폐허가 된 햄버거 가게였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창문은 텅하니 뚫렸다. 아지트가 되기에는 건물 자체가 부실해서, 둘은 직원 휴게실로 쓰였을 공간에 커튼을 치고 앉아 있었다.

조금 전에 뜯어먹던 베이크드 빈 통이 아직 열려 있었다. 네간은 꼬여 드는 파리를 휘휘 물리치며 끙, 소리를 냈다. 한이 약간 웃었다.

 

무슨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보스? 식은땀 나세요.”

보스라고 하지 말랬지아니 그냥, 예전 생각이 좀.”

흐으음. 어떤 생각?”

 

네간이 한의 장난기 어린 눈동자를 들여다보더니, 와락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을 탈탈 터는 손길에 한은 기겁하는 대신 웃었다.

 

저는 기록자예요!’

보스, 이제 제가 자도 되죠? 삼십 분이나 조셨는데.”

뭐야말도 안 하고 불침번 선 거?”

당연하죠, 새근거리시고 막, 업어가도 모를 정도였다니까.”

 

네간은 거짓말인 걸 빤히 알면서도 민망해하는 척했다. 그는 투옥 이후로 깊이 자본 적이 없었고, 이 사실은 한도 아는 터였다. 농담에 재능 없는 애가 얼버무려 넘기려는 걸 보니 안쓰러웠다.

사실, 네간의 악몽 때문만도 아닐 거였다. 그는 손을 옮겨 한의 뺨에 번진 핏물을 쓱쓱 닦아주었다. 다 번져서 뺨이 발갛게 보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유리창에 얼굴을 비췄을 때 살인을 떠올리진 않겠지. 그는 시간 날 때 한의 도끼도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유리창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그 살인은 어느 정도, 네간의 탓이기도 했다.

그가 혹독한 짓을 저질러 와서, 그가 한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자비를 베풀어서, 그가 싸움에서 패배해서, 그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이게 어른이 돼서 할 생각인가.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한이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켜더니, 배낭을 안고 소파에 웅크렸다.

네간이 말했다.

 

제대로 누워, 인마.”

이게 편해요.”

 

그러더니 정말 피곤했던 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아드레날린이 돌고 나서 시간이 지났으니, 반동처럼 피곤이 몰려올 때긴 했다.

한은 망설임도 없이 도끼로 인간의 머리를 찍었다. 네간은 좀비인 줄 알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것이 살아있는 비명을 지를 때 소름이 오싹 끼쳤다. 죽을 뻔했다는 자각보다도 한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시 도끼를 치켜들던 한의 손목을 붙들며 말했다.

 

그만 해. 죽었어.’

, 그러네.’

괜찮냐?’

? 저요? 제가 왜요, 보스가 괜찮아야지.’

 

한 치의 떨림도, 긴장감도 없는 눈빛. 태연한 목소리.

한은 그때 활짝 웃었다. 온몸에 사람 피를 뒤집어쓴 여자애가 네간을 보고 참 다행이라는 듯 미소 지었다. 부르튼 입술에서 흐르는 피가 누구 것인지도 분간이 안 갔다. 네간은한에게 옷을 갈아입도록 지시하면서도 자기 심정조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가슴이 뛰었다. 방심한 채로 죽지 않아 다행이고, 한에게 꼴불견으로 발견 안 돼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 괜찮지 않은 기분이 들었을까. .

 

들떴을까. 내가.’

 

그는 살인에서 재미를 느끼지는 않았다.

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할 일이 아니라면, 절대 사람을 쏘지는 않겠지. 왜냐하면 그건죄를 짓는 일이고, 무수한 죄를 지어온 네간이 어떻게 되어 왔는지 그 애는 봤으니까.

마음 한쪽이 선뜩해졌다. 한은 네간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죄를 지은 거였다. 무척 기꺼우면서도, 목에 돌이 걸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은 이 일도 기록했을까? 네간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공책에 시선을 주었다. 자연한 수순으로, 그는 어쩐지 한의 눈치를 흘끔 살폈고(보여주지 않을 리도 없다만), 괜히 몰래 하는 기분을 느끼며 공책을 펼쳐보았다.

네간이 그려져 있었다.

얼마 전에 새로 종이를 끼워 넣은 스케치북이었다. 앞장이 천천히 밀려나는 형태라, 한은 이것을 뒤에서 앞으로 넘기면서 썼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앞장이 늘어나서, 꾹 붙잡고 고정한 손이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그리고 첫 장은 언제나.

 

나지.’

 

그는 무심코 생각했다가, 언뜻 오만하게 느껴져 피식 웃었다. 이번에 그려진 것은 시체를 풀숲에 내던지는 네간이었다. 소지품을 뒤지고. 그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피 묻은 손이 그려져 있었다. 뜨스운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한낮의 열로 달구어진 도끼. 옆에 한은 작게 써두었다. ‘내가 했다.’

네간이 스케치북을 탁 덮었다. 이런 데에서까지 객관적일 필요 없지 않나, 네간만 그려져 있었더라면, 사람들은 이걸 읽고 네간이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할 텐데. 하지만 그런 건 한의 안중에도 없겠지. 왜냐하면 한은네간이 지지 않으리라고. 네간과 계속 함께 있으며, 스케치북은 자신이 자연히 죽고 난 뒤에나 누군가에게 입수되리라고, 커다란 확률로 네간과 함께 있는 자신은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살아남으리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살인 직후 비스듬히 웃던 얼굴에서 이 착각을 읽었다. 그래, 착각이다. 네간은 살아남지 못할 거였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이 좀비 사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백신을 발견하고 세상이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되리라는 기대는 없어야 맞다. 그는 감옥에 갇히기도 전에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무리를 만들고,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네간 자신이 기대의 대상이 되리란 걸 모르고. 아니

정말 몰랐느냐고 하면…….

 

보스?”

 

자다 깬 한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네간은 문득 주위가 어둡고, 자기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애써 어어, 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본인도 졸았다는 듯이.

한이 피식거렸다.

 

뭐야아, 보스도 피곤했던 거 맞죠? 이제 됐어요, 저 잠 다 잤어요.”

두 시간밖에 안 지났어.”

스케치북 보셨어요?”

 

한은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심지어 하품까지 하며 물었다. 네간은 내심 움찔했지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다.

 

. 잘 그렸던데. 뭐 미술 전공이냐? 사람을 뭐 이렇게 잘 그려.”

? 제가 말씀 안 드렸나? 저 미대 출신이에요.”

?”

? , 입학하자마자 이 상태 됐지만.”

 

네간이 벙한 얼굴로 한을 바라보았다. 한은 자기가 옛날이야기를 안 했다는 걸 깨닫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반쯤 잠에서 덜 깨는 바람에 입에 담긴 했지만, ‘행복했던 시절같은 게 없었던 그에게 과거란 불우한 꿈과도 같아서, 별로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비릿한 철분 냄새가 났다. 얼굴에 번진 핏자국이 말라 부스러지고 있었다.

한이 말했다.

 

글쎄요, 그냥 평범한 거죠.”

그런가?”

 

나야말로 그럴 텐데, 하고 네간이 중얼거렸다. 한이 잠시 눈을 빛내는 게 보였다. 거의 항상 초췌해 보이는 그에게 있어서는 드문 일이었다.

네간은 다음 말을 예측하고 몸을 사리려 했으나, 한이 더 빨랐다. 한이 물었다.

 

어땠는데요? 생각해 보니 옛날얘기 잘 안 해주시잖아요.”

그거야, 평범하기도 하고딱히 말해줄 필요도 없잖냐?”

지금도 그래요?”

 

왜 이런 게 다 부끄러운지. 과거가 창피했던 적은 없었는데.

네간이 뒷머리를 벅벅 긁더니, 커튼을 더 꼼꼼하게 쳤다. 그가 손을 내저으며 자라, 웅얼거리자 한이 김샜다는 표정을 하며 소파에 길게 누웠다. 그 애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눈을 감는 걸 보고 나서야 그는 문을 나섰다. 편안한 밤을 위해 조금 더 대비를 해둘까 싶었다.

 

한이 앓기 시작한 건 자정 무렵이었다.

 

불침번 중 살짝 졸던 네간은, 흠칫하며 깨어났다. 반사적으로 총을 쥐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었으나, 다음 순간 좀비나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한이 무어라고 중얼대고 있었다.

서둘러 일어난 네간이, 소리를 죽여 한에게 가까이 갔다. 식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터라 깨우고 싶지 않다면 행동을 주의해야 했다. 살금살금 다가간 그가, 어둠 속에서 보려고 얼굴을 가까이 댔을 때, 반짝이는 식은땀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한이 그의 옷깃을 콱 붙잡았다.

네간은 얼결에 움찔하며 몸을 굳혔다. 숨결이 느껴졌던 것이다.

 

……, 아빠.”

……?”

그만그만.”

 

그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앞부분만 들어도, 이 애가 무슨 악몽을 꾸는지는 자명했다. 문득 부끄럽다는 이유로 옛이야기를 거부한 자신이 한심해져서,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크고 뜨듯한 손을 뺨에 대주자 물처럼 차가운 살갗이 움찔했다.

한이 눈을 떴다.

 

?”

, 나다.”

보스?”

아니. 네간.”

보스. 저 손이 아파요.”

애가 몸이 다 떨리네. 이리 와.”

 

네간이 한의 등을 감싸 안았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한이 몸을 세우고 웅크렸다. 이 애는 사람을 죽이고 나서도 웃으면서, 유난히 이미 사라진 손을 두려워했다. 환지통의 정체가 몸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걸 네간은 알았다. 한때 체육을 했던 게 이런 데에서 발휘되다니.

 

이것도 옛날이야기군.’

 

그는 설핏 웃고, 한의 이마에서 찬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나는 옛날에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었지.”

……보스가요? 말도 안 돼.”

아파하면서 말대답은 따박따박 한다?”

 

그는 한의 이마에 가볍게 꿀밤을 놓아주었다. 아파하는 체하는 걸 보니 살 만한 모양이었다.

네간이 계속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도박이니 술이니 해서, 인제 와서는 둘 다 안 하지만. 하여간에 아내 속을 엄청 썩였어.”

아내가 있었다고요?”

그래, 결혼했었지. 뭐 내가 잘생겼잖아?”

 

그가 턱에 브이 자를 그려 보이자, 한이 실소했다. “그게 무슨 반응이야?” 그는 토라진 체하고는 떨림이 잦아드는 등을 도닥여 주었다.

 

루실이 죽고 나서, 그러니까 말이야. 세상이 망하고 나서야 내가 가진 힘을 자각하게 된다는 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냐?”

좋은 거?”

나쁜 거지. 그래서 나쁜 짓을 해왔지.”

하지만.”

 

한은,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선하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게끔 하던 그의 동료들을 잔혹하게 죽여버린 것도 네간이었다. 한은 네간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었지만그러니까 생존에 합리적이라는 이유로,그 이유가 저지른 짓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마치 자기가 손에 묻히는 피는 지워지지 않듯이.

그래서 한은 위로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자란 곳은 무척 끔찍했어요.”

…….”

그게 다예요. 이제 손도 안 아프고안녕히 주무세요.”

 

한이 부스럭거리며 품에서 벗어났다. 네간은 온기가 빠져나간 품에 허전함을 느끼며 손을 그러쥐었다. 그러나, 곧 으쓱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은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한의 손은 말끔하게 나았다. 그 애가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는 모습을 네간은 다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야?”

 

누군가, 담벼락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네간이 곧장 무기를 뽑아 들려는 걸 한이 황급하게 막았다. 스케치북과, 근처 마트에서 주워 온 긴 연필을 들어 올리며 한은 항복 자세를 취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이상해 보였던 탓이다.

여자는 해괴하게 얼룩덜룩한 옷을 꾸며 입고 있었다. 그게 보기 좋다기보다는 공들인 것이어서, 혼자가 아니란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한이 말했다.

 

저희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에요. 멕시코로 가고 있었는데

……그래요? 하지만 안에 들여보내 드릴 순 없어요. 일행들이 있거든요.”

 

대치 상황이었다. 네간은 눈을 들어 올려 뙤약볕을 보다가, 피식 웃으며 한의 귓가로 몸을 숙였다. 그가 속삭였다.

 

우리 멕시코 가나?”

……아마도요?”

안 헤어지고?”

그렇지요?”

 

한나가 둘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기다가, 안으로 홱 들어갔다.

닉이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닉에게 일행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었고 저 남자는 수상했지만 여자는 한나와 비슷한 면모를 풍기고 있었다. ‘어딘가 이상한’. 한나가 이 빠진 그릇에 물을 떠 들고 오며 말했다.

 

마셔요. 조금 기다시고요.”

 

그러고 나서 들어갔다. 네간이 웃음을 터뜨렸다.

 

보기 드문 아가씨네, 그렇지 않냐?”

……. 호의적일 줄은 몰랐는데.”

그러면 왜 안 죽이고?”

여기 방비가 너무 튼튼해서요.”

잘했네. 우린 저거 못 이겨. 그런데 말이다.”

 

네간이 땀방울 맺힌 뒷덜미를 벅벅 긁었다. 모기에라도 물렸나.

여름이었다. 시체 썩는 냄새 없이, 이 농장 근처에서는 신신한 풀 향기가 날 선 채로 푹 끼쳐 들기만 했다. 한이 네간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가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니 그냥, 하고 네간은 시선을 피했다. 드문 일이었다.

햇볕 밑에서 한의 눈동자가 유난히 푸르렀다. 그는 부끄러운 마음을 숨길 수도 없이, 마치 태양에 데인 양 붉어진 채로,

밀려드는 마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부터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