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ple

B님 - 야수

나사르 본주 2019. 2. 26. 00:16

※ <블러드본> 2차창작 신청 완성본입니다! '야수'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 또한 블러드본 세계관에 따릅니다.






총성이 긴 겨울 허리를 자른다. 사냥의 밤이다, 여전히.

 

손가락에 깃든 쾨쾨한 냄새는 피먹인 장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발트르는 뭔가가 뜯었는지 이빨자국에 넝마된 괴물을 발로 툭 만졌다. 경직된 사체의 허리가 묵직하게 밟혔다. 그는 거무스름한 녹색 나뭇잎 건너편의 창살같은 첨탑을 쳐다보고, 잿빛 하늘을 보았다. 그러고선 스테인글라스가 빛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신이 머물길 관뒀나보지.

누런 하늘 밑으로 푸르스름한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앉지 않기로 했다. 썩은 낙엽에 고인 피냄샐 맡은 야수가 덤벼들 것이다. 그는 사체 다리를 잡아 어깨에 걸치고, 손을 휘저어 파리를 쫓아냈다. 칼로 남은 베어낸 허벅지 고기는 아직 싱싱했다. 어둠 속에서도 팽팽 뛰는 신경이 보였다.

발가락이 얼어붙고, 그가 걸음을 멈췄을 땐 반시간도 더 지났을 때였다. 바람을 그대로 맞은 턱이 뻐근했다. 그는 숯처럼 타든 횃불을 훅 분 뒤 그대로 떨어뜨렸다.

불이 붙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불붙은 나무때기가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화재가 더 커지지 않는 건 그보다 빠르게 번지는 핏물 탓이었다.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야수의 몸에서는 저런 그럴듯한 음식냄새가 나지 않는다. 인간 시체에서나 그러지.

발트르는 전우의 내장이 익는 냄새를 맡았다. 역한 식욕이 돋았다.

비가 내렸다면, 신이 있다고 믿었을 텐데.

연기를 들이킨 속이 매캐하게 아파왔다. 이 몸도 불살라지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지만 그는 무기를 놓지 않았다. 가죽장갑이 야수가 흘린 오물로 젖어 잘팍거렸다. 장갑을 벗고 탄창이 빈 단총을 던지며, 괴성이 멈추었다. 발트르는 그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작살날같은 발톱에 도려진 팔다리가 뿌려진 곳이었다. 그는 잔혹한 광경을 두려워할 이는 아니었지만, 어제 어깨를 두들겨 축복을 빌어준 이가 나무토막처럼 성의없이 구르는 데에는 면역이 덜한 시절이었다. 목이 매웠다. 그는 이것이 삶에 마지막 비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야수의 사체는 불타는 짐덩이 같았다. 거멓게 타들어가는 핏가죽이 징글징글했는데, 미물의 점막을 보는 역함이라기보단, 원수의 간을 빼먹기 전 같은 욕지기가 치밀었다. 그건 이렇게 죽어선 안 됐다. 먹혀야 했다. 입에 넣어야 했다. 가지런하지 못한 톱날로 베어 조잡한 솜씨로 씹어 삼켜져야 했다. 그는 자신의 이가 고르고, 야수처럼 톱니같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피웅덩이를 밟고 걸어가서 칼을 들이댔다.

그것은 살아 있었다.

유하게 처진 눈에 냉기가 튀었다. 흉측한 터럭 사이로도 칼날을 몇 번이나 박아넣은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원인 모를 욕구로 식도가 불사르는 것을 느꼈다. 갈증이 일었고, 그는 할 수 있는 걸 했다. 발트르는 야수의 뿔을 콰득 소리가 나도록 깨물었다.

비린 맛이 났다. 염소 젖같이 시큼하기도 했다. 깊은 물 밑바닥을 이마로 찍을 때처럼 시야가 돌고 곧 안온한 기분이었다. 이제야 사명을 이루었다는 해방감마저 들었다. 그는 먹었다. 어차피 먹혀야 하는 야수가 아닌가, 이렇게 정돈되어 불타는 건 아깝다. 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뜯어먹을래야 살점이 없다니! 그는 내심 탄식했다. 입밖으로 나는 건 짐승 같은 그르렁거리는 소리 뿐이었다. , 입김. 멀리서 숲이 흔들리는 소리, 그 숲도 불타고 있을까. 세상이 다 타고 있지 않다면 이상할 테다. 그는 다시 칼을 뽑아 야수의 목을 도막내고 그 단면에 얼굴을 묻었다. 이 야수의 가슴과 뱃가죽은 썩어 떨어졌는지 뼈처럼 말랐지만, 목으로는 으르렁거리든 이빨짓이든 뭔가를 해야 했을 테니, 그래. 그는 이로 끈적한 핏덩이를 뜯어냈다. 차갑게 상한 털이 뺨을 만지고 미처 식지 못한 핏줄기가 뿜어 이마를 적셨다. 불콰하게 취한 남자처럼, 그는 뒤돌지 않고 집어삼켰다. 미적지근한 덩어리가 목을 여유 없이 채우고 스물스물 넘어갔다.

그 뒤로는 술병이라도 부서지게 물어본 적 없다.

 

발트르는 잘라온 무언가의 머리를 들어올렸다. 무거웠지만 두 팔로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버티지 못하는것이 이제 남아 있기나 할까 싶다. 어쨌든 희번득하게 눈뜬 채 죽은 괴물이 그를 겁줄 리는 없었으므로, 그는 잘린 목의 단면을 보았다. 멀쩡한 피와 살이 너절하게 뒤섞인 상처. 뿔을 살금 핥자 역겨운 비린내가 났다.

그제나 이제나 머리뿔은 단단하고, 가슴뼈에는 붙은 살이 없고, 간 칼은 금세 무디며 장갑은 젖는다. 총구에서 나는 연기냄새나 제 몸 같은 지팡이의 무게만이 살아서 변해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그는 썩은 나뭇등걸에 고쳐앉으며 희끄무레한 상념을 지웠다. 그러고는 모닥불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에 들린 한주먹만한 날고기를 우악스레 뜯어먹었다. 먹처럼 검은 핏물이 그의 흰 빛 난 이마에 맞닿으며 여문 그림자를 묻었다.

 

여전한 사냥의 밤이다. 숲과 대로를 건방떨며 걷는 적법한 살해자들.

멀리선가 총성이 흩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