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문인2
진정하십쇼. 프레이는 한 손에 술잔을 쥔 채 끌려가고 있었다. 끌려가주고 있다는 것이 훨씬 맞겠다. ■■은 갑자기 뚝 멈춰서서 프레이를 돌아보았다. 빤히 보는 그 눈동자에 취기가 만연했다. 아니, 기쁨인가... 기대인가. 푸르게 서린 감정을 프레이는 전혀 읽을 수 없을 것이었다. 가만히 시선을 맞추던 프레이는 잠시 노란 안광을 감추었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은 뭐가 그리 좋다고 갑주로 싸인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프레이는 갑주에 술잔이 깨지는 것과 술이 흐르는 것 중에 무엇이 나을지 고민하다가, 길게 끌지 않고 녹색 잔을 ■■의 손에 쥐여주었다. 화한 풀냄새가 훅 가까워졌다.
■■의 면면에 선명한 열상이 거슬렸다. 그 흉터는 가까울수록 곱절로 아파 보여 프레이는 그와 얼굴이 붙을 때마다 말라비튼 심지에 불이 닿는 것을 느꼈다. ■■은 눈을 접어 웃더니 차가운 금속 손등 위에 입맞추었다. 감사의 표현이었는데, 프레이는 단지 굳어버렸다. 그때부터 프레이는 정말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압생트는~ 온더락.”
“■■.”
“얼음 전에 불, 불 전에는 설탕이야.”
“■■...”
“오늘로 알겠지?”
■■의 면면에 선명한... 열기. 마지막 석양이 탔다. 이제 프레이는 불그스름한 저 얼굴이 취기 탓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영원히 알 수 없다. 그가 아는 ■■은 오로지 과거일 뿐이므로, 그러나 잿더미는 곧잘 날아와 일상을 침범하지 않는가... 프레이는 거뭇한 눈가가 다시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아는 감정은 무언갈 불사르는 마음 뿐이므로. 그는 ■■의 진한 흉터에 입맞추어 잿가루가 옮아가는 생각을 곧잘 했다. 상상이 아니었다, 그건 진실이었다.
“프레이?”
빛이 숨진 물 속이었다. 프레이는 그제서야 정강이를 간질이는 차가운 물결을 깨달았다. 몸 안으로 뾰족하고 서늘한 것이 슬금슬금 기어들었다. 그는 손을 빼고 뒷걸음질 치려고 했는데, ■■이 다시 붙잡아 끌었다. 프레이는 태양을 따라 몰락하듯 비린 물 깊숙이 몸을 담갔다. 거절할 핑계가 없었다. 그는 ■■이 마주 보아주었기 때문에, 세상을 내버려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은 따스한 육신이라도 된 듯이 다루었다.
지금도 그렇다, 물속에서 쇠붙이를 잡은 채라면 몸이 쉽게 식는다. ■■은 이미 술잔을 놓친 뒤였다. 아마 추웠을 테다. 프레이는 머뭇거리며 조금 떨어져 서려고 했는데, 발이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 웃었다. 프레이는 그 웃는 얼굴에 시선을 처박았다.
파도 위로 유령 같은 포말이 오간다. 밤비늘이 재투성이 은처럼 번득이고 있다.
“너는 물을 싫어하지.”
“아닙니다.”
“아냐, 내가 알아.”
“당신은 모릅니다.”
멀어질 수 없었다. 프레이는 무심코 손을 들어, 상처가 나지 않도록 ■■의 귓가를 덧그렸다. 거의 닿지 않았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안대를 벗겨버린 것이다. 월몰...
순간적으로, 프레이는 달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달이 무너질 때에 바다는 낮이 될 터다. 유유한 밤 아래 하늘이 깔리면, 육지나 태양이나 비싼 술잔 따위, 기적과 승리와 온갖 정의 따위도 상관이 없어질 터였다. 그러면 당신은. 프레이는 움찔거리며 손을 거두었다. ■■이 젖은 안대를 쥐고 다시 머리에 둘렀다. 그는 눈을 감고 비스듬히 웃으며 말했다.
“나 안 취했어.”
“취한 것 압니다.”
“넌 몰라.”
전 안다고, 왜냐하면 당신은, 프레이는 목을 울리며 말을 관뒀다. 정말 알고 있다면 술을 받아 마셨을 것이다. 마음 동하지 않으려 애쓰진 못했을 것이다.
“물을 싫어하는 프레이.”
“...”
“고양이 같아.”
“...쓰잘데기 없는 소리군요.”
“화났다.”
“아니라고요.”
프레이는 ■■이 웃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눈매가 감길 만큼 가늘어지면, 나긋한 목소리를 내며 내리깔면 새파랗게 물오른 안구가 숨었다. 그래, 프레이는 빌어먹을 소원을 긍정했다. 그는 저 흉을 핥아주고 싶었다. 축축하고 무른, 터무니없이 빛나는 눈동자에 혀를 대고 흐려주고 싶었다. 정말 알고 있었다면 이런 욕망은 일찍이 꺾었을 것이다.
“술에 불을 붙이면 금세 사그라져. 거기에 설탕을 녹인 다음, 얼음을 타서 핥아먹는 거야. 그러면 설탕 알갱이가 얼음에 들러붙어서...”
“사탕처럼요.”
“어, 그래. 사탕처럼.”
그는 프레이의 입에서 그토록 달콤한 낱말이 나온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프레이는 ■■의 놀란 표정이 좋았다. 사탕 같은 파란색, 감초처럼 검고 불량한. 프레이는 애써 울림을 삼켰다. 심지를 눌러 담그자. 그는 더 깊은 곳으로 성큼 걸었다. ■■은 손을 꾹 잡아왔다.
“...영결이야.”
프레이는 곧 멈추어 섰다. 당초 더 잠길 생각도 없었다. ■■은 입술을 핥고 계속 말했다.
“설탕이 굳은 얼음을 삼키는 거야. 그래서 전사는 늘 독한 술을 마시지. 불이 붙을 만해야, 설탕이 녹거든...”
“무엇을요?”
“응?”
“무엇에 대한 영결식입니까?”
“글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 다시 웃었다. 애매한 표정이었다. 척척하게 젖은 안대에서 물방울이 흘러 그 뺨을 적시고 있었다. 흡사 눈물 같아, 프레이는 그의 이마에 제 얼굴을 갖다 대었다. 면갑이 슬며시 닿았다가 그들은 이마를 맞대었다.
■■이 긴 숨을 내쉬었다. 그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우린... 우린...”
“■■.”
“공범이야, 프레이.”
■■의 얼굴은 여전히 환했다. 어디서 둥지 잃은 물새가 까르륵 까르륵 울었다.
“취했습니다.”
“맞아.”
“돌아갑시다.”
프레이가 말했다. 그러나 ■■은 그 뒤로도 오래, 얼굴을 비키지 않았다.
지인 분께 용돈 받고 드린2 파판14 드림 연성입니다! 암기 관련 스포가 있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