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ㄴㅋ님
자캐커플이 피크닉을 나간 상황, 식기와 음식이 잔뜩 든 진짜 피크닉 바구니를 준비해 들판으로 보냈습니다! ~피크닉 로망이라면 이정도는~ 싶은 모든 메뉴를 넣고 필수 주문으로 입가심 음료인 레몬에이드와 디저트로는 레몬 머랭 타르트를 먹였어요! 영미문학 번역판 속 음식처럼 묘사하고 싶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일단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튼튼해 보이는 바구니를 무심코 들어 올려본 파이라이트는 적잖이 놀랐다. 가벼운 색깔의 라탄으로 짰는데도 무척 무거웠기 때문이다. 물론 대체로 피크닉 바구니란 팔을 늘어뜨린 채 두 손으로 힘껏 쥐어야 할 만큼 묵직한 데다가, 무게에 구애받지 않는 마법사들의 바구니란 물리법칙을 신경 쓰지 않는 수준이지만, 그렇다 쳐도 뭔가 잔뜩 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뭘까? 뭐든 몸에 좋은 것일 터였다. 릭이 만든 거니까.
펠릭스가 다가오더니 바구니를 번쩍 들었다. 마치 미리 열어보지 말라는 것 같았다. 그는 평소보다 들뜬 표정이었다. 눈매가 웃음을 듬뿍 담고 휘어졌다. 라이는 맵시 있는 레이스가 드러나도록 마감한 바구니 안감을 만져보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고마워.”
“뭘. 새벽부터 딸그락거리는 거 다 들었어.”
“기대했겠네?”
라이는 미적지근하게 끄덕거렸다. 힘이 없는 동작이라서 어떻게 보면 고개를 젓는 것 같기도 했다. 릭은 분명하게 긍정으로 알아들었지만. 파이라이트는 릭의 사고를 알아채고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이 무얼 나타내려고 했었는지 이미 기억나지 않았고.
하지만 펠릭스가 손차양을 치며 한 말에는 동의했다. “소풍 가기 참 좋은 날씨다.” 며칠 전 내린 비가 무색하도록 흙은 따스하게 보스라졌고, 보이는 땅 너머에 적란운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릭은 종종 뭉게구름이 이스트를 쳐서 보드랍게 팽창한 오븐에 넣기 직전의 밀반죽 같다고 이야기했다. 파이라이트는 그런 먹을 것보단 차가운 냄새가 나는 세제 거품을 떠올려 왔는데, 갈수록 부들부들해지는 릭의 흰 빵을 목격하면서는 점차 달리 생각되기도 했다. 구름이 아기자기하다기보다는 릭이 한없이 구름 같은 빵을 굽는 거겠지만.
어쩌면 오늘 흰 빵을 가져가는지도 모르겠네. 라이가 바구니를 흘끗 눈짓하자 릭이 알아채고는 제 몸 뒤로 숨겼다. 철저하게 비밀로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둘은 함께 야트막한 언덕을 걸었다. 어린아이가 다니기에도 쉬울 만큼 완만한 지형이었고, 잔잔히 오르내리는 곡선에 가까운 동산을 넘으면 놀라우리만치 평온한 풀밭이 나타났다. 싱그러우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났다. 밟히는 땅에 흰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들판 여기저기에 만발한 건 캐모마일이었다. 날씨가 좋은 터라 들판은 얼룩진 햇볕을 그린 한 폭 풍경화처럼 보였다.
가끔 다발 지은 클로버가 밟혔다. 릭이 자리를 펴는 동안 돗자리가 날아가지 않도록 한쪽을 밟고 앉은 라이가 저마다 크기 다른 토끼풀을 뒤적거렸다. 손이 닿으니 만지는 수준으로 생각 없는 행동이었지만, 펠릭스는 금세 관심을 가지고 물어왔다. 그는 가장자리를 꽃잎 모양으로 올록볼록하게 세공한 분홍빛 접시를 꺼내고 있었다.
“클로버네. 잎이 네 장 달린 걸 찾는 거야?”
“아니. 그냥 헤집어봤어.”
“토끼풀 팔찌 만들어 줄까?”
“음식은 어쩌고?”
그거야 만들면서 먹으면 되지. 릭이 태평하게 대꾸했다. 파이라이트는 입에 고기 파이를 넣고 우물거리며 보송보송한 꽃을 만지작거리는 릭을 상상해보았고,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릭은 앞니를 드러내며 밝게 웃어 보이고는 접시를 마저 깔았다.
비취색 손수건 위에 아직까지 촉촉해 보이는 데다가, 투명하고 통통한 건포도가 총총 박힌 롤빵이 쌓였다. 릭은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에, 두꺼운 누비이불처럼 납작한 빵의 노릇노릇한 윗부분을 갈라내어 사이에 리코타치즈를 발랐다. 샌드위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치덕치덕 바른 뒤에야 라이에게 건네주었다. 파이라이트는 한입에 가늠하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빵을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위를 뒤집어 들고 아래층만 베어 물었다. 말린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말랑말랑하고 건포도가 입에서 탁 터지며 새콤한 맛이 번졌다. 밀도 높은 치즈에 든 산미 조금이 담백하고 고소한 맛과 잘 어울렸다. 빵의 질감은 쫀쫀하게 구운 스콘에 가까웠는데 약간 질길 뿐 퍽퍽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치즈를 아주 담뿍 바른 덕분에 씹히는 게 밀가루가 맞는지도 분간이 잘 안 갔다.
릭이 마찬가지로 롤빵을 베어 물더니 입술을 핥았다. 파이라이트보다 치즈 양이 훨씬 적어 먹기에 더 쉬워 보였고, 라이는 조금 배신감 어린 시선으로 릭을 보았지만, 그는 다른 손으로 긴 토끼풀 줄기를 찾아 툭툭 잘라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라이는 금세 빵을 다 먹어 치웠다. 고개를 들자 펠릭스는 아직도 반쯤 남은 빵조각을 입에 물고 풀줄기를 엮고 있었다. 파이라이트가 물었다.
“커피 있어?”
“포도주는 있어.”
라이는 직접 커다란 바구니를 뒤져 포도주병을 꺼냈다. 병따개가 없었지만 코르크 마개를 보니 손으로 눌러 막은 것처럼 헐렁해 보였다. 파이라이트는 풀줄기에 집중한 릭의 맞은편에서 병을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마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릭이 됐다, 하며 예쁜 꽃 팔찌를 들어 올릴 때, 파이라이트는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갈 뻔했다. 시큼한 포도주 냄새가 진동했다. 그제야 파이라이트가 벌인 조용한 사투를 알게 된 릭이 얼른 포도주잔 두 개를 꺼냈다. 병 주둥이를 입에 가져가던 라이가 얌전히 병을 내려 두 잔 가득 술을 따랐다.
직접 담근 듯 조금 묽고 쿰쿰한 포도주를 맛보니 제대로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곧바로 커다란 접시, 육류용 나이프, 포크를 꺼냈다. 바구니에서 제일 큰 공간을 차지하던 은빛 돔을 꺼내서 열자 무엇인지 모를 가금류 통구이 한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풍미 좋은 고기 냄새가 풍겼고 통닭보다 작은 구이 껍질이 바삭한 갈색으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릭이 나이프를 들고 요리된 새의 뼈를 가르고 살을 찢어 먹기 좋게 썰어냈다. 생각보다 날이 바짝 서 있던 건지, 아니면 속살이 기름져 야들야들한 건지 슥슥 자르는 모습이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식욕이 돌아 무심코 숨을 들이켜자, 구수한 음식 냄새 사이로 향긋한 캐모마일이 성큼 다가왔다. 파이라이트는 손에 잡히는 꽃을 한 송이 꺾어 대궁을 비비듯 빙글빙글 돌렸다. 괴롭지 않을 만큼의 허기와, 술기운에 섞여 몸에 도는 열기, 햇빛, 머리 위에서 서로를 비비는 나뭇잎 소리, 짙어가는 낮과 함께 천천히 달구어지는 산들바람이 마음을 몽롱하게 도취시켰다. 조금 더운 것 같기도 해 그는 얇은 카디건을 반쯤 벗었다.
혼곤한 평화.
이런 오후 시간만이 세상의 마법이어야 하는데.
취할 정도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와인이 셌던 모양이었다. 직접 담근 술이 으레 그렇듯이. 파이라이트가 눈을 비비려고 손을 들어 올리자 팔목에 걸린 소매가 방해되었다. 옷을 추스르려고 손을 조금 위로 쭉 뻗는데 릭이 조심스레 손을 잡아 왔다. 파이라이트는 손목 안쪽이 잠깐 축축하다고 생각했다. 곧 그의 손목에는 토끼풀 팔찌가 남았다. 두 송이를 서로 엮어 묶은 모양으로. 손을 펼쳐 위로 비추어보자 손가락 사이로 말간 햇살이 쏟아졌다. 순진한 시곗바늘에 찔린 눈이 부셨다.
시계야. 펠릭스가 말했다.
“이게?”
“응, 이렇게 하면 시계꽃이라고 하는데.”
“시계꽃은 이렇게 안 생겼던 것 같아.”
“정말로는 토끼풀이지만 말이야. 이렇게, 중간을 갈라서 서로 엮었을 때만 시계. 왤까?”
라이는 손바닥을 천천히 내렸다. 자연히 시선이 내려가면서 손이 펠릭스를 겨누게 되었다. 그는 이런 모습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웃어 보였다. 릭은 라이가 내뻗은 손에 고기를 찍은 포크를 들려주었다. 껍질에 바른 묽은 젤리가 돗자리 위에 톡 떨어졌다.
쉽게 분리되는 껍질 때문인지, 고기는 보기보다 바삭한 식감이었다. 퍽퍽하지는 않았고, 씹을수록 고소했는데 조리 후 겉에 바른 새큼한 월귤 젤리와 잘 어울렸다. 그리고 뼈가 많았다. 육을 취하기 위해 길러진 가축은 뼈가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다. 파이라이트는 제 몫으로 나온 반들거리는 새고기를 뒤적이면서 사냥의 상흔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솜씨 좋게 손질했기 때문인지 그런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펠릭스가 말을 잇는 동안 파이라이트는 낯선 맛을 음미하며 음식을 마저 먹었다. 무슨 동물을 요리한 걸까. 꾹꾹 씹기도 전 금세 삼키게 되어서 고민은 짧았다.
“풀이 마를 때까지 시계를 차고 있으면, 하루 더 살 수 있대. 귀여운 전설이지?”
파이라이트는 제 손목에 걸린 풀줄기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시계, 혹은 사람의 의사를 무시하는 비정한 연명장치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릭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이건, 릭, 네가 해야겠는걸. 나보다는 말이야.”
“네 손목이 꼭 맞게 만든 거라…. 그냥 이야기일 뿐인걸. 걱정 마.”
라이는 그에게 무슨 걱정을 말하는 거냐고는 묻지 않았다. 공들인 소풍이고, 말마따나 간편한 이야기일 뿐이니까. 축복이나 저주, 망각, 예언과 같은 단어로 서술되지 못할 어린아이 같은 구전들, 허구임이 확실한 동화를 파이라이트는 싫어하지 않았다. 비논리적인 물질재의 실존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미워할 필요 없는 것들이었고 이제 와선 추억에 딸린 통증 따위가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무언가를 악독하게 노려본다 한들.
그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하나 만들어줄게. 나도 받았으니까.”
“정말? 기쁜데. 가르쳐줄까?”
“보면 조금 알 것 같아. 한 번 해볼게.”
고양이처럼 몸을 쭉 뻗어 토끼풀을 꺾어온 파이라이트가 옹기종기 모인 꽃잎을 가르고, 서툴게 엮기 시작했다. 그동안 릭은 미트 파이를 잘랐다. 미지근하지만 촉촉한 단면에서 돼지고기와 구운 게살 냄새가 풍겼다. 두툼한 파이를 베어먹을 수 있게 자른 릭이 칼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내며 멋쩍게 말했다. “신나서 이것저것 만들어버렸거든.”
“조금씩 맛보면 되지.”
“전부 먹어 줄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닌걸. 라이가 중얼거렸다.
“좋아. 사실 디저트는 세 개나 있어.”
파이라이트는 그대로 미지의 소풍 바구니를 노려보았다.
바닷가재와 다진 돼지고기를 함께 반죽한 파이는 오는 동안 식어 빠진 상태였지만 맛은 좋았다. 후추 간이 좀 세다는 걸 빼면. 다른 부분이 괜찮은 걸 보아 향신료가 불균형하게 뭉친 곳이 얻어걸린 모양이었다. 종류가 다른 고기의 맛을 곰곰이 느껴보던 파이라이트는 문득 깨달았다.
“......그런데, 나 이제 알았다. 아까 그건 멧도요구나?”
“기억해?”
“응. 호그와트에서 두어 번 나왔던 거.”
“그 많은 새를 어떻게 잡았던 건지 신기하다니까.”
“그러게. 파이는 조금만 먹자, 샐러드가 있거든.”
“대체 어디까지 준비한 거야?”
릭이 배시시 웃었다. 그토록 기대해온 소풍에서 고작 먹고 시시덕거리기나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워 보였다. 파이라이트는 자신의 손목에 걸린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서툰 손놀림에 꺾여 너덜너덜해진 풀줄기를 내던졌다. 손에서 눅눅한 허브 냄새가 났다.
“집으로 돌아가면 온몸에서 향기가 나겠는걸.”
“음, 탈취가 따로 필요 없지. 라이, 이 들판 마음에 들어?”
“너는?”
“좋아해. 오늘부터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아.”
그의 시선은 파이라이트를 곧게 향하고 있어서, 라이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파이라이트가 말했다.
“저길 봐. 물이야.”
“정말이네… 호수일까?”
“지대가 높아서 날씨가 맑으면 보이는 모양이야.”
“운이 좋았네. 오늘은 화창하니까.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되면 말이야.”
파이라이트가 고개를 돌려 릭을 빤히 바라보았다. 펠릭스는 여전히 멀리에 파편처럼 반짝이는 푸른 호수를 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물결과 한데서 나온 듯이 같은 빛으로 환했다. 라이는 부푼 기대를 부수어야만 할 때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먼저 릭의 말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의 다음 순간은 나를 해치지 않을 테니까. ‘아니면 그래도 상관없거나.’
펠릭스는 침묵을 지워버리듯이 입을 열었다. 신중하게 말을 고른다는 것이 지나쳐서 평온한 말투를 가장한 구석이 그대로 느껴졌다.
“……식을 올린다면 이런 곳이었으면 했어. 높은 천장이나 눈부신 마법이 없어도…. 친구들을 초대하고, 옷을 지을 힘으로는 음식을 직접 만들고.”
“소망은 아직 유효해?”
“그런 것 같아.”
“…오늘 식사는 화려한 축제 만찬보다 배부르게 생겼어. 그리고 이 말은….”
“라이. 결혼은 어때?”
새틴 리본 대신 이 레이스 장갑이 어떻냐는 물음처럼. 얼마나 열심히 궁리한 마음인지 실제로 여상하게 느껴져서, 라이는 릭이 평소에 하던 질문을 떠올리고 말았다. ‘홍게가 좋을까, 아니면 제철인 대하가 나을까?’ 하지만 릭, 너는 멧도요 구이와 바닷가재 파이를 가져왔잖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맛을. 통제가 가능한 꿈처럼.
이미 아는 것들을. 안전한 일상을.
파이라이트는 여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지금이 마음에 들어.”
“좋아. 생각해보니까,”
펠릭스는 어느새 샐러드를 옮겨 닮고 있었다. 끄트머리가 거무스름하게 그은, 썬 아티초크와 체리처럼 새빨간 방울토마토가 점성 있는 금빛 소스를 묻힌 채 파이라이트의 접시 위에 떨어졌다. 라이는 아티초크와 토마토를 단번에 꿰어 입에 넣었다. 식감이 바작했다. 익숙한 올리브유 맛과 엉긴…달콤하고도 시큼한 소스. 이래저래 혼돈에 빠진 샐러드였다. 단순히 심사가 간지러운지도 모르겠지만.
익힌 채소에서 본연의 단맛이 배어 나왔다. 아티초크는 무르지 않을 정도로만 볶은 듯했고 시큼한 냄새는 껍질을 벗겨 와인식초에 절인 방울토마토에서 나는 것이었다. 소스를 엉기게 하는 점성은 설명이 안 되었는데, 릭이 말해주었다.
“그리스산 야생 타임 꿀이야. 원래 레시피는 아니지만, 조금 넣어봤어.”
“더 달짝지근하네. 샐러드보다는 불에 닿은 요리 맛이 나.”
“메인메뉴랑 같이 내야겠구나.”
“한 번도 안 해본 거야?”
“응? 꿀은 어제 선물 받은 거거든. 아침에 당장 쓰고 싶었어. 아, 집에 밤꿀도 있는데 버터랑 같이 빵에 바르면 될 것 같아.”
“저녁에 먹을 수 있겠구나.”
“그럴래? 저녁은 생선으로 하려고 했는데.”
“…날 어디까지 먹일 셈이야?”
탄산이 든 레모네이드는 바구니 안에 있었던 거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시원했지만 둘 다 까닭을 묻거나 하진 않았다. 탄산수가 입천장을 톡톡 쏘아 올렸다. 라이는 얇게 저며 설탕에 절인 레몬 과육을 입에 물고 빨았다. 신맛에 군침이 돌았다. 탄산수 자체에서도 상큼한 향기가 났고, 날이 점점 뜨거워져 차가운 음료가 아주 달갑게 느껴졌다.
현란한 향수의 장. 더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들판이 정신 사나이 피어올리는 허브 냄새와, 음식에 든 향신료, 천연 감미료, 레몬과 얼음 냄새가 머릿속을 헤집어 생각을 잇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붕 뜬 것처럼 몽롱했지만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진 것이 아니었으므로 불편한 대신 이 고민 없음이 기꺼웠다. 돗자리에 반쯤 누우면서, 파이라이트는 손목에 풀줄기를 걸어주는 사람과 정성스러운 음식, 화창한 날씨뿐이라면 행복한 잠에 빠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여기더라도 남은 디저트는 자리를 피해 주지 않았다. 레몬 머랭 타르트. 포크 끝으로 봉긋한 머랭을 콕콕 공격하면서 라이가 말했다.
“레몬이랑 레몬을 같이 먹어도 괜찮은 거야?”
“하지만 둘 다 놓칠 수 없잖아.”
“그건 그래.”
단단하게 구운 타르트지는 캐러멜 자국을 그리며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머랭이 버거워 보일 만큼 얇았다. 파이라이트는 저번에 자신이 키위 타르트의 퍽퍽한 과자 부분을 조금 남겼던 걸 기억하며 릭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크림을 묻히고 먹던 펠릭스가 동그란 눈으로 마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라이는 한숨을 내쉬고 손을 뻗어서 그 입술 옆을 닦아주었다.
“다 묻었어.”
“고마워. 맛있어?”
“응, 맛있어. 시트가 하나도 안 탔네.”
“노력했거든.”
다디단 과자를 조각내 먹노라면 입이 느끼해져서, 장식된 로즈마리를 씹고 나서도 레모네이드를 들이켜야만 했다. 레몬과 레몬을 함께 먹는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작은 유리컵에 담긴 바나나 푸딩을 떠먹으면서, 릭은 저녁 식사에 관해 얘기했다. 나른한 포만감을 느끼던 파이라이트는 적당히 흘려들었지만, 저녁에는 곤들매기를 매콤하게 조리해서, 새로 딴 샴페인을 곁들일 예정이라는 걸 알아냈다. 파이를 만들고 조금 남은 반죽으로는 얄팍하게 만 부꾸미를 서너 개 만들 거라는 사실도. 파이라이트가 저녁을 깨작거리지 않을 수 있을지는 식탁 앞에 앉아서야 알게 될 터였다. 고민은 그것뿐이었다.
이미 술기운은 다 깨버리고 없는데, 무엇에 취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릭은 시들시들한 시계꽃을 선물 받았다. 모두가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푸딩은, 바나나 과육을 퍽퍽 잘라 넣은 덕분에 깨작깨작 해치우는데도 무척 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