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ㄴㅋ님
별개로 받는 로그커미션입니다 아방수와 냉혹광공 클리셰에 떨어진 자캐커플... 로 진행했습니다 감사합니다(ㅠㅜㅠㅠㅠ)
릭이 유독 늦는다. 이런 일 별로 없었지. 라이는 은세공 된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미간을 약간 좁혔다. 이런 건 산 적이 없는데 어쩐지 하고 다니던 팔찌 대신 침대 머리맡 협탁 위에 놓여 있었다. 파란색의 귀여운 알람시계는 어디 가고… 게다가 옷장 안에서는 자꾸 정장에 눈길이 갔다. 분명 저런 게 없었을 텐데……. 그래서 오늘 파이라이트는 아르마니 올블랙 쓰리피스 슈트에 롤렉스 손목시계를 한 멋진 모습으로 호텔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잠깐, 호텔이라니?)
어쨌든 한껏 차려입었으므로 라이는 릭이 반드시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그런데 릭은 벌써 이십 분째 지각이었다. 그럴 애가 아닌데, ‘데이트 날에는 자기가 더 신나서 먼저 나를 깨워야 하는데.’ 이래저래 심란해진 라이는 에스프레소 더블을 시켜 먼저 마시기 시작했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자 작고 납작한 은빛 상자가 나왔다. 호기심에 열어보니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겠을 금장 된 담배가 열여덟 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누가 소매치기를 반대로 한 모양이다.
에스프레소는 무척 썼다. 라이는 종업원을 불러 레몬 파운드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한가해야 할 카페에서는 종업원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별로 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굳이 부르는 것도 마음에 차지 않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그중 하나가 에그베네딕트를 주고 떠났다. 라이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완성된 조그만 에그 베네딕트를 떨떠름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때 릭이 들어왔다. “라이!” 입구에서부터 저렇게 부르며 달려오다니, 주위 시선은 둘째치고 넘어지지 않을까…… “으아,” 진짜네. 라이는 곧장 일어서서(‘이제야 다리가 떨어지네.’) 다가가 릭을 일으켰다. 자신보다 훨씬 크고 건장한 릭은 그때껏 계속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라이. 어쩐지 사람들이 자꾸 붙잡는 바람에 늦었어요…… 대신 선물을 받아왔지!”
“웬 존댓말입니까?”
뭐?
“자, 이 솜사탕 귀엽죠?” 릭이 말했다. 라이는 혼란스러운 가운데 착실하게 대답하는 입을 믿을 수 없었다. “어울리는군. 당신이랑.” 뭐라고?
그때 바쁘게 잔을 닦던(한 삼십 분 전부터 그러고 있었다) 종업원이 난처한 미소를 띠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이게 구세주인지 사탄인지 아무도 모를 터라고 라이는 생각했다. (구세주니 사탄이니 대체 무슨 소리지?)
“손님. 외부 음식은 반입 금지입니다. 맡아드릴까요?”
“아이고, 하는 수 없지…… 라이, 괜찮죠?”
“덜렁거리는 게 당신답군.”
왜 종업원이 묻는데 자신은 릭만 쳐다보고 있는 걸까?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릭은 더욱 아쉬운 웃음을 짓더니 손에 들고 있던 아기자기한 토핑을 얹은 솜사탕을 종업원에게 건네고는 손을 잡아 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예쁜 얼굴이었다. 이건 진짜로.
릭의 손이 끈적거렸다. 라이가 물었다.
“대체 어디에 다녀온 겁니까?”
“아아, 하얀 레이스를 입은 아이들이 오늘은 피크닉 날이라면서… 솜사탕 파티에 같이 가자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약속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양하려는데 보호자처럼 보이는 여성분이 상냥하게 건네주셨어요. 제가 너무 예쁘다고…….”
릭도 난처한 상황에 부닥친 게 분명했다. 말을 하는 내내 시선을 피했고 귀가 붉어졌다. 그러나 이내 즐기기로 했는지 빙긋이 웃었다. 손 좀, 하며 릭이 화장실을 가리켰다. 라이는 심란한 기분으로 단지 끄덕였다.
릭이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미끌” 하는 소리가(이건 의태어가 아니던가?) 들리더니 이어 릭의 “이잉?” 하는 당황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쿵”하는 소리가 마저 들려왔다. 라이는 한 문장으로 형용된 이 일련의 현상을 정의내리기 힘들었지만 이미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릭은 욕조가 없는 게 이상할 정도로 고풍스러운 화장실 초입에 처음과 마찬가지 모양으로 넘어져 있었다. 파이라이트는 여러 가지 상념이 교차하는 복잡한 머릿속을 느끼며… 읊조렸다.
“당신은 대체… 어이가 없군.”
어찌어찌 둘은 자리에 앉았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에그 베네딕트가 식어가고 있어 치워달라고 한 뒤, 릭이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주문했다. 왜 레몬 파운드가 아니지……? 그리고 릭 몫의 캐러멜 마키아토가 대령 되었다. 릭은 와 신난다, 쯤의 비교적 그다운 말을 답지 않은 투로 귀엽게 중얼거리고는 포크로 케이크를 잘랐다. 자르려고 시도했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릭의 포크는 분명 정상적으로 뻗어갔을진대 왠지 모르게 케이크가 얹히지 않고 자꾸만 미끄러졌다. 결국 라이가 한숨을 쉬며 포크를 대신 쥐고 릭의 입가에 케이크를 가져다주었다.
겨우겨우 릭이 케이크를 맛보자, 그의 입술은 생크림이 스쳐 아이스크림에 입을 파묻은 아이처럼 되어버렸다. 라이는 그렇게까지 큰 조각을 주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무언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 같다. 어쨌든 라이는 어이가 없는 듯 벙찐(?) 릭의 입가에 냅킨을 가져가 살며시 닦아주었다. 그러느라 꾹 다문 입술에서 힘을 뺀 사이 입이 멋대로 자아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파이라이트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신은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들어.”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둘은 각자 이마를 싸쥔 채(라이의 경우에는 멋들어지게 이마 언저리에만 손가락을 댄 채) 이 엉터리 저주의 시전자를 짚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