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계절 다른 해협을 헤매이는 뱃사람에게도 돌발상황은 늘 존재한다. 바다의 삶이란 원체 예측불허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크릿은 해빙이 탁탁 들러붙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선두를 틀었다. 와드드드 하며 바다 위에서 부딪힌 두 얼음판이 위로 치솟는 것이 보였다. 아래에 드리워져 있던 투명하고 녹푸른 얼음덩이가 보였다. 위험신호였다.
그때, 파도가 배를 덮쳤다. 크릿은 이에 배를 묶은 끈을 물고 힘차게 노를 저었다, 바다표범 가죽 냄새가 났다.
카누가 뒤집혔다.
얼어붙은 나라에서는 물의 질감이란 철과 하는 대화와 같다. 남국의 따스한 휴양지는 없는 개념에 가깝고, 툰드라가 드리운 대지에서 찰방거리는 웅덩이마저 피해 가기에 여념이 없다. 간혹 염장한 시체처럼 차가운 물 속에 손을 넣어 예쁜 조약돌을 구할 때 빼고는 온몸을 담가 헤엄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제 크릿은 물의 질감을 안다. 단단한 피혁을 꿰뚫는 송곳 같은 감촉이 그의 온몸을 촘촘하게 에워쌌다. 머릿가죽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죽음에 수렴할 만큼 차가워질 뿐이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그라질 때쯤에는 크릿은 자신의 몸과 막대한 양의 바닷물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정말로는 십몇 초가 지났을 시간에, 그는 이곳이 행성 반대편의 대운하라고 생각했다.
그때 등이 유연하게 굽어졌다. 온도를 앗긴 몸이 송장처럼 구부러지는구나 생각했는데, 아릿한 온기가─냉기일지도 모르지─그의 목덜미를 붙잡고 강력한 힘으로 끌어올렸다. 머리카락이 빨려 올라가는 것 같은 당기는 느낌과 함께, 그는 온몸의 살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요정이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아프지? 기다렸다가 가.”
여인의 눈빛은 공기를 얼게 만드는 빛처럼 적막하게 움틀거리고 있었다. 크릿은 둔한 혀로 애써 발음했다.
“가… 고맙…”
“그나저나 이것 좀 봐.”
요정-여인이 가느다랗고 보드라워 보이는(괴력의 발산지였을)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돌아섰다. 거기에는 눈이 부실 만큼 형형색색인 찬란한 탑이 머리도 없이 수면 위로 치솟고 있었다. 크릿은, 한 번도 저런 석상의 꼭대기 같은 것을, 본 적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 광경에 경도되었다. 온몸이 달싹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으니 당연히.
“내 이름은 테베.” 긴 손가락이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듯 탑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건 크립토리움. 열 달 동안 매달린 걸작.” 그러고서는 손가락을 집어넣고 그 오른팔을 홱 가로치는 것이다.
신전이 무너졌다.
크릿은 테베라는 저 조그만 요정을 무심코 신성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끌어내려’ 훈기가 도는 땅 위에 뉘어 놓은 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것 같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