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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ㅍ님

나사르 본주 2021. 7. 1. 13:33

단문 커미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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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주스가 떫을 정도로 달았다. 실버는 자리를 잘못 잡아 지는 해가 그대로 들이치는 이 자리부터 바꾸어야 할지, 이 떨떠름한 맛의 주스를 주문한 실책을 만회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곧 무용한 일이 되었다. 에스텔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뺨을 붉히고 있었던 것이다.

당분과 더위로 상기되었을 뿐일 테지만, 십수 걸음이면 닿을 수 있을 만한 거리에 찰싹이는 투명한 물보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각별했다. 해가 지고 있었으므로 작열하는 태양은 뜨거웠지만, 그것이 봄기운 띤 온기로만 느껴질 만큼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홧홧한 저녁놀 아래서도 장밋빛인 볼과, 주홍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눈망울이란.

파라솔 위로는 커다란 나뭇잎이 짙게 그림자 지고 있었다. 깃털처럼 결결이 물결치는 야자수는 멀리 꺾여 보이는 해안도로까지 심겨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에스텔의 머리카락과 같은 방향으로 이울어졌다. 그렇게 정강이며 목덜미에 감기는 바람이 달아오른 살갗을 식혔다. 퍽 집중해서 파도 소리를 듣고 있는 에스텔은 평소처럼 재잘대지 않아 웃으며 멈추어버린 회화 속 아가씨 같기도 했다.

실버는 문득 에스텔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 나서야 깜짝 놀라 손가락을 움츠리려는데, 어느새 에스텔이 이쪽을 보면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가 명랑한 몸짓으로 턱을 괴면서 소리 내어 웃었다.

너무 예쁘다. 그렇지?”

그 순간 실버는 입안의 시고 달콤한 맛을 잊었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맛이나 향이라는 것이 수많은 선으로 발산하여 일개 육신으로는 감각할 수 없어질 때가. 실버는 이러한 순간만이 사람을 구원하리라고 믿었다.

자신은 에스텔을 통해 끊임없이, 내일로 미루어지고 있었고, 어떨 때는 머뭇거렸지만 단 한 번도 달갑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 예뻐.”

실버는 에스텔의 눈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저녁놀을 맞아 불꽃처럼 영롱해진 눈동자에 에스텔의 시선은 매혹된 듯이 붙박여 있었다. 금빛 머리카락이 눈부시게 흩어져 실버의 눈가를 스치고 있었다. 에스텔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이마에 따스한 손가락이 닿았고, 손 틈으로 금타래가 가늘게 흐트러지는 걸 보고서야 에스텔은 문득 동작을 멈추었다.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괜찮아.”

실버가 미소 지으며 에스텔의 손을 부드러이 잡아 왔다. 다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눈꺼풀 언저리에서 매끄러운 빛을 발했다. 에스텔이 작게 소리 내어 웃고는 중얼거렸다. “영화 속 장면 같아.”

“<비포 선셋> 같은?”

, 그 시리즈. 바다는 안 나오지만.”

조금 있다가그런 바를 찾아볼까.”

어쿠스틱 바?”

사람 별로 없는 클럽도 괜찮을 거야. 비포 시리즈라면.”

그런 다음 기차도 타고?”

찾아볼게.”

진지하게 대답하는 실버를 보고서, 에스텔은 낭랑하게 웃고 말았다. 열차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안을 도는 케이블카 정도는 거뜬하게 찾아낼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볕을 쪼이던 태양이 서서히 내려앉아, 이제는 서로의 발등이 강렬한 주황색으로 불타고 있었다. 수평선은 이미 옅은 보랏빛과 암청색으로 물들어 갔다. 오묘한 빛을 띠는 파도가 언뜻언뜻 투명한 물방울을 튀기며 모래톱을 덮쳐왔다. 실버는 해변에 묻은 포말을 구경하는, 에스텔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반도 채 마시지 않은 유리컵 테두리에 은파가 옮아 눈이 부시도록 반짝였다. 그것이 가까운 파도의 연장선인 것 같아 실버는, 파라솔 그늘 때문이겠지만, 어깨를 적시는 서늘한 물결을 느낄 수 있었다. 사위에 천천히 내려앉는 밤의 그림자가 투명한 보라색으로 덮쳐오는 탓에 바닷속에 둘만 남아 부유하는 것 같았다.

사실은 언제나 그래왔는지도 모른다. 몸이 느려지는 물속에서, 서로가 부표인 양 깍지 낀 손을 부여잡고 유영해왔는지도. 하지만 간혹 이렇게, 얕은 연안에 발이 닿으면 숨통을 틔며 속이 울리도록 웃는 것이다.

이런 삶이라면 충분했다. 실버는 음료에서 빨대를 빼고 끝을 살짝 씹어 보았다. 딱딱하고 시고, 아주 쓴 맛이 났다.

마지막에 남는 달콤한 감각을, 여전히 달갑게 여길 수는 없었지만, 눈앞의 연인에게 취해 있는다면 이 맛을 언제든 행복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그는 에스텔을 불렀다.

사랑스러운 연인이 돌아보았다. 그 눈 안에는 온전한 자기 자신이 담겨 있었다. 오로지 에스텔의 시선 속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