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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ㄹ님

나사르 본주 2021. 7. 3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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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은 아무래도 오래전 버려진 듯했다. 몇 해 동안 관리되지 않아 담쟁이넝쿨이 외벽을 타고 오르며 끈끈한 손톱을 내밀었고, 대리석으로 윤이 나게 만든 현관은 금이 가 이끼가 자랐으며 작은 뒤뜰이 토끼풀에 점령당한 지 오래였다. 모양새가 번듯해서 누군가 사들일 법도 한데 집 뒤편으로 난 습지를 감수할 만큼의 멋은 없는지 문에 빗장이 걸린 채 홀로 눈비를 견뎌내고만 있었다. 그리고 버려진 것의 냄새는 버림받은 것들만이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덤불과 이끼로 덮인 현관을 뒤져 산토스라 적힌 옛 주인의 문패를 찾아낸 것도 바로 그러한 부랑아들이었다.

나탈리는 맨발로 벅벅 긁어 이끼를 벗겨내 연녹색으로 물든 대리석이 드러난 바닥에서 다 썩어가는 나뭇조각을 들어 올렸다. 지금이야 습기에 쇠하긴 했지만, 이것이 여기, 이쯤 달려 있을 때는나탈리는 문 옆 못이 박힌 곳에 문패를 대보았다에메랄드 컷처럼 모서리를 자르고, 금속 질로 이름을 입혀 꽤 고급의 물건이었을 거였다. 옆에서 까치발을 하고 목재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페르난이 그건 체리 나무.”라고 했다. 성한 곳의 빛깔이 돼지고기 같은 분홍색이라는 이유였다. 나탈리는 똑똑한 녀석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 놓고, 한 번 밟으면 부러질 만한 그것을 멀리에 던져버렸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앉은 공터 풀숲 쪽에서 풀썩하는 소리가 났다. 페르난이 손차양을 하고 그리를 보며 짧게 휘파람 불었다.

산토스!”

나탈리가 외쳤다. 먹구름을 잔뜩 머금어 먹먹한 대기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일순간 찢었다.

거기가 편하지?”

그러면서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키득거렸다.

둘은 비구름을 피하는 중이었다. 몬순이니 뭐니 때문에 한바탕 스콜이 퍼붓는 우기도 끝에 가까워지는지 점점 빗소리가 나직해졌다. 우기는 어떤 문명에든 달갑지만은 않은 소리일 것이다만,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특히 더했다. 더러운 물로 홍수가 나면 빨간 발진이 돋기 일쑤였고 습하고 어두워 다들 곤두서 있는 데다가, 거리에 내몰린 갓난애들이 상한 걸 주워 먹고 뒤집어졌다.

쓰레기통을 뒤질 수도 없는 철인 것이다. 페르난은 일찍이 이런 명언을 남겼다. “장마는 가난하다.”

멋진 말이지만 비 그쳐도 딱히 나아지지 않는걸. 그냥 이참에, 농장들 쪽으로 내려가 버릴까?”

나탈리가 말했다. 적어도 서리를 하거나 밭에 남은 농작물을 줍는 게 먹고살기 좋잖으냐는 주장은 몇 년째 겨울마다 꾸준했다. 하지만 페르난은 매번 그 말에는 반감을 느꼈다.

차라리 여기가 나아.”

그건 태어난(?) 곳에 관한 최소한의 애정일지 모른다고 나탈리는 생각했다. 하여간 동생 말을 따라서 손해 본 적은 없으므로 매양 지금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쓰레기장 새끼들은 쓰레기 먹으면서 살기.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킬킬대는데, 등을 기댄 문짝이 철커덩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탈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집고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실로 짐승 같은 몸맵시였다.

열린 폐허 안쪽으로부터 길고 찬 바람이 불어왔다. 늪지대를 통과해 들어온 공기는 아주 끈끈해, 얼굴에 물처럼 맺혔다. 무슨 일이냐 싶어 다가온 페르난이 스산한 바람 소리에 성한 문짝 뒤로 숨었다. 먼짓구덩이에 널브러진 나탈리가 내뱉는 욕지거리만 들려왔다. 어디선가 날개를 파닥이는 작은 소음도 있었는데, 박쥐가 틀림없었다.

나탈리는 바닥에 부딪힌 무릎을 싸쥐며 불평했다. “무슨 던전이야?”

페르난이 문 뒤에서 고개를 내밀며 귀를 기울였다. 아무도 없기 때문에 고요할 거라고만 생각했지만, 집안은 누군가 우는 듯한 으스스하고 잘게 떠는 온갖 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늪지대에서 불어오는 공기는 습기뿐만이 아니라 희한한 벌레 울음, 맹꽁이, 사람 휘파람 같은 새소리를 몰아왔다. 그것이 오래 방치된 목조 건물 안에서 메아리를 벌다가 포말처럼 사그라졌다.

산토스!”

나탈리가 겁도 없이 외쳤다. 박쥐 날개가 부딪치며 서로 끽끽거리는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유령은 없네.” 결론을 내린 나탈리는 그대로 집 안에 발을 들였다. 먼지가 하도 쌓여 몰랐는데, 바닥에는 두툼한 양탄자가 깔려 있어 가벼운 아이들 정도의 발걸음으로는 소음이 일지 않았다. 페르난이 제 누이를 총총 따라갔다. 그들은 계단 앞에 서 있었다.

삼 층까지였지?”

각각의 문은 생김새가 달랐고, 어떤 것에는 아름다운 당초무늬가 양각되어 있었다. 죄다 닫혀 있었지만 잠긴 문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하나를 제외한 모든 방문을 무자비하게 열어제껴가며 발견한 물건들은 이렇다: 흰 천으로 덮어 놓은 소파와 장롱 등속의 가구, 멀쩡한 침대와 이불(오늘 아침까지도 쓰던 것처럼 흐트러진), 썩은 바닥 널빤지와 멀쩡한 대들보, 녹이 슬어 청록색이 된 촛대, 흘러내려 촛대와 한 몸이 되어버린 작은 양초들, 손에 드는 초롱. 그리고 다락방에는 욕조가 있었다.

별 흥미 없이 낡아빠진 물건들을 집어 던지던 남매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게 왜 여기 있냐, 같은 표정으로.

부자들은 욕실이 맨 위층이냐?”

모르겠어. 하지만 배수구도 없는걸.”

하인들이 물을 양동이로 퍼서 창밖에 내다 버리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나탈리는 욕조 속에 누웠다. 성인이 다리를 굽히고 들어갈 만한 욕조는 나탈리에게 애매하게 짧아서, 등과 무릎이 조금씩 떴다. 페르난은 누나의 (안 그래도 젖어 있던) 옷이 먼지투성이가 되어가는 걸 보며 웃었다. “괜찮아. 집안 먼지는 깨끗해.” 나탈리는 헛소리로 응수했다.

그때 어디선가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페리.” 나탈리는 바람에 문이 닫히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페르난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일단 다락방까지 올라올 굉음을 만들 만한 바람이 창을 흔든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늪지대에 그러한 광풍이 불었다면 풀이 쓸리는 소리부터 나야 했다.

이 집에 누군가 있어.”

이것이 페르난의 결론이었고, 나탈리는 욕조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며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할 일도 없는데 동생의 탐정 놀이에 맞춰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무엇보다도 비가 내리고 있었고, 해가 질 무렵이었으므로 수렵 활동따위를 하기에도 부적절했다. 아무리 영리해도 페르난은 애였다. 겁을 쉽게 집어먹는.

나탈리는 옷을 툭툭 털고 다락방 창문을 위로 올려 열었다. 심하게 삐꺽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힘을 주자 창틀이 뻑뻑하게 긁히는 소리와 함께 창이 열렸다. 먼지투성이의 불투명한 유리가 사라지자 저녁으로 다가가는 서녘의 햇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찡그린 얼굴로 불그스레한 볕을 노려보는 나탈리에게 페르난이 다가갔다.

돌아보는 누이의 모습은 역광이 진 옆모습이라 두 눈만 형형해 보였다. 페르난은 뜨겁고 발간 노을 때문인 것처럼 얼굴을 붉혔다. “비는 곧 그칠 거야.” 페르난이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유령을 잡아야겠어. 누나, 오늘 여기서 잘 거지?”

마치 그렇게 해달라는 말 같았다. 안 될 것도 없고 퍽 즐거운 계획이었으므로 나탈리는 씩 웃으며 그러자, 고 했다. “빛이 필요하겠네.” 페르난이 심각한 투로 덧붙였다. 둘의 아지트에는 건전지가 다 닳아가는 회중전등이 있었는데, 이 을씨년스러운 집안에는 그런 신식 물건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대체 몇 년 전에 버려진 건지.

버려진 집은 우리와 함께 태어났을지도 몰라. 여전히 진중한 얼굴이던 페르난이 말해서, 나탈리는 와락 쓰다듬어주고는 차차 어두워지는 다락방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페르난이 허겁지겁 뒤따랐다. 나탈리가 떠올린 것은 안에 촛불을 켜고 드는 종류의 초롱이었다. 방을 설렁설렁 뒤지고 다닐 때 지하실(아마 식료품 따위를 보관했을) 문간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지하실은 열리지 않았다.

애초 창문이 좁고 적은 집이라, 해가 지고 나서는 아주 어두컴컴했다. 나탈리가 시험 삼아 스위치를 올려보았지만(이조차 구식이었다!) 역시 전구는 깜빡이는 기색조차 없었다. 몇몇 개는 깨져 있었다. 울창한 늪지대에서 불어온 바람이 뒷문을 젖히고, 약해진 유리알을 흔들어 댄 탓이었다. 게다가 전년에는 폭풍이 있었으니까.

나탈리는 저희가 이 도시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떠올려보았다. 적확한 기억은 없었지만, 페르난의 손이 지금보다 작았던 것 같아. 그들에게는 달력이 없어서 계절만이 변화의 주기였고, 이곳은 여름뿐인 곳이었기 때문에 비가 얼마나 내렸는가밖에는 기억해낼 것이 없었다. 그나마 유난히 가뭄이 심했던 해를 제외하고는 죽죽 내려댔으니.

나탈리는 초롱 안에 눌어붙은 초에 성냥불을 갖다 대는 페르난을 보면서, 그 조심스럽고 여문 손길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몇 살일까. 그리고는 아이치고 주름이 많으며 편리하게 못이 박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페르난이 그런 그를 보며 물었다.

여기 열어 봤던가?”

, 아닐걸.”

나탈리가 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발로 차거나 손으로 당겼을 때 한 번에 열리지 않는 문은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저희네 집도 아니었고, 버려진 마당에 뭐 건질 게 있겠나 싶어서였다. 실제로 잠긴 문은 몇 되지 않았고 열려 있는 방의 수확도 그저 그랬다. 심지어 지하실일 게 뻔한 이쪽 문은 열었다간 악취만 샐 것이 뻔해 미련 없이 돌아섰던 터였다. “왜 여길 잠가놨을까?” 페르난이 말하며 초롱을 들어 올렸다. 얼굴에 주황색 촛불 빛이 일렁이며 음산한 암청색 그림자를 자아냈다. 꼴이 유령 같아 나탈리는 픽 웃었다.

오늘따라 궁금한 게 많다?”

그냥 식료품 창고인데, 이런 잠금쇠를 달아 둘 이유가 없잖아.”

페르난이 가리킨 것은 낡아빠진, 좌우로 여닫는 구식 잠금장치였다. 녹이 슬어서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이 바깥쪽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꼭 누구 가둬놓은 것 같네.” 나탈리가 중얼거리다가, 문짝을 쾅 걷어찼다. 페르난이 움찔 놀라며 초롱불을 흔들어 가느다란 불티가 튀었다. 씩 웃더니, 나탈리는 문을 두어 번 더 걷어찼고, 녹이 슨 문고리를 쥐어 비틀며 확 잡아당겼다.

큰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그들을 휩쓸었다. 유리로 가로막혀 촛불은 울렁거리다가 다시 타올랐지만, 페르난의 얼굴은 조금 질려 있었다. 바람에서 눅눅하게 녹아내리는 곰팡이와 오래된 돌벽에 끼인 물이끼 냄새가 났다. 안에는 전등이 달려 있었지만 나탈리가 스위치를 올려도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별거 없네.”

하며 나탈리는 먼저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산토스, 있어? 뭣도 없을 게 빤하다는 듯이 무심하게 외치는 나탈리의 목소리가 벽을 타고 짧은 메아리를 울렸다. 페르난은 추위를 느꼈다. 비를 맞아 젖은 옷에 지저 통로의 한기와, 날카로운 바람이 파고든 탓이다. 초롱을 흔들흔들하며 방자한 자태로 내려가는 나탈리의 뒤에서 페르난은 양 팔꿈치를 감싼, 움츠린 자세로 종종걸음 했다.

벽은 시멘트, 천장을 지탱하는 기둥과 서까래는 모두 나무였고 온갖 곳에 축축한 곰팡이가 스며 있었다. 페르난은 입김이 나오지 않는 게 놀라웠다. 그럴 만큼 추웠기 때문이었다. 나탈리도 비슷하게 불편감을 느꼈는지 입술을 비틀며 더욱 빠르게 걸어 내려갔다. 계단은 조금 불편할 만큼 칸 길이가 넓고 경사가 완만했다. 그런 계단이 유선형으로 나 있었다. 원래 나선형으로 굽이쳐야 할 모양인데 방을 생각보다 덜 깊게 파서 중간에 잘린 것처럼 되어 있었다.

곰팡냄새에 익숙해지자, 가장 먼저 코점막을 톡 쏘는 듯한 내음이 느껴졌다. 오래된 양파껍질 같은 냄새였다. 이 썩어가는 저택 안에서는 처음 맡는 사람 냄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음식에 가까운, 그러니까 향기에 밀접한 무언가니까. 그래서 페르난은 안도감을 느꼈다.

나탈리가 등불을 들어 올리자 열린 문이 보였다. 식료품 저장고는 애초에 아주 좁았다. 선반이 양쪽으로 서 있고 바닥에 깡통 껍데기와 식물의 잔해 같은 것이 굴러다니는, 정사각형의 방이었다. 따라서 그 문은 아주 잘 보였다. 불을 들어 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거기선 반짝이는 것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페르난은 그마만큼의 빛에도 눈이 부신 듯 약간 찌푸렸다.

반딧불이야.”

나탈리가 말했다. 그러며 조심성 없이 투박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눈앞이 환하다, 고 페르난은 느꼈다. 바깥엔 슴슴한 파랑이 직물처럼 펼쳐진 구름 안쪽에 가득 차 미세한 빛깔의 미립자를 퍼뜨리고 있었다. 거긴 바깥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없네.”

페르난이 나탈리의 곁에 다가서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반짝이는 무언가는 늪 너머 울창한 초림에서 건너온 듯한 반딧불이 두어 마리였다. 누렇게 뜬 살인마의 눈깔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지하는 늪지대에 박혀 집 절반을 지탱하는 석재 버팀목 바로 위였다. 땅 밑이라기보다는 짧은 절벽 근처라고 하는 게 나을 것이었다.

진짜 우리 거네.”

나탈리가 덧붙이며 씩 웃었다. 나탈리는 일부러인 듯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이렇게 하자.”

여기 주인이 산토스였잖아.”

. 체리 나무로 만든 문패 말이지?”

체리든 서양자두든 간에 버리고 갔잖아 그 자식이. 그리고 우리는 집이 없고.”

그래서?”

우린 돌아온 탕아인 거야.”

그러니까 훔친 게 아니지, 산토스 노릇을 할 거니까. 나탈리는 별거 아닌 듯이 말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반딧불이 하나가 그의 어깨에 살며시 붙었다. 페르난은 조금 멍하니, 그게 그렇게 될 수가 있나,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 문득 피로를 느꼈다. 비를 맞은 데다 넓은 집안을 쏘다니고 긴장까지 했던 터였다.

게다가 나탈리의 논리는 얼추 그럴싸했으므로, 어차피 버려진 것을 써먹으며 살아왔으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탈리는 그걸 보더니 이 곰팡내 나는 구석에선 안 잔다며 쿵쾅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페르난은 누나, 하고 서둘러 따라가다가 문득 문밖에 달려 있던, 지금은 부서져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잠금쇠를 보았다.

아이를 키운 모양이었다. 늪으로 이어지는 저장고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잠가 놓았던 것이겠지.

그 아이가 어디로 갔는진 몰라도 퀴퀴한 이곳보다는 좋은 곳이리라. 어쩌면 해안선이 보이고 수영복 차림으로 집을 나서서 십 분만 걸으면 흰 물거품을 맛볼 수 있는 부자 동네로.

그러므로 여긴 우리가 가진다, 페르난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처 눈치채지 못한 졸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보통은 무더운 낮에 자고 밤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홉 시만 되어도 데운 우유를 마시고 파자마를 입는 아이들처럼 캄캄한 밤을 꿈으로 헤쳐야 할 모양이었다. 페르난은 나탈리를 찾아 살금살금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침대 내 거, 라고 나탈리가 외치는 통에 페르난은 혼자 자야 하냐며 울먹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