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ple

ㅎㅈ님

나사르 본주 2021. 8. 22. 18:55
더보기

미시간에서도 내륙 쪽을 택한 건 물비린내가 컨테이너의 정경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다. 그 비슷한 냄새가 나는 한은, 바람이 불어 어디 표지판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페인트를 떡칠한 채 녹슬어가던 그 우체통이 태풍에 기울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면 우체통은 무슨 이웃집과의 간격도 멀었다. 더 가면 국립공원이라, 이보다 사막에 가까운 동네는 없다고, 여기까지 태워다 준 화물 기사가 말했었다.

멀지 않은 곳에는 호수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강을 끼고 도는 다운타운보다야 덜 습한 공기였다. 자주 오가는 사람들은 관광객들 뿐이라서 여러 번 마주할 낯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거기엔 유명 관광지 뒤꼍에 서서 장기체류자를 고객으로 삼는 모텔처럼 생긴 건물이 하나 있었다. 에이버리는 방을 한 칸 반 정도 구했고, 원래 놓여 있던 다 무너져가는 침대도 싼값으로 매입했다. 집보다는 잠시 거쳐 가는 공간의 냄새가 났고 사는 사람들도 대체로 그런 이들인 것 같았지만, 그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남자가 찾아왔다. 리우 해리스는, 호숫가에 콜라나 마시러 가자며 에이버리를 꼬셨다. 마침 덥고 갈증이 나 에이버리는 변변찮은 환대도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걸어가려는 줄 알고 슬리퍼째로 터덜터덜 나왔는데, 리우는 에이버리를 태우고도 한참을 계속 운전했다.

이렇게나 가야 나오는 자판기는 대체 얼마짜리냐고 에이버리가 투덜거렸다. 어 완전 황금으로 만들었지, 리우가 건성으로 대꾸했다. 에이버리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제 것도 아닌 담뱃갑을 열어 마지막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는 주머니에 있었다.

차창 밖으로 담배 연기가 빨려 나갔다. “아직도 뒷자리에서 떡 치고 그래?” 제대로 된 첫마디가 그거였다. 생각보다 거칠게 말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잠시 고민하던 에이버리는 그냥 담배나 마저 피우기로 했다. 그때 긴 팔이 쭉 다가와 담배를 빼앗아 갔다.

뭐 하는 짓이야.”

리우는 차의 속력을 줄여가며 맛있게 뻐끔거리기만 했다. 에이버리가 그 눅눅한 표정을 약간이나마 일그러뜨렸을 때야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잘생긴 남편이 왔는데 하는 말이 그거야?”

죽고 싶지.”

에이버리는 여전히 어딘가 중얼거리는 것처럼 말했다. “자기가 없는데 뭐하러 그래.” 리우가 어깨를 들썩이며 먼젓번 말에 산뜻하게 대꾸하자, 그제야 실없고 맥아리 없는 질문인 게 느껴져서 몸을 뒤로 기대며 시선을 창밖에 두었다. 이 근방은 탁 트인 황야 같은 게 없다.

오로지 하늘뿐. 하늘뿐이지, 호수는 푸르고 노랗거나 검다. 밤하늘과 마찬가지로. 미시간은 지독하게 물이 많은 곳이고 에이버리는 슬슬 지겹다고 생각한다. 끔찍한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이 밤중에도 별빛 묽은 향취라는 양 민물 냄새가 감돌지 않는가.

내가 없어서 아쉬웠냐고 에이버리는 물었다. 입 밖으로 낼 때까지만 해도 심심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헛웃음 같은 거. 다 지나고 나서야 더듬어보는 옛적의 실수 같은 거 말이다. 리우 해리스는 글쎄, 하며 한 손으로 턱을 더듬더니 말이 없었다. 대답조차 필요 없을 잡담이었나 싶어 에이버리는 창틀에 팔꿈치를 대고 생각을 지웠다.

리우가 그런 그의 입에 한 두어 모금 남았을까 싶은 연초를 되물려주었다. 에이버리는 찡그리면서도 연기를 빨아들였다. 종이와 마른 잎이 파스스 재 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깊게.

그리웠을지도 모르지.”

리우 해리스는, 품 안에 조금 모자라게 차던 온기를 기억하며 말했다. 약에 취해 뜨끈해진 몸으로 얌전히 안겨 있던그때는 큰 개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 붙이면 터럭이 가칠가칠한 강아지도 없는 게 아쉬워지니까.

늘 얌전히 기다리며 앉아 있던 개라면 더 그렇다. 리우는 남은 꽁초를 다 끄지도 않고 던져버리는 에이버리를 웃는 낯으로 보았다. 기실 그는, 에이버리 앞에서는 늘 만족한 듯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애가 이쪽을 보고 있지 않더라도. 하지만 무심코 다른 데에 시선을 주다가 고개를 돌리면, 에이버리는 반드시 이곳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건 그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임을 리우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더는, 무언갈 기다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지도. 세상은 너무 넓고 할 수 있는 일은 적으며 해야 할 것은 자질구레한데, 뭣도 없이 앉아 주인이 문을 열고, 자신을 찾아 들어와 주기를 기다리는 건. 그건 외로움의 서술형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떠나고 싶지 않다라고도 리우 해리스는 생각한다. 앞을 보고 안전하게 운전하면서. 떠나갔다가 돌아오는 것들은 반드시 과거분사로 쓰이게 된다. 그는 갔다/나는 기억한다/기억하고 있다/기다린다. 함께 머무르게 된다면 필요 없어질 문법이다.

바로 그때 리우 해리스는 여기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버리가 창밖을 보며 자신을 실어 가는 자동차 승차감이나 느끼고 있을 때. 그들은 나란히 앉아 있고 담배도 나누어 피웠으므로 지금 당장엔 무언가를 적지 않아도 된다. 시험에서 틀릴 일도 없다. 게다가 정경이 꽤 괜찮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각각의 호수, 부푼 반달처럼 곡이 진 모래언덕이란. 아무것도 고여 있지 않은 곳이었다. 적어도 오늘내일 사막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질 테니.

리우가 그렇게 말하자 에이버리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매일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려.”

?”

모래가 창문에 부딪히거든. 덕분에 쥐가 사는지는 몰라. 갉는 소리인지 모래바람인지 분간을 안 하니까.”

더 좋네.”

뭐가 좋다는 건지, 또 혼자 음험하게 계획이랄 걸 세우고 있는 건지 의심되어 에이버리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사막이고 물이 흐르는 소리도 있으니 일석이조지. 고를 필요 없잖아.” 리우가 능청맞게 덧붙였다. 에이버리는 그냥, 그런가, 그럼 좋은 거지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차창에 기대어 라이터로 장난이나 치려는데 리우가 나직이 불렀다. 앞을 봐. ? 귀엽게 심술부리지 말고 봐봐. 에이버리는 앞을 보았다.

큰 호수가 있었다. 에이버리는 그제야 그들이 국립공원 쪽으로 달려왔음을 깨달았다. 이 공원에는 절벽이 있고 깎아지른 절벽 위쪽에는 그만큼 넓고 편평해 자리 깔 만한 데가 있다고 주워 들은 것 같았다. 리우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빈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 하고, 골 인.

축축한 바람이 마른 입술을 적셨다. 청량한 게 마시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