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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ㄹㅅ님

나사르 본주 2022. 6. 22. 12:23

웨딩박살 ~결혼식 탈주 로망 이루어드립니다~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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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두 가지 예감

 

 

 

아직 천국에 당도하지 못했지만, 이 옷감은 그곳에서나 다시 보겠지. 이사라는 머리에 쓸 베일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그의 허리띠에는 보라색 끈이 묶여 있었다. 귀한 딸을 내어 준다는 의미인데, 과거 값비싼 염료였기 때문에 이 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드립니다라는 예식의 뜻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사라의 허리띠는 한 달 전 시장에서 사 온 것이다.

순결한 하얀 천으로 재봉한 웨딩드레스에는 가족과 이웃들의 손바느질이 새기어 있었다. 전통 혼례는 서구식 혼약 이후 하기 마련이지만, 상대측의 보수적인 성향을 고려해 비단에 다시 명주실로 떠 놓는 오래된 문화를 지켰다. 이사라는 그 노력이 측은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져 그냥 두었다. 이웃사촌끼리 거실에 모여 함께 떠드는 모습은 좋았으니까.

그래서 이사라는, 남편 될 사람약혼까지 마쳤으니 거의 남편의 손을 잡고 차에 올라탔다. 신랑이 신부를 태운 채 결혼식장을 돌며 선언해야 했다. 차는 느리게 나아갔고 이사라의 머리카락은 속력보다 센 바람에 흐트러졌다. 어차피 떨어질 테니 베일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거의 남편은 선심 쓰듯 말했다. 이사라는 말대로 했다.

하객 중 빠진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신부 측 하객은 충분했다. 아버지와 친가 측 대가족, 죽은 어머니를 대신하는 역시 대가족인 외가, 드레스를 만져준 이웃과 이 마을 사람들. 신랑 측 하객은 더했다. 전쟁통에 사업을 한다고 했나. 도회지 냄새를 풍기는 양장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곧 시어머니가 될 사람은 인자해 보였다.

그래, 다 좋은 분들이야. 한 명이 빠졌을 뿐이지. 이사라는 나쁜 마음 없는 손님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가 배운 예절이었다.

오지 않았지만 떠올려보자. 그이라면, 예식이 시작되기 전 느지막이 나타나 비딱한 얼굴로 문간에 기대어 설 것이다. 정장 차림은 상상되지 않으니 며칠 전 만났을 때 입었던 옷 그대로. 바지 주머니에 무지개색 기름투성이 연장을 꽂아 넣고, 어깨가 지나치게 가벼운 사람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어와서 팔짱을 낄 거다. 으레 도시 여자들이 그렇듯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구나,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그러다가 식이 시작되면 떠났겠지.

이사라는 그가 떠난 게 아니라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이처럼 정확하게 생각하는 건 내내 문 쪽을 흘끔거렸기 때문이다.

어디 불편해요?”

케인 오타가 물었다. 근면 성실하며 선량한 남자.

바람을 느끼고 있었어요.”

날씨가 좋지요? 물론 비가 내렸어도 좋았을 거예요.”

케인 오타는 축복받는 남자가 행복해하듯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도 약혼과 전야제를 거친 성대한 축제는 기쁜 법이다. 신부가 할 일도 별로 없다. 가만 앉아서 와주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고 한 번씩 인사 나누면 된다. 마을 사람들과는 미리 작별 인사를 해두었고, 신랑 측 인사와는 마주칠 일이 없어서 정말 편안했다.

이사라는 케인이 활짝 웃으면서도 이쪽을 보지 않는다는 걸 지적하고 싶었다. 운전대를 잡았다고는 하나 신부 얼굴에 흘깃 시선 던질 법도 한데. 케인 오타의 눈은 암갈색이었다. 이사라는 청량한 불처럼 생겨먹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 눈을 하고서 어울리지 않게 기웃대다가 길 좀 묻자며 다가왔었지.

케인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허리띠를 보고서 바로 눈치챘다. 도시 사람들은 그러는 일이 드물다. 마침 대낮이라 마을은 적적했고, 잠깐 물을 뜨러 나온 이사라와 방랑자는 그늘진 우물가에 앉아 두런거렸다. 그는 밀항, 기차, 버스를 타고 수도를 거쳐 다시 버스, 달구지, 농가의 말을 빌려 탔다. 이 너머에 있는 호수를 찾으러.

그곳 괴암은 망가지지 않았어. 퇴적층이 그대로 남아 있지.”

단지 여행일 뿐이라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사라가 평생 오간 거리의 천 배는 될 길을 건너온 것이다. 이사라는 당연히 수도 밖에도 세상이 있는 거구나 생각했다. 아무 말도 않고 있자 상대가 캐물었다.

시에스타 때인데 왜 일 하고 있지?”

목이 말라서요. 물동이는 비었고.”

갈증이 나서 자다가 깬 거야?”

아니에요. 열넷부터 낮잠 자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면, 다른 마을에 간 것 같아져서 신기하거든요.”

아그네이가 차가운 불티 같은 시선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내 이름은 아그네이.”

이사라는 순수하게 놀랐다. 사람이 저런 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에.

떠나고 싶은 거 알아, 날 따라서 여행해도 좋아.”

결혼해야 해요.”

이사라는 결혼이란 게 무슨 오후에 있는 약속인 것처럼 얘기했다. 아그네이는 태연자약이 이 정도면 질린다는 얼굴이었다. 이사라가 많이 봐온 얼굴. 그는 치마에 꿴 주머니를 뒤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은 청첩장을 건넸다.

아그네이는 이제 뜨악한 얼굴이었다. 청첩장은 살굿빛이고 희고 갓 태어난 아기처럼 보드라웠다. 이사라의 생각에도 아그네이의 손에 어울리지 않았다. 벌써 초대장에 흙먼지 자국을 남기고 있지 않은가.

, 이사라.”

아그네이가 불렀다.

이사라는 웃었다. 그리고 본분을 다한 듯 일어서서 물동이를 들었다.

 

이사라!”

저기 낯익은 말을 타고 질주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닌 것 같더니 멍청하네!”

이사라는 그가 아그네이인 걸 알았지만, 농장 말 로라를 탄 아그네이라는 건 부조화를 일으켜서 잠깐 멍하게 있었다. 곁에서 케인 오타가 당황해서는 짧은 욕지거리를 내뱉을 때야 이사라는 자기 할 일을 깨달았다.

그는 안전벤트를 풀었고, 케인을 향해 한 번 눈짓했다. 영리하고 성실한 남자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래 이 마을에선 처음 있는 일도 아닐 테다. 마을 근교를 한 바퀴 도는 건 쉽고 빠르니까, 이사라는 지금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사라는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비틀거렸다. 케인이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입술을 깨물었다. 신부가 튕겨 나갈지도 몰랐다. 그래서 케인은 간절해 떨리기까지 하는 손으로 이사라의 허리끈을 살짝 쥐었다. 신부가 살포시 웃더니,

뛰었다. 아그네이는 말에 올라타기 위해 가벼운 차림이었다. 이사라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 한 손으로 서툴게 고삐를 당기고, 한쪽 팔로는 허리를 감싸 안았다. 로라는 이사라를 잘 알았으므로, 그리고 이사라는 마구를 고친 적이 많으니까, 등자에 올린 아그네이의 발등을 밟고 뒤에 올라타는 몸짓은 연습해본 듯하다. 신랑 측 하객이 탄 차에서 힐난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사라는 아그네이의 등이 뜨겁다는 걸 알았다. 안 어울리는 짓을 했나. 숨이 가빴다. 느껴지지도 않던 근육이 땅겼다. 손끝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따갑고, 드레스를 젖혀 맨다리가 보이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힘껏 말에 매달리느라 안장에 치인 배와 어깨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아그네이가 맨손으로 말의 목을 찰싹 때렸다. 온순한 가축은 채찍보다 이쪽이 익숙했고, 은퇴해 방목되기 전에는 꿈꾸지 못할 속도로 달렸다. 이사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로 가는 걸까? 늘어선 승용차, 트랙터, 달구지 따위가 점처럼 멀어진다. 바람이 다리를 갈퀸다. 아차. 베일을 떨어뜨렸다.

이사라는 (모범적인 승마 태도로) 입을 꼭 다물고, 마음속으로만 속삭였다. 망가진 드레스, 즐거움으로 수 놓은 거실, 보라색 천 조각은 안녕. 전야제, 안녕. 피로연과 두 번째 아내. 안녕. 시간이 멈춘 듯한 시에스타도.

정수리가 앞사람의 등처럼 뜨거웠다. 아직 천국에 당도하지 못했으므로, 아름다운 옷감은 그곳에서나 다시 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