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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ㅅ님

나사르 본주 2022. 6. 23. 20:22

웨딩박살 타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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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 수 없이

< 참신한 >

! 로망 !

 

 

검은 리무진은 어떻게 해도 관이 실려 있는 것처럼 보인단 게 샬롯의 의견이었다. 샬롯은 집안 여자들이 워낙에 보수적이라며 투덜거렸다.

이 정도로 검은 차만 사들일 수 있어? 고급 마차를 타고 말지.”

유전학이라고 들어봤습니까?”

깍듯한 존대였으나 빈정거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취향은 흔히 물려받으므로 제 얼굴에 침 뱉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샬롯은 유하고 활달할 뿐 멍청한 이가 아니었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에이드리안의 팔뚝을 퍽 때리는 게 채신머리없었다.

샬롯과 에이드리안은 양 가의 증정품으로써 삼 주 전 만났다. 둘 다 처지를 알고 있었지만, 에이드리안이 수긍했다면 샬롯은 그 자리에서 목걸이를 패대기치고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저런 앱니다.” 장모 될 사람이 한숨도 쉬지 않고 말했을 때, 에이드리안은 이 혼사가 몹시 피곤해질 것임을 깨달았다.

아리아는 이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격렬한 반대는 없었지만 그 애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다. 신성과 국법으로 이루어진 혼인은 어쩔 수 없겠지. 혼인 계약을 맺는대서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박탈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고민하던 에이드리안은 정치적 부인 될 자를 설득했다. 어떻게 생각하는진 몰라도, 정략혼은 예삿일이다. 말하자면 정치적 계약이니 손에 얹는 반지 무게까지만 부담되도록 노력하겠다. 그 정도까지만 하자는 선언이었다.

호텔까지 운전하고 나자 샬롯을 먼저 내려버렸다. 차가 멈추기도 전 문이 열려 당황스러웠지만 에이드리안도 그냥 두었다. 사소한 염려 따위가 필요 없는 관계였다.

그가 겨우 긴장을 풀며 한숨을 내쉬는데, 차창을 톡톡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놀에 물들지 않는 얼음 같은 눈동자. 아리아였다.

내일이네.”

그가 말했다. 에이드리안은 조금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얘는 왜 여기 있나. 아리아에게 품은 호감과 별개로, 이 아이와 엮여서 일이 복잡해지지 않은 적 없었다. 에이드리안이 겨우 마땅한 대답을 찾았을 때 아리아는 벨보이의 시중을 받으며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다.

에이드리안은 급히 운전대를 맡기고 아리아를 따랐다. 샬롯에게 가면 어쩌나 했는데, 평범하게 체크인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름도 가명이 아니었다. 정말 묵으러 온 건가? 그는 잠시나마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젓고 아리아의 손가락을 살짝 쥐었다. 프런트 데스크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보고 싶었어.”

에이드리안이 말했다. 아리아러셀이 되지 않을오션은 그저 생긋 웃었다.

 

이 호화 호텔에는 밤이 깊어도 닫지 않는 시설이 있는데, 불법 도박 전용 클럽과 위스키 바, 그리고 유리온실이다. 정확히는 관리인이 퇴근하면서 잠가두지 않기 때문에 아는 사람만 가끔 들락거리는 정도. 호텔에 가는 건 대개 귀족이며 사업가들이고, 그들은 도박장을 선호하기 때문에 새벽 세 시 별빛을 바라보는 서정적인 짓에 취미를 들이지 않았다면 굳이 올 필요가 없다.

밀회? 호텔 자체가 밀회 장소인데 뭣 하러.

에이드리안은 서먹한 기분으로 온실 문을 밀어젖혔다. 터키석 구슬로 짠 태피스트리를 걷으니 바로 사람이 서 있었다.

기다렸어.”

아리아가 말했다. 그러고서 물이 고인 분수대로 가앉았다. 작동을 멈춘 분수는 고지식하게 생긴, 이끼 낀 석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리아는 망사 장갑을 낀 손으로 고요한 수면을 살짝 건드렸다. 동심원이 오랫동안 퍼졌다.

에이드리안은 어둠에 익숙해지고서야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 그런 건 안 세.”

곁에 앉아도 이쪽을 보지 않기에, 에이드리안은 의아해졌다. 기분이 상했나? 한 번 찡그리지 않더니. 시선을 따라가자, 물에 잠긴 은화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 회심의 소원을 빈 모양이다.

아리아가 고개를 들어 에이드리안을 가까이 마주했다.

무슨 소원일까?”

은 아닐 테고, 바람난 남편을 붙잡고 싶거나, 애인을 사로잡고 싶거나.”

말하던 그는 멈칫했다.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가 지금 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삿된 일이었다. 물론 그는 도덕적 잣대와 정치적 가치관을 분리하는 편이었고,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아리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무심해 보이지만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긴 속눈썹이 은화처럼 빛나는 바람에, 에이드리안은 무심코 아리아의 눈꼬리를 톡 건드렸다. 꼼짝도 안 해서 영락없는 인형 같았다.

에이드리안은 입 맞추고 싶다고 말했다. 아리아는 눈을 감거나, 이유를 묻지 않았다. “허락해.” 이마와 콧등에 차례대로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았다. 신성한 작별임과 동시에 배신의 키스. 둘은 잠깐 눈썹이 닿을 거리에서 숨을 내뱉었다. 유리창에 진 뿌연 입김처럼 미온한 공기에 목덜미가 짜릿해졌다.

갈 거야?”

아리아가 물었다. 에이드리안은 대답 대신 입술을 겹쳤다. 짧은 입맞춤 뒤에야 고개를 들고 투명한 별빛 쏟아지는 천정을 보았다.

그는 질문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다. 갈 거냐니.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변하는 건 별로 없겠지. 귀족 자제들이 품행을 단정히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여태까지 아무 일 없었으며, 당사자인 샬롯은 냉철했다.

중요한 건 아리아 A. 오션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네가 날 보내지 않을까…….

그는 금세 답을 찾아냈다.

네가 와줬으면 해. 아리아.”

아리아는 미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아느냐는 의미였지만, 에이드리안은 덧붙일 말 없단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에 잠긴 은화와 터키석이라. 그는 자신이 이 밤을 어떻게 기억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리무진은 동틀 무렵 이미 하얀 달리아로 뒤덮여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던 에이드리안마저, 앞이나 보이겠느냐고 잔소리를 할 수준이었다.

화룡점정은 광장 한복판서부터 성당 정문까지 깔린 카페트였다. 에이드리안의 에스코트를 받고 내려선 샬롯이 모깃소리로 투덜거렸다. 에이드리안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게 맞긴 하죠.”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정숙한 결혼이라 믿었건만, 아침에도 등을 밝히고 꽃을 장식하고 화려한 양탄자를 깔아 놓으니, 공기 중에 떠도는 소금 섞인 향의 냄새마저 악귀를 쫓기보다는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 사특해 보였다. 꽃들은 모두 분홍 노랑 빛이었고 에이드리안은 그 찬란함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만이 사치스러운 옷을 입기 마련이다.

지루한 연설이 이어졌다. 샬롯은 생각보다 점잖게 서서 주례를 듣고 있었다. 그 사이 에이드리안은 무의식중에 아리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리아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더라. 온실에서는 얼마나 기다렸던 걸까.

그 애는 늘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니, 묻는 대로 대답해주지만 상식선의 이야기조차 난 너에게 그런 걸 따질 이유가 없다라는 듯이 결백한 눈을 하는 것이다. 에이드리안은 아리아의 선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아리아는 모래사장에 발을 파묻었다. 그들 사이엔 항상 물거품이 일었다. 번잡한 시간을 잊게 만드는 능력을 아리아는 가지고 있었다.

기도를 한 귀에서 한 귀로 흘리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느라, 에이드리안은 자기가 뭔가 큰 착각을 한 줄 알았다. 환각을 볼 리는 없고 상념이 너무 깊었나…… 왜 아리아가 저기에 있는 거지. 눈초리쯤으로 식장 문을 흘긋거리던 에이드리안의 혼몽한 머릿속이 갑자기 맑아졌다.

초대를 받았는데…….”

아리아 오션이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휘황하게 차려입고 곁에 선 샬롯보다도 풍성한, 일고여덟 겹이 될 만한 동방의 꽃과 같은 옷이었다. 그러나 장신구는 하나도 없이 맨손에 맨발. 에이드리안은 경악스러워진 것과 동시에 감탄했다.

에이드리안이 빤히 보고만 있자, 아리아가 음, 하며 가볍게 턱을 괴더니 이쪽으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버진로드 한복판을 산보하듯이 걷는다. 저 애가 이렇게 무서운 적은 처음이었다. 차라리 위험한 장난을 저지르는 게 나았을 거다.

샬롯이 꺅하고 뒤늦은 비명을 올렸다. 아리아는 에이드리안의 손을 잡아챘다. 아직 반지를 나누지도, 입을 맞추지도 못했다. 에이드리안은 지나치게 차가운 물에 뛰어든 것처럼 이마 언저리가 어찔해졌다.

바깥은 환한 아침이었다. 참관객은 모두 성당 안에 모여 있었으므로 막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예의상 서 있던 근위병 하나가 아리아의 팔뚝을 향해 손을 뻗자, 에이드리안이 불쑥 나서서 쳐냈다. “꺼져.” 이렇게 된 이상 뭘 해야 할지는 명백했다.

우스운 일이다. 동화 속 마녀 같은 짓을 하는데, 왕자 꼴을 한 자신은 그 마녀의 손을 잡고 떠난다.

, 네가 오라고 해서 온 건데.” 아리아가 숨차하며 말했다. 에이드리안은 평소 건드리지도 않는 부류의 풍성한 드레스를 차려입었단 걸 지적하는 대신에 대충 대꾸했다. “잘했어.” 방해될 것 없다고 태만해져 있던 사람들이 종소리에 놀라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러나 한 발짝 내딛기 전, 드높은 가문 간의 신성한 혼약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난처하게 머뭇거렸다.

에이드리안은 한두 번 만졌다고 낯을 익힌 운전대를 붙잡고, 한쪽 팔로는 아리아의 허리를 감아 조수석에 앉혔다. 몸뚱어리는 작았지만, 드레스가 워낙에 화려해서(대체 어디서 구해온 건지) 잠깐 부스스해지는 시간이 생겼다.

두 번째 종이 쳤다.

충분히 예열된 자동차가 먼지를 날리며 불쑥 나아갔다. 모여든 근위병을 보니, 이 검고 거대한 기체에 다가설 만한 담력은 아무도 가지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디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는데 알 바 아니었다. 에이드리안은 차체를 움직여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광장 바닥에 깔린 융단이며, 장식용 꽃이 보람 없이 흩어졌다. 무수한 꽃잎 세례가 차창을 때렸다. 아리아는 이미 저지른 짓을 잊은 채 성스럽기까지 한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생화 향기, 하얀 이파리, , 꽃들, 비단 조각. 대리석이 시허옇게 달아오르는 시간. 세 번째 종소리.

열 번째 치기 전 둘은 광장을 벗어났다.

리무진이 눈발처럼 덕지덕지 붙은 다알리아로 더러워진 채 운전하긴 마땅찮은 대로를 쌩하니 가로질렀다. 에이드리안은 이 순간 자기가 훌륭한 운전기사라는 점에 감탄해야 하는지, 아니면 뒷거울로 상황을 살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아리아가 입을 열자 추태에 관한 염려가 태울 것을 잃었다.

이렇게 낭만적인 일은 처음이야. 소설에 안 나와.”

그렇겠지……. 에이드리안은 침음을 삼켰다. 길이 남아 돌이킬 수 없을 로맨스였다.

 

보기 힘든 자동차가, 황홀한 향기를 내뿜으며 달렸다는 소식이 장안을 꽉 메웠을 때, 둘은 물 흐르는 분수대에 은화를 던지고 있었다. 아리아가 정장을 입고 묵묵히 선 에이드리안에게 물었다.

무슨 소원 빌어?”

너랑 비슷한 거.”

그는 에이드리안이 필연적 상관을 깨달았나보다 생각했다.

에이드리안은, 아리아가 전혀 딴생각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아침 녘부터 자동차를 메우고 빛나던 흰 달리아 향기가 이 사람과 무척 잘 어울린다고만 말했다. 아리아 오션은 결국 에이드리안 러셀을 사로잡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