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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ㄱ님

나사르 본주 2022. 6. 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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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 살인마(가 겪은) 괴이한 이야기

 

이건 첫사랑을 관두게 된 계기에 관한 괴담이다. 직접 겪은 얘기다. 스레가 길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종교계 사람이나 용하다는 엑소시스트, 하다못해 동방 오컬트 문화에 기대어 봐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으니까. (‘굿을 하라고 하던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부적만 받아오긴 했다.)

방에 축성 받은 물을 뿌리고, 탈리스만을 붙여 뒀는데도, 아직 그때의 악몽을 꾼다. 아마 혼령이 붙어 있는 거겠지. 내가 하려고 한 게 나쁜 짓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말라 죽을 바에는 자수하고 싶다. 특별한 정황 증거가 없어서 자수할 수조차 없다.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면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때는 밤이었다. 이곳은 일 년 내내 쨍하거나 아니면 비가 내리거나 둘 중 하나였고, 그땐 겨울이어서 역시 빗줄기가 긋고 있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빗물에 주변 가게들은 일찍이 문을 닫았다. 난 그 여자가 야간 근무를 끝내고 병원서 나올 때까지 줄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차 안은 프링글스와 맥도날드 포장지가 굴러다녔고, 그 이상의 더러운 것도 있었지만 고즈넉한 공간이었다. 점차 기분이 좋아졌다.

종합병원에서 만난 여자였다. 말하는 매무새는 까칠했지만 마음에 든 후로 가끔 퇴근길을 함께하고는 했다. 그녀 모르게 차를 몰며 따라가는 방법이다. 별로 하는 건 없지만 같이 있다는 게 기분 좋았다. 그때 난 제정신 아니었으니 범죄자라 불러도 무방하지만 아무튼 진심이었다. 그런 일이 세 번째 되는 날 그것을 만났다.

만났다고 해야 할까? 이런 날 달이 뜨나보다 생각했는데 고양이였고, 하늘은 여전히 우중충했다. 다만 폭풍우 치는 듯 우중충한 검보랏빛 날씨보다 더욱 암흑인 것이 스쳐 지나간 거였다. 나는 앞서가는 여자의 신변을 걱정해 차에서 내렸다.

가로등 밑이었다. 며칠 전부터 몰아치는 폭우에 유리가 깨진 전등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얽힌 빛이 내 머리 위로 쏟아졌기 때문에 주변은 전혀 밝지 못한 채 우비만 번들거렸다. 손에 먹다 만 츄러스를 쥐고 있어서 뭔지 몰라도 험악해 보였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까 차창 바깥에 있던 게 뭐든 간에 허우대 좋고 흉기(처럼 보이는 거)를 쥔 남자한테 접근하지는 않으리라고.

하하, 얼마나 멍청했는지! 기웃거리며 내 앞에 선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눈깔이 형형해 잘못 뜬 두 개의 달 같았고 머리에는 뿔이 돋아 있었으며, 마구 설킨 머리카락이 젖은 해초처럼 휘날렸다. 높은 파도 속에서 뛰쳐나온 괴물 같았다. 나는 비명 지르는 대신에(그럴 정신머리가 없었다)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고 그것이 다시 한번 갸웃하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러다 실쭉 웃더니 내게 손을 뻗는 거다.

나는 눅눅해진 츄러스가 어둠 속 칼날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소원하면서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것이 가소롭다는 듯 헤죽거렸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이 젖은 종이 너머로 닿았을 때. 손가락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것의 손은 악마처럼 새까맸고 츄러스가 형편없이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머릿속으로는 물먹은 빵가루 때문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 자리에서는 지옥의 손이 뻗어 나와 흉기를 분지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달려 나갔다. 뒤를 돌아보면 그것은 어슬렁거리며 따라왔고, 어느 순간 사라졌다.

채찍 같은 빗물이 벗겨진 우비 대신에 뺨을 내리쳤다. 나는 입술이 퍼레진 채로 여자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녀를 데리고 여기서 도망가야 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했었나? 가로등이 며칠 전부터 고장 나 있었다고.

아무리 뛰어도 바로 그 깨진 전등 밑이었다. 설마 해서 주차된 차 번호를 보니까 내 차였다. 실시간으로 피가 식는 게 느껴졌다. 나는 차가운 머리로 즉시 운전석에 올라타 빗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가로등, 가로등, 가로등, 가로등 가로등 미친놈, 깜빡거리는 그…….

여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번개 치는 하늘처럼 거무죽죽한 괴물도 없었다. 그곳에는 나만 남아 있었다. 주변 가게는 연 곳이 없지 하필이면 으슥한 곳이라 인가가 안 보였다.

마지막 기억은 내가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차에서 뛰쳐나가는 거였다. 눈 떠보니 병실이었다. 빗길에서 배달 오토바이에 치여 입원했다고 했다. 그 골목길은 컨디션이 나쁜 날마다 꿈에 등장하는데, 아무리 깨어나도 그곳인 그런 악몽이다. 가위눌린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이 경험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너희는 밤길에 스토킹하러 다니지 마라. (지금은 그게 잘못됐다는 거 안다.)

 

추천 52

덧글 479

1 자업자득 괴담 vs 스토커를 없애려는 고도의 책략(글쓴이 여자)

후자에 한 표

└└ ㄴㄷ

2 츄러스에서 확 깸.

 

로어, 제가 이런 걸 봤는데요…….”

제나가 헤어드라이어를 든 채 제 머리칼만 뒤적거리던 로어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노쇼가 범람해 할 짓 없어서 놀다가 발견한 괴담 사이트였다. 이 게시글은 최근에 올라와 덧글 창에서 투표가 한창이었다. 제나는 대댓글을 다는 대신 마음속으로 후자를 채택했다. 이런 기담을 보면, 등골이 서늘해지기는커녕 로어가 떠올라 마음 한쪽이 좀 물러지기까지 하는 터다.

.” 로어는 해맑게 웃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톡 건드렸다. 그러자 에러가 뜨더니 홈페이지가 터져버렸다. 404 아이콘을 보던 제나는 으쓱하며, 헤어드라이어를 빼앗아 직접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글 게시자가 탈퇴해서 내용 싹 베낀 괴담이 한창 유행했다. 게다가 제나는 누군가 밤길을 따라오는 것 같다는 환자를 자주 상대해야 했는데 그들의 경로가 매번 비슷해서 흥미만 깊어졌다. 그러나 재미는 잠시고 야근은 야근이다. 로어가 마중 나와 오랫동안 기다리는 데에 마음이 쓰였다.

매번 밀리는 예약 때문에 병원 측에서 진료실을 늘렸다. 인력이 충원되어 제나가 일찍 퇴근하기 시작하자, 그런 환자는 줄어들었다.

다만 동료 의사가 점심시간에,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벌건 대낮에 도깨비 봤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요.” “요새 피해망상 환자가 느네요. 시국 때문인가.”

잡담은 신경 정신의학과엔 아직 일손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불평에서 의학 세미나에서 새로 발표한 이론으로 넘어갔다. 그날도 로어가 데리러 오기로 한 터였다.

 

2 · · · 노크하는 요정과 자전거를 탄 신문 배달부

 

폴라 스트리트에 도시 괴담이 생겼다. 매일 아침 6시에 누군가 문을 두들긴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정중하게.

초인종이 고장 난 집은 일반적인 노크였고, 도어락이 걸린 집은 번호를 누르는 삐 삐 소리였고 고풍스러운 문고리(빅토리아풍 저택의 그것)가 달린 집은 아무도 쓰지 않는 노크용 문고리를 탕탕 두들기는 식이었다. 맨 처음 겪은 사람은 20년 된 직장을 퇴직한 직후 거의 모든 신문에 구독 신청을 한 뒤 기다리던 노부인이었다.

그녀는 새벽같이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에그 베네딕트를 접시에 담은 뒤 거실로 빼둔 테이블에 앉아 한가로이 잠을 깨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직 기상예보가 나오기도 전이었으므로 부엌 조리대에 달린 라디오를 뒤적거려 택시 기사들이 들을 법한 음악 채널을 감상 중이었다. 아침부터 폴 아웃 보이 센츄리스가 흘러나왔다. 얼굴을 찡그리며 채널을 바꾸려고 일어날 때 즈음 그 소리가 났다.

탕 탕 탕

그녀는 고풍스러운 문고리집의 주인이었고, 이웃사촌은 얼마 전 이사 갔으며 슬하에 둔 자녀들은 일자리 문제로 뉴욕으로 이주한 지 오래였다. 죽은 남편이 살아 돌아올 리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실비아 씨는 올 게 왔구나, 뉴욕 타임스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앞에는 어떤 신문도 놓여 있지 않았다. 커피잔을 든 채 고개를 내밀어 길 양쪽을 훑어보았지만 이슬을 맞고 있는 잔디깎이밖에는 없었다. 실비아 씨는, 새로 이사 온 이웃집의 아이들이 장난을 친 거라고, 저 집 잔디깎이가 고장 났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라디오 채널을 바꾸러 갔다. 그때 본 시간이 오전 601분이었다.

이웃은 마찬가지로 노후를 보내러 미국 서부까지 찾아온 프랑스인 부부였다. 그들과 친해지고 난 실비아 씨는, 마카롱을 집어 먹다가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실비아 씨가 불면증 약을 먹고 잠들어 노크 소리에 신경을 못 쓴 아침, 그러니까 6시 즈음 프랑스인 부부는 운동을 나가는데, 운동복을 입고 문을 열려는 찰나 초인종이 울렸다.

혹시 세 번이었나요?”

확실히 세 번이었어요.”

이 소문은 프랑스인의 오른쪽 옆집(실비아 씨는 왼쪽에 살았다)으로, 그 오른쪽으로 계속 퍼져 거리 전체를 휩싸게 되었다. 그들은 거의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였으므로 어느 날 커피숍에서 대담을 펼쳤다. 실비아 씨는 구독하는 신문 다섯 개를 접어 앞에 두고 뉴욕 타임스부터 펼쳐보는 중이었다.

신문 배달부가 장난치는 게 분명해요.”

이것이 대담의 결론이었다. 그들 모두 뉴욕 타임스를 구독하는 늙은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행동력 좋은, 그들 중 유일한 미혼 남성 하나가 신문사에 직접 문의를 넣었다. 이곳 배달부가 누굽니까? 그건 왜 물으세요? 지금이 핼러윈인 줄 아는 것 같아서요.

그곳에서는 역시 행동력 좋게도은퇴한 중산층의 단순한 흥미를 구독 취소 위협으로 알아들은 게 분명했다직원을 파견했다. 걸려든 건 운 없고 가난한 소년 배달부였다. 철로 변에 사는 소년은 두 손을 휘저어가며, 자신은 성실하게 신문을 배달했을 뿐이며, 그마저 630분경에야 폴라 스트리트에 도착하고, 자전거 벨조차 울리지 않으며 조용하게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명했다. 직원이 이틀간 지켜본 결과 역시나였다. 소년은 여섯 시엔 이 거리에 출몰하지 않았다.

그러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루 일과가 심심함의 연속인 그들은, 이 문제는 골칫거리보다는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스몰토크거리로 받아들였다. 이제 머리를 싸매는 건 뉴욕 타임스 CA 지부 담당자였다. 그는 수소문해서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을 찾아냈다. 젊은 여성이 거주했고, 블록 하나를 경계로 폴라 스트리트가 아니었지만.

퇴근한 제나는, 오후 2시부터 기다렸다는 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구독 안 해요.”

집 안에는 로어가 있었으므로 애처로운 표정의 그를 차마 들일 수 없었다. 그 재미있는 이야기의 근원은 아마 아침 산책을 다니는 연인의 영향일 거라고 고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단 아래로 내려온 로어가 물었다. “누구야?”

잡상인이에요.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제나가 누구랑 만났는지 궁금해.”

환자나 동료 아니면 만날 사람 없다는 거 알잖아요. 오늘 뭐 하고 지냈어요?”

옆 동네 좋더라.”

로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제나는 간략한 추측이 공고해지는 걸 느끼며 캐모마일 차를 내렸다. 터덜터덜 돌아간 담당자의 등을 보며 애처로워하는 건 덜 바쁘고 덜 피곤한 사람들이 해주겠지 싶었다. 금요일 저녁에 가지는 티타임은 각별했고, 그 시간을 방해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로어에게는 맛이나 진정 효과의 차이가 없을 텐데도 함께 앉아 이마를 기대오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제나는 이제 무슨 타임즈였나 잡지사였나 담당 직원이 들렀다는 사실조차 가물가물 까먹어가고 있었다. 애초 그에게 초면인 타인이 중요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공포가 뭐 대수란 말인가. 사랑이 부족한 사람만이 희끄무레한 괴담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제나는 로어와 함께 있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저녁 식사 후 로어와 잡담을 나누던 제나는, 그가 폴라 스트리트 끄트머리에 있는 공원을 자주 들락거린단 사실을 눈치챘다. 그들은 이번 주말 분수가 화려한 그곳에 피크닉 가기로 했다. 일은 일단락되었다.

 

폴라 스트리트에는 노크하는 요정이 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곳 끄트머리 공원에서 동그랗게 피어난 버섯이 자주 발견된다는 연유였다.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는 의문 한켠에 도사리고 있던 공포를 얼마간 해소할 수 있었고, 실비아 씨는 겉돌던 프랑스인 부부와 함께 마을 친목회 암묵적 입장권을 얻게 되었다. 노크 소리에 히스테리 부리는 그 독신 남성을 놀리는 풍조까지 생겼다. 시작이 어땠건 실비아 씨에게는 행복한 마무리였다. 그는 제2의 삶 출발선이 꽤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신문을 받아 읽었다.

소풍도 성공적이었다. 공원은 아침과 낮에 각각 운동하고 해바라기 하는 은퇴족을 제외하면 사람이 거의 없었다. 로어는 햇볕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제나를 보며 행복해했다. 제나는 그런 로어에게, 포자가 터져서 옷에 묻으니 독버섯을 밟지 말라고 잔소리했다.

 

 

 

뉴욕 타임스 CA 고객 응대 담당자가 바뀐 건 그 모두와 아무런 상관없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