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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ㄹ님

나사르 본주 2022. 6. 29. 16:54

CoC 시나리오 <죄의 연대기> 기반 캐릭터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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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와 대숲은 헛갈리지 마라

 

 

바람이 우예 이리 불까, 겨울맹키로누님.”

 

쏠 기 아이잖심꺼. 우역이 환하게 웃었다. 그의 입가에 총구를 들이밀고 있던 곽나영은, 순간적으로 그가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곽 상무는 눈썹 한 번 찡그리지 않았으므로 주위에 서 있던 까투리들은 독하단 듯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중대사안이라고는 하나, 이사까지 되는 중역을 쫄보나 다름없는 부하들 앞에 쏴 죽이는 건 말도 안 됐다. 설마 하던 그들은 철컥, 하고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자 다급히 나영을 뜯어말렸다.

영이 누님, 자리가 자린디 고정하십쇼.”

이 손목을 끊어줘야 정신 차릴까.”

하나뿐인지라 더욱 날카로운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걸 보고서, 새삼 넉살을 부리던 부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영은 분위기가 더 험악해질 수도 없는 순간에 앳된 그 이마를 톡톡 두들겨주고 총구를 내렸다.

너희, 가라.”

명령에 반기 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저기 역적으로 내몰린 죽우역을 빼고는.

 

날이 습했다. 사람 하나 쪄 죽일 만한 습도에 웃통을 까지도 못하고 뻘뻘 거리는 것들이 쌔고 쌨다. 오죽하면 그 곽나영까지 단추를 풀고 재킷을 어깨에 걸쳤다. 못 참고 등목이라도 하려다가 흉하다며 한 대 맞아서 맨살에 무료로 문신 새긴 까투리 하나를 본받아 다들 애먼 단추만 만지작대고 있었다. 에이 안 되겠다 해산, 하고 장끼 하나가 제 성질 못 이겨 손사래 치자 그것들은 은행이니 마트 같은 에어컨 지대를 찾아 비실비실 떠났다. 새로 뽑은 차 운전석에 들어가려던 장끼가 문을 닫다 말고 물었다.

누님 안 가심니껴?”

, 애들 두 시에 끝난다.”

허메어무니 다돼 버리셨소.”

보통이면 비웃음이라 생각할 것을, 나영은 못 배운 놈들 진심이리라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제 아이조차 아닌데 같이 일하던 놈 새끼라며 싸고돌고, 유치원이며 뭐며 배우게 해주는 게 곽나영이었으므로 존경하면 했지 어머니라고 놀리진 않는 것이 이 적성화파 문법이었다. 그러던 애들 손가락 하나씩 날렸거나 하염없는 너거덜보다 일찍 죽어 뿌렸다고 낸 소문이 한몫하기도 했다. 마냥 흰소리는 아니었지만.

피식 웃은 곽나영이 담배를 한 대 더 물고 조금 나기 시작한 그늘에 가 섰다. 지붕 노릇한 슬레이트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가운데 라이터를 꺼내기도 껄끄러웠다. 흡연이 마땅찮을 무더위라니, 요 몇 년 새 이런 여름은 없었다.

어무니 다 된마당에 새파란 쌍둥이를 놓고 먼저 가 버릴 수도 없었다. 원생들 앞에서 대놓고 건달인 모습을 보이기도 뭣해 좀 멀리서 기다린다는 게 이 사달이었다. 나영이 여전히 고민하고 있자 불쑥 불이 가까워졌다.

나영은 익숙하게 불을 댕기고 연기를 뱉었다. 그러고 나서야 돌아보았다. 바라던 사람이 서 있었다.

저 혼자 델 간다니까는.”

너한테만 맡겨두면 미안하잖냐.”

죽우역이다. 짐짓 새초롬한 눈을 뜨던 그가 오래 그러지 못하고 생글 웃었다. 곽나영 앞에선 매번 이런 얼굴이라, 나영은 그가 울거나 화내는 표정을 모를 지경이었다. 솔직히 좀 보고 싶다고 하면 해줄까더위에 몽롱한 생각을 하는데 우역이 말을 걸어왔다.

하드 사줄랬더니 이래 더워선 다 녹겠지요?”

고 앞에 편의점 있지 않나.”

우역은 이 핑계로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줄 모양이었다. 평소엔 버릇 나빠진다고 안 된다 해놓고, 나영에게 와서는 요새 애들이 뭘 좋아할까정 물어보는 게 이 남자였다. 나영이 피식 웃으며 우역의 머리통을 마구 쓰다듬었다. 애써 묶은 머리칼이 다 흩어졌다. 곽나영이 말했다.

운전은 하나만 해도 되니까, 먼저 들어가라. 아이스크림 들고.”

그러고 나서 입에 담배를 문 채 지폐 몇 장을 꺼내 셌다. 두 몫은 할 만한 금액에 담배 한 갑 하라고 얹어 주니 우역은 더워서 발개진 얼굴로 미안해했다. “누님 여 두고 가기가 쫌 그러네.” 나영은 담배를 마저 피우면 어깨만 으쓱했다. 평소에 고생시키니 이런 날만큼은 시원한 데 모셔두고 싶은 게 누님 된 마음이었다.

나영이 별 대답 없자 우역은 머쓱한 듯 한 발 물렀다. 그가 얼마 전 들어온 까투리 하나를 불러 뒷좌석에 타는 걸 나영만 남아 묵묵히 보고 있었다.

바람 좀 불면 좋을걸. 그가 넥타이를 느슨히 하며 생각했다. 요사이 자그만 사채며 카지노에서 난 사고를 처리하느라 다들 모르는 체했지만, 헤로인 건이 나영 귀에 들어온 게 벌써 이레 전이다. 그는 슬슬 행동을 좀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끼 몇이 조심스레 귀띔해온 것도 있고. 요새 날도 영 수선하니, 간만에 피바람이 좀 불어오리라.

너덧 대째인 담배를 문 채 주차장으로 가던 그는 제 차 앞에 선 부하를 보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지금 여기 있을 게 아닌 녀석이었다. 판돈 따고 튄 새끼 잡으라 보내놨는데, 벌써 잡아 왔을 수완은 아니고, 사고라도 쳤나. 그쪽이 먼저 빨빨대며 다가왔다.

누님…… 지원 형이 보냈는데요.”

본론부터 말해.”

, . 우선 태워드리겠습니다.”

유치원 앞에 편의점 가자.”

녀석의 운전실력 하나만은 믿을 만했다. 차에 탄 나영은 후텁지근한 공기에서 벗어나 한 움큼 숨을 내쉬었다. 흐르지도 않는 땀이 들척지근하게 달라붙어 등 언저리가 갑갑했다.

머뭇거리던 녀석은 좀 후에야 말을 이었다.

우역 형님께서 이번 그헤로인 건에 손대셨다 합니다.”

?”

그게……. 그렇다더라, 하고 따까리들이 떠들고 다닙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물으며 나영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운전석 헤드에 무게가 실리자 체급 낮은 녀석이 찔끔하는 게 느껴졌다. 헛소리면 너부터 족친다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말하기로는, 좀 전에 우역 시다바리 하러 간 까투리의 목격담이 시작이라고 했다. 화물 컨테이너에 숨겨서 들여온 불법 이민자 몇을 우역이 관리했는데, 그들이 돈값 한답시고 약을 가져왔다고 했다. 까투리가 직접 물량 얼마나 되느냐고 꼬치꼬치 캐묻고 그들을 중개인 삼아 팔자 편 모양이었다. 어쩐지 요새 꼴이 삐까뻔쩍하더라니. 까투리 사이서 소문 나는 건 금세고 하필이면 장끼 직속에 있는 이놈 귀에 들어온 것부터 문제가 됐다.

어제 지원이 아닌 척 종용하던 이유가 밝혀졌다. 나영이 손을 뻗어 운전석 재떨이에 담배를 지졌다. “그래서?” 밑에서 어쩌고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상무인 곽나영에게 보고 먼저 들어와야 마땅하지만, 시일이 흘렀고, 중역이 관여한 이런 사태는 쉬쉬하며 밑에서 먼저 처리해버리는 게 관행이기도 했다.

형님은 일단 누님께 말씀드리라구…….”

지원은 장끼 중에서 충성심이 특출난 애였다. 곽나영은 일단 잘했다고 해둔 뒤 차에서 내렸다. 두 쌍둥이 물려줄 하드부터 사야 했다.

 

죽우역은 기분 잡친 지 오래다. 첫 번째로 누님한테 차였고, 그다음으로 얼마 전부터 따까리들이 귀찮게 굴기 시작한 거다. 그로서는 모를 이유였지만.

수군거림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한 이상 보아 넘길 순 없는 노릇이다. 우역은 시야에서 곽나영이 사라지자마자 말했다. “차 세워라.” 까투리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차가 명령과 좀 시간을 두고 멈추었다. 적성화파가 독식한 항구 근교였다.

우선, 우역은 내리며 담뱃불을 붙였다. 연기를 몇 모금 들이마시며 기분을 좀 틔운 그는 운전사에게 이리 와보라고 손짓했다. 주먹을 휘두르자 그것이 그대로 맞았다.

예상치 못한 손찌검을 당했으니 퍽이나 당황했을 터다. 이쪽 생태 모르는 부하 녀석에게, 너슬너슬한 성격을 보여온 것부터 잘못인가 싶었다. 그러나 우역은 한 번 꿰뚫어 본 일에 관해서는 입장을 명료히 하는 편이었다. 좋게 말해 가족회사지, 조폭 집단에 뺨 한 대 갈기는 게 대순가. 우역이 씩 웃으며 담배를 버렸다.

이 행님이 아주 만만하기나.”

정강이를 더 차인 까투리가 다친 곳을 붙들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우역이 이어 말했다.

아님 니가 띠리한거니께네, 원망 마라.”

뭐 그래, 한낱 삐끼며 제비조차 감내하는 게 죽도록 처맞는 건데. 그게 대수겠느냐……. 중얼거리자 앞엣놈 이마에 힘줄 서는 게 보였다. 우역이 어쭈, 하며 머리통을 딱딱 두들겼다. 무지하게 아플 터다.

일을 망치는 거야 별 소용 않는다. 뭣 모르는 놈들이 허구한 날 하는 게 그 짓이니. 하지만 죽우역이 참지 못한 건, 그걸 남에게 덮어씌웠다는 거다. 것도 누님께 겨우 귀염받는 시점에. 한 가정을 폭망시키느라 작정한 새끼들이 벌 안 받으면 누가 받나? 우역은 평소와 다름없이 빛이 드는 눈동자로, 질질 기며 빌 때까지 팼다. 죽여 놓지 않은 건 본보기로 남겨둘 의도일 뿐 자비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이다. 아이 참, 누님한테 이만치 못난 꼴은 보이기 싫었단 게 우역의 말이었다. 사람이 다 빠져나가도 지긋지긋하게 더운 컨테이너 안에서, 곽나영은 이마를 싸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역아, 내가 싫어하는 게 뭘까.” “누님 없는 데서 뒤지는 거.” 잘 아네. 나영이 총을 내리며 우역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죽이는 건 괜찮고?”

하지만…….”

총알 대신 딱밤이 나갔다. 이마를 한 대 맞은 우역이 눈물을 찔끔 흘렸다. 진짜 아팠다. 나영이 말했다.

괜스레 적 만들지 마라.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할 것이지.”

그치만.”

너 걱정하는 게 내 일이야.”

내뱉고 보니 낯부끄러울 말이다. 나영은 잠깐 열없이 입가를 매만졌다. 애먼 일로 얻어터질 뻔한 우역은 아무것도 모르고, 또는 애써 면역 세운 얼굴로 눈만 초롱초롱 뜨고 있었다. 하여간 예뻐서. 나영은 이이가 욕이나 살까 두려운데 저 없는 데서 사람 패고 다녔다니 놀랄 노 자다.

곽나영은 다름없는 손길로 우역에게 총을 쥐여 주었다. 어차피 우역을 어떻게 혼내든 간 말 안 들을 걸 뻔히 알아서였다. 죽우역이 맹하게 귀여운 표정으로 총을 쥐자 나영이 그 총구를 제 턱밑에 대었다. 꾹 누르기도 전에 우역의 낯빛이 허예졌다.

, 누님.”

우역아. 쏠래?”

지가 어찌 그럴라꼬…… 이거 치읍시더.”

우역은 거의 사정사정을 했다. 혹 장전된 총에서 한 발이라도 나갈까 봐 발발 떠는 게 다 보였다. 나영은 피식 웃고서 총구를 더 깊숙이 눌렀다. 숨이 막힐 때까지.

그러자 우역이 눈을 댕그랗게 뜨더니, 나영의 손목을 아프도록 쳐서 총을 떨구었다. 애초 져주려고 힘도 안 주고 있었지만 우역의 손등이 발개진 걸 보니 가슴이 아팠다. 나영이 빤히 바라보는 가운데 우역이 안 그래도 처연한 눈매를 끌어내렸다.

잘못했심더.”

그렇지?”

, 지한티 혼내킬 일 안 만들꺼구마.”

나도 맘 아플 줄 안단 걸 넌 알잖냐. 다시는 그러지 마라.”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

죽우역은 이때다 싶어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본인은 아무 잘못 없다는 게 주였고, 약간은 미화가 되어 있었지만 아무튼 거의가 사실이었다. 나영은 그의 투정을 파악했으면서도 너그럽게 받아 주었다. 방금 전에 저지른 일이 심했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둘은 달라진 얼굴로, 그 자리에서 사후 처리를 가볍게 의논하고서야 일어섰다. 나영이 그만 이 찜통에서 나가려는데 우역이 옷깃을 붙잡아왔다.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

그기, 누님 이케 나가시믄헛말 사시는디.”

험상궂은 연출 다 해놓고 한 대도 안 맞으면 나영의 처지가 이상해진다는 거였다. 곽나영이 눈썹을 찌그러뜨리며 죽우역의 뺨을 꽉 꼬집었다. “아야!” 장난스럽다고 해도 굵은 손마디는 칼침처럼 아팠다. 딱밤에 꼬집히기까지 한 우역은 남들 눈총이 걱정 없게 되었다. 잠시 눈앞이 파래져서 다른 걸 염려할 여유가 사라진 거다.

아우, 아퍼라.”

그럼 여기서 뽀뽀해줄까?”

…….”

대답이 없기에 나영은 그저 피식 웃었다. 제 짓을 아는지라 우역도 아양 떨진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따라나섰다. 누가 보든 잔뜩 혼이 난 강아지 꼴이었다.

죽우역이 쁘락치라는 말을 퍼뜨리던 장끼는 자기 일에서 제외되었다. 말이 좋아 제외한 거지, 어디 가서 묻혔으리라는 추측만 파다했다. 그도 그럴 게 단둘이 심문당한 우역은 멀쩡한데 꼰지른 놈들만 하나둘씩 엿되기 시작한 거다. 영이 누님과 죽이사 간 관계는 오히려 더 돈독해져 애기들한테 비싼 아이스크림 사 먹이러 예쁜 가게에 출몰했다는 목격담이 생겼다.

아무리 몸이 근질근질한 조폭이래도, 옆엣놈 누구누구 명줄 끊겼단 소식보다는 상사들이 멜론 맛 하드 사러 나갔다더라는 이야기가 더 듣기에 좋았다. 놈팡이 몇을 묻어버린 소득으로 적성화파는 한동안 평화로웠다. 한몫 잡아보려던 보잘것없는 잔챙이들이 군기 빠짝 세운 걸 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