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는 진한 단내를 풍기는 유리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철 보기좋기 무르익어있던 산머루로 만든 검보랏빛 사탕이었다. 채 굳지도 않았는지 겉면의 설탕이 겹겹이 녹고 있었다. 안쪽까지 녹으면 끈적한 잼이 터져나와 형편없어질 물건이었다. 그는 단 음식에 전혀 조예가 없었지만, 군것질에 굶주린 부관들이라면 신나게 파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출처가 불분명한지라 하관 몰래 먼저 맛을 보니 독이나 약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탕은 하루가 다 지나도록 그의 사무책상 한쪽을 얌전히 차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다. 란 마체라트가 부상당했다.
비렁뱅이가 던진 돌이 뼈에 잘못 맞았다고 한다. 눈썹뼈가 부러져온 디터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는데, 돌팔매질을 한 사람이 꼬마애여서 똑같이 눈을 맞는 것에 그쳤다고 했다. 로베르트는 그 애가 실명했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처벌의 경중은 고작 연민으로 판가름낼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이것이다. 기사님 드시라 사탕을 전하던 선량한 사람이 (아마 애꾸가 됐을)꼬마의 누나였다. 남매의 정치색이 다른 탓은 아닐 테지. 그 애들은 그냥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쟁통에 군것질거리는 몇 끼 식사보다도 귀하다. 로베르트는 내용물이 그득한 유리병이 시선 끝에 걸릴 때마다 사건의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관계를 떠올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뒤통수를 만지는 상념의 손길을 밀어냈다.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란 마체라트. “들어와.” 미처 말을 맺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여상하게 들어오던 디터가 멈칫하더니, 씩 웃으며 유리병에 맺힌 리본을 가리켰다. 로베르트는 거기에 리본이 달렸다는 걸 그때 알았다. 디터가 고의로 탄성을 뱉었다. 건들거리는 태도였다.
“오.”
“뭔가.”
“여전한 인기?”
“말을 제대로 맺어라.”
디터는 반들거리는 미소를 짓고는 멋대로 병을 열었다. 신냄새가 훅 끼쳤다. 로베르트는 설탕과 피얼룩 묻은 손가락을 빠는 양을 지켜보았다.
“맛이 좋은데요. 좀 드시지, 이러니 소녀들이 울지 않습니까.”
“그다지…… 관심이 없어.”
입술에 잼을 묻혀가며 아작거리던 디터는 본래 용건을 주절대더니 책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꼬라지로 쫑알거리는 말은 오늘이 연인의 어쩌구 날이니 이건 그대의 애착어린 선물로 알겠다는 지껄임이었다. 로베르트는 골치 아픈 척 사탕을 받아먹으며, 비린내 나는 모종의 상념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나중에 알아본 결과 연인의 어쩌구 날은 스무 날이나 뒤에 있었고, 그걸 또 물으러 다녔다는 사실로 다시 한번 놀림당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