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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날개 너머로 비치는 것
“이렇게 되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어요.”
그가 말했다. 커피잔을 손가락에 아무렇게나 건 채였다.
“나, always imagined about… happiness.”
화빈은 그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온실 안은 좁았고, 가로보다 세로 너비로 길었고 늦봄인지라 훈훈했다. 마치 발굴된 잠수함이나 간헐천 때문에 지상으로 올라온 관처럼. 단지 유리로 되어 있다는 사실만이 그것과 달랐고 화빈은 생각해본 적 없는 이 문제가 퍽 즐거이 느껴져 웃었다.
매켄지가 움찔하며 미소를 지웠다. 입김에 날리는 실낱보다 가늘게 바뀐 표정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화빈은 아, 하며 다시 남자를 보았다. 화빈이 말했다.
“못 알아들었어요.”
“이건 쉬운 영어였는데. 이지 랭귀지.”
“저는 학생이 아닌걸요.”
하며 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딸그랑 하는 맑은소리가 습도 높은 귀꼍을 때렸다. 그제야 화빈은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매켄지가 했다는 ‘상상’이며 ‘해피니스’는 어떤 걸까. 지금 같은 모습의 평범한 어른이 된 것? 화빈에게는 이것이 전혀 당연한 일은 아니었으므로. 아니면… 화빈을 사랑하고 사랑받게 된 것.
후자라면 좋을 텐데, 그는 가벼이 여겼다. 그리고 확신했다. 아아. 내가 바라고 있으니, 매켄지는 분명 화빈을 염두에 두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 우울한 생각은 아녔다. 어쨌든 그들은 연인이 되었으니까. 이 도시 농원은 매켄지가 가끔 찾는 곳이라고 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쉘터 같은,’ 이라고 말한 걸 보면 진심이었다. 매켄지는 말을 허투루 쓰는 사람은 못 됐다. 본래 악당이야말로 자기 말의 무게를 아는 법이다.
각설탕 가루가 입가에 묻어 있었다. 입술을 핥은 화빈이 무심하게 물었다.
“지금 행복하세요?”
“효율적으로 살고 있죠. 이제는 아는 게 많아요.”
Specially about me, 라고 매켄지는 말했고 화빈은 그대로 믿었다. 매켄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를 잘 아는 건 당사자뿐일 거라는 기이한 확신이 화빈에게도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매켄지가 웃었다. 기뻐 보였다.
당신은 특별하다. 그래서 빠르게 나의 불행을 알아챘다.
어젯밤 화빈은 결혼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오늘 아침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오전 수업 시간이라 뜰에는 아무도 없었다. 보통은 같은 시간 강사인 미술과 원어민이 함께 있는 걸로 트집 잡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지만, 체육이라면 가십거리 삼아 농담이라도 얹겠지 싶었다. (체육 선생은 교무실에 있었고 화빈은 그를 굳이 피하지는 않았다. 체육은 이런 화빈을 거슬려했다.)
새로 받아 온 토마토 모종을 심던 매켄지가 말을 걸었다. “오늘 나랑 나갈래요? 고 아웃 윗 미.” 화빈은 어딘지 내면에 골몰한 눈으로, 매켄지를 지그시 마주 보았다. 그의 입에서 말과 연기가 함께 흘러나왔다. “좋아요.”
대꾸하자마자 쉬는 시간 종이 쳤고 매켄지가 느릿느릿 일어섰다. 그는 키가 컸다. 화빈보다는 확실히 그랬는데, 볼 때마다 운동장 멀찍이서 달리고 있거나, 쭈그려 앉아 흙을 만지고 있어서 잊을 때가 많았다. 화빈은 문득 얼굴을 붉혔다. 상대가 남자라는 게 느껴졌다. 학교 안에서는 이러면 안 됐다. 얼른 지나가려는데 매켄지가, 아무렇지 않게 팔목을 붙들었다.
“잊으면 안 돼요.”
화빈은 얼결에 꼭 그러겠다고 대답해버렸다. 그때 거무스름한 제비나비가 매켄지의 어깨에 앉았다.
그것이 근심과 초상을 의미한다는 걸 화빈은 알고 있었다. 나비가 비료 냄샐 좋아한다는 것도. 불운과 본능 중 어느 쪽이 이 불길한 벌레를 끌어들였는지, 화빈은 분간할 수 없었다.
전전반측의 밤이 다시금 떠오른 건, 긴 옷의 팔목 부근에 흙 얼룩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켄지가 성의 없이 붙드느라 남기고 간 게 분명했다. 화빈은 자기 책상에 흙 알갱이가 널브러진 걸 보고서도 별말 않고 티슈를 뽑았다. 교무실 청소하는 2학년 2반 7번 남자애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
어제저녁엔 초과근무를 마치고 나서 전화해도 매켄지는 받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씻은 뒤 다시 걸어 보았으나 여전한 묵묵부답이었다. 화빈은 덜 마른 머리칼을 하고 이부자리에 누웠다. 화빈의 집은, 공인중개사의 말로는 ‘구조가 잘 빠졌’고 ‘채광 좋은’ 곳이었으나 아늑하지는 못했다. 맞은편에 난 편의점 간판이 지나치게 가까워서, 밤에도 도시의 불빛이 집안을 밝혔다.
화빈은 창문 방충망에 달라붙은 나방의 진분이 날리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미래를 고대하게 되는 걸 보아하니 우린 그 방주를 맞이할 수 없을 거라고. 그리고 세탁한 지 오래되어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베개에 비볐다. 달빛이 너무 거셌다. 침대 안은 차가웠다. 이 안에 나와 다른, 사람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바랐다.
헛웃음이 나오는 투정이어서 그는 눈을 떴다. 휴대전화를 켜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인형을 충동구매하고 잠들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아침에 흰옷을 입고 출근했지.’ 꿈은 반대라고 하니까, 솔직히 그게 나쁜 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이럴 때 쓰는 말도 아닌 것 같지만. 옷소매에 묻은 갈색 흙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화빈은 이 불운을 위해 하얀 자켓을 골랐나보다 여기고 말았다. 교묘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일은 화빈에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만나기로 한 곳에 가니 매켄지가 나와 있었다. 화빈의 퇴근이 그보다 늦어져서 옷을 갈아입진 못했다. 매켄지는 화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뭔지는 몰라도 화빈은 알았다, 괜찮다고 말했었다.
농원에 붙은 테이크아웃 카페에서는 더럽게 맛이 없는 커피를 팔았다. 매켄지가 디스’이스 테러블, 이라고 말할 만큼.
화빈은 마찬가지로 쓰디쓰기만 한 홍차를 마셨다. 요즈음 밤잠이 서툰 게 자꾸 들이켜는 커피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매켄지는 홍차 맛은 어떤지가 궁금하다며 흘긋거렸지만 화빈은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무뚝뚝한 시선을 돌려주었다. 매켄지도 웃고 말았다. ‘맛없어요.’ 알아들은 게 분명했다. 매켄지와 달리 화빈은 카페 직원이 대화를 훔쳐 듣는 걸 염려하고 있었다.
매켄지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싶어 보는데 턱을 괴며 이렇게 물었다.
“화빈은, 얼 유 해피?”
“글쎄요.”
“에이. 재미없는 대답.”
하고서 좀 익숙해졌는지 아이스 커피를 쭉 마시는 거였다. 화빈의 눈동자, 건드리면 동심원이 퍼질 듯, 묘한 떨림으로만 생기를 표현하는 눈빛을 매켄지는 퍽 신경 썼다. 하지만 그의 선의란 가끔 가차 없는 것이었다.
매켄지가 말했다.
“사실, 여기 커피 이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는데.”
“그래요?”
“어. 한 저번 주까진? 벗… 화빈이랑 오니까 이러네.”
아, 그래서 어떻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그가 덧붙였다. 화빈은 이러한 지점이 매켄지의 상냥함이나 친절이라는 걸 알았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보단, 그가 애초에 말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매켄지의 깔끔 떠는 부분이었다.
‘당신은 작별을… 언젠가로 미루는 거지. 무엇이든 별러두는 거야.’ 화빈이 생각했다. 매켄지와 함께 있으면 뜬금없는 공상들이 화빈을 즐겁게 만들었다. 비록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분위기를 꽝꽝 얼릴 것 같은, 조소 어린 이야기가 되겠지만. 화빈은 이렇게 자신만의 즐거움을 은닉하느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곤 했다.
“무슨 생각 해요?”
매켄지가 눈앞에서 손가락을 탁 튕겼다. 화빈이 깨어나듯이 동그마한 어깨를 들썩였다. 우스웠을까? 매켄지는 아까부터 연신 싱글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는진 화빈도 몰랐다.
화빈이 말했다.
“나랑 온 거 후회해요?”
이런 말은 꺼내면 안 되는데. 그러나 매켄지는 쉽게 대답했다. 빨대 끝을 잘근잘근 물다가 놓아주면서.
“그렇게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요. 돈 워리, 걱정 마.”
“그런데 왜 전화 안 받았어요?”
화빈이 물었다. 매켄지가 멈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제야 화빈은 자기 심사를 알아챘다. 어젯밤의 일로 아직도 토라져 있다니. 답지 않은 일이다. 화빈의 귀 끝이 살포시 붉어졌다. 매켄지는 눈치 좋게 그걸 목격하곤,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피실 웃었다. 그가 대꾸했다.
“저스트 비지 맨. 가끔 연락 안 될 거라고 전에 얘기했는데.”
“……그래요.”
“보고 싶어서?”
눈을 반짝이는 게 기회를 놓치지 않을 얼굴이었다. 그가 손을 뻗기에, 화빈은 등받이에 폭 기대버렸다. 매켄지는 아쉬운 듯 팔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시선에 장난이 묻어 있었다. 화빈이 소심하게 볼멘소리를 냈다.
“네.”
아니오, 라고 해 보았자 나아지는 일은 없기에, 그는 종종 솔직해졌다. 사실은 자주 그랬다. 그를 유리시키는 듯한 주변의 공막은 그 자신이 오만하기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탈하다면 모를까. 다행히, ‘젤리’라는 게 눈에 보이는 매켄지는,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매켄지의 눈에는 진짜로 화빈을 감싼 거대 젤리가 보이는지도 몰랐고.
어느 쪽이건, 그는 화빈에게 흥미를 가졌다. ‘다행인 일이지’ 화빈이 식어버린 홍차를 머금으며 생각했다. 탄닌이 너무 우러난 차는 입안을 쓰게 만들었다.
매켄지가 몸을 앞으로 숙여, 화빈이 물러난 만큼 다가왔다.
“요상한 사람.” 매켄지의 말이다.
화빈은 이유도 모르고 속이 상했다. 말하자면 그는… 매켄지가 자신과 같은 부류라고, 또는, 자신을 ‘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저 연인의 생뚱맞은 말이 가슴에 꽂힌 흔해빠진 감정일 수도 있다. 그는 갑자기 헷갈려서 물었다.
“우리 사귀는 거 맞죠?”
매켄지는 갑자기 일어났다. 같이 걷자고 했다.
온실 안은,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뜨거운 것은 다 식지 못할 만큼 더웠다. 그래서 둘은 오늘따라 날이 흐리다는 걸 잊고 있었다. 흙이 촉촉하다며 매켄지는 좋아했지만(아마 젤리들이 동요하는 저기압이라는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평범한 것만 보이는 화빈에게 썩 ‘좋은’ 날은 아니었다. 그래도 화빈은, 날씨에 감정을 대입하는 감성적인 짓을 관둔 뒤라 괜찮았다. 데이트에 어울리지 않는단 게 문제지.
농원은 햇빛을 맞고 있다면 아름다울 법한 풍경이었다. 여름에 다시 올까… 화빈은 생각하다가, 자연스레 매켄지를 배제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조금 놀랐다. ‘이렇게까지 비관적이었나.’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연인이라는 건 화빈의 삶에 없었고 있더라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빈에게서 무엇이건 갈취하기 위한 머무름이었을 거고.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고, 매켄지와 함께 호젓한 오후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이 퍽 황홀한 일 같았다.
“나 당신 좋아해.”
매켄지가 말했다. 화빈은 엉뚱한 이야기라는 듯이 고개를 들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팔뚝이 맞닿고 있었고, 매켄지는 반소매였다. 체온이 열기처럼 전해져왔다. 화빈이 입술을 벌리고 멍하니 있자 매켄지가 몸을 숙여 쪽, 소리 나게 입 맞추었다. 입술에.
화빈은, 이번만큼은 정말 화들짝 놀랐다. 바보 같은 소리가 나왔다. 매켄지는 신경도 안 쓰고 입술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의심하지 마.” 그러고서 떨어졌다. 화빈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안 그래요.”
대꾸했다. 매켄지에게는 지고 싶지 않은 기이한 자존심이 섰고 화빈은 이게 사랑이라는 걸 잘 몰랐다.
제대로 돌려받은 적 없으니까, 사랑을. 그래서 생긴 버릇이라는 걸. 하지만 매켄지는 알고 있었다. 이 여자가 왜 자기 앞에서 날을 세운 듯 냉랭하게 굴려고 노력하는지, 있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커피 맛이 나쁜 이유가 당신 때문이라는 둥 어처구니없는 떠넘기기에 당하고 마는지. 또 왜, 모든 고백을 교묘한 속임수라고 여기는지….
그가 말했다.
“늘 상상했어, 행복해질 날을. Like this moment, not alone. When I possible love someone. 그게 너.”
매켄지는 계속 고백했다.
“나 너 좋아…”
“알아요, 알았어요. 그만 해요.”
“Stop? Really?”
“리얼리. 스탑. 다 알아요. 진짜.”
“잘 알아듣게 다시 말해줄…”
“나도 당신 사랑해요.”
남자는 그제야 닥쳤다. 그리고 화빈의 머리카락을 허락 없이 섞어 놓았다. 그 김에 쌓이려는 우울 젤리를 틱틱 튕겨냈다. 매켄지의 눈에는 오늘 아침부터, 계속 보이던 것들이었다. 따로 캡처할 수 없는 상황이라 놔두었는데 계속 지랄하며 화빈의 기분을 망쳐 놓는 것도 보았고.
그것들을 물리치자 팔이 뻐근해졌다. 매켄지가 손을 쥐었다 펴고, 저리다는 듯이 세게 털었다. 화빈 눈에 매켄지는 항상 뜬금없는 짓을 하는 인간이었으므로 그냥 손을 잡아주었다. 그게 타격이 컸다.
매켄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내가 뭐만 하면 웃어요?”
“진짜 알고 싶어서 묻는 거?”
“네.”
“글쎄요. 사랑해서?”
유어 페이스 라익 스트로베리, 그가 덧붙였다. 화빈은 꿋꿋하게 서운한 얼굴을 하려고 공들였지만 잘 안됐다. 마음이란 건… 어쩌면 젤리와도 같아서, 하고자 하는 의지대로, 해야만 하는 행동으로 잘 따라주지 않았다. 마치 실패한 실험 같았고 화빈은 역시,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비슷한 세계에 살아.’
흐리든 어쨌든 늦봄이었다.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기만 해도 가슴이 수런거리는 때다.
거기에 찬물을 끼얹듯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켄지는 이마에 물방울을 맞고서도 착각인가보다 했지만, 화빈은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그를 느티나무 그늘로 끌고 갔다. 물론 느티나무인 줄 아는 건 매켄지뿐이었고, 화빈은 이후 닥칠 잠깐의 폭우를 피하고 싶은 따름이었다.
곧장 장대비가 내렸다. 매켄지가 휘파람이 불었다. 화빈은 총체적으로 꼬인 사태를 더 즐기지 못했다. 그가 내쉰 한숨에 깊은 물처럼 시퍼런 젤리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매켄지가 보기에 화빈은 순환체 같았다. 젤리가 붙고, 침잠하고, 젤리가 붙고, 어떻게든 버티고, 가끔 떨어지고, 더 가끔 패배하고, 젤리가 다시 붙고. 그래서 이용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었지. 그는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를 회상했다.
말하자면 사랑할 줄은.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지, 찌뿌듯해 보이는 회푸른색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나뭇잎이 머리 위를 덮어 음영 같은 메아리 끄는 목소리로, 화빈이 말했다.
“오늘 고마워요. 우울했는데….”
“뭐, 날씨는 잘못 골랐지만. 기상예보를 안 봐서.”
“…당신이랑 결혼하는 꿈을 꿨거든요.”
“What?”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요. 검은 옷을 입고 결혼했어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꿈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지 이 외국인 선생은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화빈은 차가운 손으로 매켄지의 손목을 살짝 쥐었다. 먼저 스킨십하는 건 거의 없는 일이었다.
“난 기왕이면 하얀 드레스가 좋아요.”
호불호를 말하는 것도.
매켄지가 씩 웃었다. 그가 과장되게 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영화처럼 비 맞고 싶은데.” 그러고서는 안경알 너머로 흘긋흘긋 눈을 굴리는 것이었다. 화빈이 설핏 웃었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분명 감기 걸릴 거야.”
왼발을 젖을 흙길에 올리면서 그랬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선 나비 두 마리가, 나뭇잎에 매달려 물의 반동을 견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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