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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충의 우화(23.05.18)

나사르 본주 2024. 8. 19. 09:44

갑충의 우화

 

 

 

 

 

 

 

그녀 앞에 서면 미안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당신의 무너진 쪽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예의상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것처럼젠의 눈에 티누아 니티스 나인은 푹 썩고 젖은 각각 넝마를 이어 붙여 만든 영혼 누더기처럼 보였다. 이 같은 자들은 대개 불신자가 되지만, 티누아는 드물게도 성소에 들르는 사람이었다.

젠은 그녀를 나인이라고 불렀다. 허례 같은 티누아니티스같은 이름보다도 훨씬, 사람 자체를 나타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신의 명령도 있었다. 나인을 처음 만난 밤 젠은 심각한 열병에 시달렸는데 신의 차가운 손이 그의 이마를 식혔다. 목을 졸라 보랏빛 낙인을 남기면서, 신이 말했다.

아홉 계율을 지켜라.’

물론 젠은 구계를 어겨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 말이 티누아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본래 신탁이란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으로 현세에 내리는 법이다. 젠이 꿈을 꾼 다음 날 성소의 경계에 틈새가 생겼다는 사이비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머리가 달리지 않은 십자가를 섬기고 다녔다…….

왜 머리가 없죠?”

나인이 물었다. 그녀는 차갑고 둥근 석조 원탁 위에 앉아 있었다. 이 시간이 되면, 교회 뒤꼍에 있는 무덤에 빛이 든다. 정오부터 삼십 분쯤 짧은 해바라기 때를 나인은 놓치지 않았다.

젠은 비뚠 비석 위에 걸터앉아 있었고, 손에는 붉은 로사리오를 감았다. 사과 과육을 깎아 만든 듯 노란 마블링이 섞여 아름다웠다. 성수를 뿌려 구마하고 축복한 보석은 이 지방에서만 나는 돌을 조각해 만든 것으로, 귀족이 보라색을 가지듯 고위 사제급이나 지닐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의 부를 교회에서 책임지고 있을 정도니까.

다리를 숨겨서, 온전히 사람처럼만 보이는 나인의 손이, 따스한 원탁을 더듬었다. 젠이 멍하니 눈을 마주 봐올 뿐 대답하지 않자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꽃잎으로 물들인 손톱은 피멍처럼 역하게 보랏빛이 남아돌고 있었다.

젠은 그 손끝에 입 맞추며 일어섰다. 그가 대답했다.

신에게는 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학설입니다.”

학설까지 있어요?”

학파까지 있지요. 때로는 몸이 조각나 이 세계 전체에 흩어져 있다고도 합니다.”

그거야 지금 신도 마찬가지잖아.”

나인이 손을 거두었다. 차갑고 부슬부슬한 살갗이 마음에 안 든 걸까 싶어 입술을 핥는데, 곧 턱을 들어 올려 다시 마주 보게 했다. 나인의 눈동자는 과육이 침전한 포도주처럼 달콤하고 요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젠은 눈을 깜빡이며, 무감하게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괴물입니다. 누구도 축복해주지 않는 집단을 신도라고 할 수는 없지요.”

잘못된 건가? 스스로 구할 수도 없는 걸 몸에 두르지 않았대서……

잘못입니다. 타고나지 못한.”

꽤 강경한 목소리에 나인은 놀란 듯했다. 아니, 흥미로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나인의 표정은 읽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젠에 관해서도 비슷하게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나 그들은 베일 때문에 나인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함께 있을 때면, 젠은 자신이 퍽 평범해졌다고 생각하고 안심했다. 기저를 모르는 감정이었다.

나인의 흥미는 무척 일시적이기도 했다. 곧 손을 떼고 원탁에서 내려서는 걸 보니 볕을 쬐며 수다 떠는 데에도 질린 모양이었다. 젠은 잠시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돌아보았다. 별것 없었다. 그런데 나인이 묘한 이야기를 했다.

경계 바깥에 짐승이 늘었다죠.”

괴물이 아니라요?”

나인이 지긋이 바라보았기 때문에, 젠은 자기가 헛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괴물에 관해서 젠이 아는 건 없어야 했다. 그런 정보는 주로 주요 미사를 집전하는 고위직 사제가 다루는 법이다. 게다가 괴물이라니, 세간에 알려진 거라고는 그것들이 존재하기는 한다는 것뿐이었다.

, 경계 너머로 여행 가려고.”

워낙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젠은 놀랐다. 그는 그것이 자살행위라고 배웠다. 추방당하는 범죄자가 아니고서야 굳이 신의 가호 밑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는가.

그때 눈앞이 부서졌다.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젠은 무심코 로사리오를 꽉 쥐었다. 경계가 부서지고 있었다그것은 특정 구역을 가분하지 않고 온갖 곳에 가루처럼, 공기처럼 떠돌고 있어서, 언제 어디서 부서질지 모르는 것이기는 했다만, 나인이 가겠다고 한 직후라니 기이한 일이었다. 젠은 묵주를 쥔 손으로 유리창처럼 금이 간 허공을 붙들면서, 시선을 돌려 나인을 보았다.

나인은 묘지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썼다. 그러자 검은 베일 너머로 얼굴이 아른거릴 뿐 더는 눈빛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역시 어떤 죄책감 같은 것이 젠의 입을 가로막았다.

그 꼴을 보고 나인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녀의 등 뒤로 검은 휘광이 솟아났다…… 아니, 젠은 곧장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건 생물의 마디 달린 다리였다. 거칠어 보이는 터럭이 돋아나 무척 징그러웠다. 젠이 반쯤 목이 졸린 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지 마십시오.”

?”

여긴여긴 안전하니까…….”

여기가 어딘데요?”

하고 나인이 은근히 물어왔다. 젠이 무릎을 꿇자 나인은 함께 꿇어주었다. 손을 뻗어 미끈한 인간의 살갗을 만졌다. “차가워.” 말하며 나인은 웃었다. 젠은 그럴 리가 없다고 여겼다. 이렇게 여름인데, 몸이 더운데 살이 찰 수는 없는 것이다.

괴물이 아니고서야.

나인이 유리 파편처럼 껄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상념에 빠진 거야? …….”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젠은 경계에 난 금을 움켜쥐었다. 피가 흘렀다. 차가운 계곡처럼 허공에 붉은 술처럼 몇 점의 혈액을 늘어뜨리고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젠이 눈을 크게 떴다. 떨리는 손을 들어 눈앞에 들어 올리자, 거기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나인이 웃었다. “, 괴물이잖아.”

 

머리 위로 뭉친 구름이 지나가는 듯했다. 갑자기 눈앞에 그늘이 졌다. 사위가 낮이 아닌 것처럼 어둡고 심지어 싸늘하기까지 했다.

무릎 아래에서는 버섯이 자라는 눅눅한 썩은 내가 났다. 오래 묵은 물처럼 묵은내도. 사람다운 온기와 몇몇 세워진 비석은 찾아볼 수 없었고 육 피트 땅 밑에 묻혀 있어야 할 인골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바닥은 피에 절어 어둑한 붉은색이었다. 나인은 그 위에 완벽한 아가씨 같은 옷차림으로 올라서 있었다. 아니, 나인은 나신이었다. 뒤로 뻗어 나온 거미 다리를 제외하면 걸친 것이 없었다.

젠은 자기가 죽은 사람의 옷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무릎 꿇은 채 신음했다. 이곳은 쓰러져가는 오두막이었다. 그는 제물을 살해한 뒤 제단에 앉아 있었다. 젠은 신을 믿은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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