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물을 들이켜 무거워진 의복이 그 가련한 것을
아름다운 노래에서 진흙 같은 죽음 속으로 끌고 내려갔다.
아아, 그렇게 빠져 죽다니.
가엾은 오필리아, 물이라면 신물이 날 것 같으니…
하루나시 미츠루는 흠, 하고서, 무대 가상자리에 놓인 물병을 들어 들이켰다. 좌중은 고요했다. 그는 노래하듯이 입을 맺었다. “이 오라비는 눈물을 삼키련다.”
일종의 유머였다. 미츠루는 뿌듯한 듯이 관객석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 비치는 곳에서 어둡고 낮은 좌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스 비극의 한 장면처럼, 또는 콜로세움의 한 중앙처럼 이 무대가 낮고 편평하면 좋으련만. 그가 선 무대는 사방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서 그는 사다리꼴 입체 위에 서 있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제 4막 7장은 끝이 납니다. 다음 막을 올리기 전, 대본을 추천할 관객이 있으십니까? 아아, 염려치 마십시오. 저는 즉석공연에 아주 익숙하답니다. 버스킹 훈련 시절은 아이돌의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자, 보십시오. 이제 <맥베스>의 4막 7장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1 대본을 제시하실 분은 없으십니까? 그게 무엇이더라도?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읊어보겠습니다. 잠시만요. 한 모금만 더 마시구요. 이곳은 정말 덥군요. 안 그래요? 스탭 분? 하하. 거기, 하우스매니저? 에어컨을 틀어주세요. 이 열기를 잊고 싶지 않지만, 옷이 땀에 젖어서야 안 되겠지요.”
앞서 이야기한 무대 사정으로, 미츠루의 흰옷에서는 번쩍번쩍 그야말로 광채가 나고 있었다. 미츠루의 이마는 땀에 젖어 머리카락이 들러붙어 있었다. 조명과 거리가 너무 가깝고, 조명이 너무나 눈부신 탓이다. 하루나시 미츠루는 조명을 원망하는 대신 장갑을 벗어 팬서비스처럼─무대 밖으로 던졌다. 누군가 급히 낚아챘을 것이다. 분명히. 여기선 그저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는 분명.
미츠루는 어린 시절 본 유명 배우의 공연을 생각했다. 배우가 쇼 중 자신의 야광 팔찌를 벗어 던지자, 객석에서 쟁탈전이 벌어졌다. 어린 미츠루는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어리석은 방랑자, <오이디푸스 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부은 발’이라는 뜻이랍니다. 아깃적에 양치기가 그를 죽이는 대신 나무에 발목을 못박아 두었기 때문이라나요. 마치 신과 같군요.” 그는 이 대사가 훌륭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땀 한 방울이 뺨으로 미끄러졌다. “먼저,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졌다. 미츠루는 단지 옷의 재질에 불평하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나일론을 입은 것처럼 거칠고 피부에 쓸리는… 어라, 이게 언제부터 드레스였을까. 하긴 뭐 상관은 없다. 관중이 푸른 드레스와 무거운 귀걸이를 원한다면, 그런 사치스러운 치장 따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미츠루가 고개를 돌리자 파르스름한 물방울 모양의 귀걸이가 어깨에 닿을 듯 쩔럭거렸다. 귓불이 벌게져 있었다.
화장이 지워지지는 않았을까? 누군가 입장이 지연되지는 않았나, 이쯤 되어 막을 내리고 막간 휴식을 취해야 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미츠루의 입은 멋대로 발음했다. “인간!”
입안으로 바삭한 공기가 들어왔다. 혀가 바짝 말랐다. 그는 다시, “인간!”
“모든 이야기는 인간으로 귀결됩니다, 그것을 지은 자가 인간이기에. 신이 적어 내린 시구 같은 것이 있다면 멋지겠지만,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답니다. 그러니 인간만이 시극을 하는 존재인 것이지요. 옛날 극장에서는 소품 하나 없이 극을 진행하기도 했답니다. 대낮에, 천장 없는 무대에서, 흰 천을 뒤집어쓰면 그것이 혼령이 되는 식입니다. 거기에 겁을 먹은 관객이 실신을 했다지요. 또, 작가가 부러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한’ 대사를 적는 일도 잦았습니다. 마치 대화를 하는 것처럼요. 대화를 하는 것처럼! 이 얼마나 선량한 생각인지요.”
그는 다시 한 번 물병을 잡고 입에 물을 흘려 넣었다. 목젖이 움틀거렸다. 하지만 일찍이 빈 병에서는 몇 방울의 물기가 또르륵 굴러떨어질 뿐 갈증을 축여주지는 않았다. 미츠루는 스탭에게 부탁하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었으나,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빈 물병을 찌그러뜨려 마지막 물방울을 입에 넣자, 습한 공기가 목구녕 안쪽으로 함께 밀려들었다. 미츠루는 나일론 같은 소재의 거친 옷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땀이 눈동자에 닿아 쓰라렸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혀가 질기게 말라붙었다. 그래, 좋아하는 것. 사랑스럽고, 사랑받을 만한 이야기를 … 인간에 대한, 덧없는 허상 같은 것이어도 좋다.
“무엇을 사랑하십니까?”
하루나시 미츠루는 말했다. 목소리가 석석 갈라졌다. 꼴없는 발성을 내고 만 그는 음음 목을 가다듬었다. 무대 가장자리를 정확히 가르는 그림자는 처음부터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 벗어 던진 장갑이 그 너머에 버려진 혼령처럼 희멀건하게 늘어져 있었다.
미츠루는 불쑥 있던 곳에서 내려섰다. 경사를 비틀거리며 디뎠다. 그는 손을 뻗어 장갑을 주운 뒤에 다시 손에 끼웠다. 바람 한 점 없는 더운 무대와 다르게, 이 아래는 무척 서늘하고 찼다. 하루나시 미츠루가 허리를 숙이자, 그의 얼굴과 목덜미에만 차가운 음영이 드리웠다. 그는 객석 어둠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속삭였다.
“대체 무엇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무대 위, 수통이 나동그라진 채 번쩍이고 있다.
- <햄릿> 4막 7장. 그러나 포스터에는 당연한 듯 <맥베스>라 쓰여 있었고, 하루나시 미츠루는 당황조차 않고 매끄럽게 말을 바꾸어 버렸다. 관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원한다. 제목을 다르게 부른대서 셰익스피어가 되살아날 것도 아니니까. 아, 그런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지만 위대한 시인은 죽었다. 여기에는 배우 한명 뿐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