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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ㅂㅅ님-연성교환

나사르 본주 2019. 3. 29. 10:04

본 게시글은 커미션 외 연성교환 작성본입니다. 커미션 진행 시에는 제목을 제공하지 않거나, 제목 지정을 원하실 시 추가요금이 발생합니다.




여우비:유루테오일

물푸레나무(@gbgkrdhkd)

 

 

 

 

동화는 늘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옛날에, 무엇무엇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시작된 이야기, 조그맣고 꾸준한 서사시. 그래서 이야기는 이렇게 말한다.

유루테오일은 소낙비 쏟아진 날 동굴을 발견합니다…… 작은 여우 친구도 함께요.

 

 

 

훔친 망아질 타고 장에 다녀온다면 참 재미날 거야, 참 재미나겠지. 루루는 흥얼거리며 타닥거리는 모닥불에 동그란 송진을 던졌다. 굳은 나무진액은 손에 바르거나 바큇살을 붙이거나 불로 태워 냄새를 내거나 했는데, 송진은 특히 끈끈해지고 냄새가 싸해서 바위에 오를 때 손바닥에 묻히곤 했다. 손바닥에서 지워지지 않은 걸 뭉쳐다가 모닥불에 던지면 모깃불이 된다고도 했다. 루루는 모기 물린 자국에 손톱자국 넣는 게 귀찮으니까, 자꾸만 등허리를 긁적이게 되는 건 번거롭고 피가 나기도 해서 얼른 모깃불을 피웠다. 송진이 타닥따닥 타들며 불꽃 위에 조그만 번개꽃을 앉혔다.

 

비가 내리는 저녁에는 벌레가 많다.

 

꼬물거리는 벌레는 숨을 찾으러 흙 위로 기어 나오고, 날개 달린 붕붕이들은 비 맞지 않으려고 동굴 안으로 기어들어 온다. 그러니까, 이 동굴 안에는 날개 달린 것들이 아주 많이 있고, 앞으로도 들어올 거고, 그러기 전에 향을 피우는 게 좋다. 루루는 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야무무가 얼른 오면 좋을 텐데.’

 

이런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엔 무리겠지, 루루는 여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루루에게도 짐이 있으니 안심. 장마철은 끝나가니까 내일 아침이 오기 전에 빗줄기가 그칠 테고, 그쳐가는 소리를 들으면 잠에서 깬 친구들이 금세 일어나 찾으러 오겠지. 일리안나는 험한 말 하나 없이 벌떡 일어나서는 뚜벅뚜벅 걸어 노새에게 여물을 주고 엉덩이를 토닥토닥 재촉할 테다. 루루는 여태 흥얼거리면서 송진 동그라미가 든 주머니를 허리에서 풀고 턱을 괴었다. ‘재미나겠지였나, ‘재미지겠지였나? 나는 가 좋은데. 나나, 나나. 라라, 노래에 더 가까우니까. 이끼가 잔뜩 자랄 만큼 습기찬 굴 안에서 불은 시원찮게 탔다. 그래도 마른 장작개비를 먹이면 용케 다시 타올랐다. 라라, 라라, 재미나겠지.

오전에 장에 가선 먹을 것을 더 샀다. 내일은 루루 생일이다. 루루에게는 지금 호박파이가 한 조각 있고, 말린 라즈베리 한 움큼이 있고, 젖은 걸 꺾어온 시큼한 풀떼기 한 주먹이랑 덫에서 빼온 토끼 한 마리. 남의 덫에서 빼앗아 왔지만 배고파서 어쩔 수 없었어. 죄송해요, 입니다. 그치만 거기에 말라가는 감자 반 개랑 남은 말육포를 조금 놓고 왔으니까. 말고기로 만든 육포는 검고 딱딱하고 씹기가 아주 힘들다. 덫의 주인이 이 센 할아버지였으면 좋겠다네.

루루는 빨갛게 숯이 되어가는 모닥불 안 장작에서 얼른 눈을 떼었다. 밤나비처럼 홀려 거기에 눈을 붙이고 있으면 눈동자가 하얗게 타들고 만다, 누군가가 그랬다. 선생님이었나? 나나, 라라라. 루루는 이미 헤집는 걸 포기한 희미한 어릴 적 기억을 놓아두고 까마귀칼을 꺼내었다. 날을 갈아야 하려나아. 라라라, 토끼 내장은 먹으면 안 된다네. 풀이 가득이라 범은 좋아하지만, 덫에 걸린 토끼는 언제 죽었는지 모른다네. 루루는 빳빳하게 굳은 토끼 뒷다리를 들고 불 앞으로 옮겼다. 쓰윽쓱 거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는 모양이 마냥 서툴지만은 않았다.

아차, 루루는 그을려가는 토끼 귀를 얼른 불꼍에서 뺐다. 머리털과 수염이 까맣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이 가죽은 못 쓰겠다, 생각하며 칼질이 잽싸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루루는 윗입술을 물고 열심히 살을 발라냈다. 사냥하는 법과 네발 달린 동물의 근육을 알려준 것 역시 일행이었다. 루루는 이 칼로 작은 짐승을 여러 번 도축해보았다.

육질에 괸 기름이 끓는 소리가 났다. 산토끼는 가죽을 벗겨놓고 보아도 꽤 커서, 배부른 식사를 하고 남은 건 쨍쨍한 날 바구니에 매달아 말릴 수 있었음 좋겠네, 루루는 생각했다. 그리고 죽은 토끼가 잘 구워지는 것을 기다렸다. -카야무는 고기를 찢었을 때 핏물이 보이면 다시 구워야 한다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게 먹으면 탈이 난다고 알려준 바가 있다. 동물 배를 째면 나오는 희고 가는 구데기 같은 것들이 사람 배 속에서 우글대게 된다고 했던가. 루루는 익어가는 고깃덩이를 꾸욱 눌러보았다. 핏방울과 기름방울이 섞여 불 속으로 떨어졌다. 고기를 꿴 나뭇가지를 빙글 돌리고 나서, 루루는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았다. 툭 툭 다릿살에서 기름이 떨어질 때마다 사악사악 불길이 혀를 내두르는 소리가 났다.

, 치즈를 같이 꿰어놓을 걸. 루루는 문득 아쉬워했다.

겉이 질긴 치즈덩이는 루루의 가방 속에 매여 있었다. 육포와 함께 두었던 것인데, 어저께 시장에서 사온지라 아직 곰팡이도 덜 피었고 퍽 신선해보였다. 루루는 칼날을 허공에 뿌리쳐 핏방울을 털어내곤 치즈에 체스판처럼 흠집을 냈다. 그런 다음 밑을 슉 베어내면 조각난 치즈가 칼을 타넘어 보자기 위로 떨어졌다. 가장 가느다랗고 뾰족한 꼬지에 끼워서, 불가에 꽂아놓으면 겉이 먹기 좋게 익어갈 것이었다. 루루는 그렇게 했다. 불기운을 먹은 나뭇가지가 치즈의 무게를 얹고 조심스레 휘어지기 시작했다.

치즈는 안이 단단했는데, 여행자들을 위한 식량은 대체로 다 그렇다. 루루가 어릴 땐 그런 음식을 굽고 쪄야만 간신히 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먹을 수도 있다. 단단한 걸 씹다가 덜렁대는 이가 빠질 시절은 지나버렸다. 그래도 익혀 먹을 수 있는 건 익히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렸으며, 사실 시-카야무도 그편을 더 좋아했다. 그는 루루를 여즉 어린아이로 보았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니. 여튼 익힌 식량은 더 맛있으니까. 나뭇가지를 돌돌 돌릴수록 치즈가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본래는 겉만 살짝 데울 생각이었는데, 둥글게 녹녹해져가는 모양이 예뻐서 루루는 저도 모르게 불에 익는 금빛 치즈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불에서 꺼냈을 땐 나뭇가지가 능청하게 휘어 있어 금세 입에 넣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랬다간 입안을 다 데이고 말 것이다. 루루는 겉껍질이 녹아 흘러내리는 기름무늬가 비쳐보이는 치즈를 후 후 불었다.

흐린 김을 피우는 치즈덩이에 혀끝을 살짝 대보니, 말랑하고, 뜨근하고, 미끄러웠다. 루루는 침이 고이는 걸 느끼며 치즈를 앞니로 갉듯이 조금 베어 물었다. 짜고 조금은 단 맛이 났다. 살살 식혀서 입에 넣어 굴리면 몸이 노곤해지는 열기가 퍼져, 루루는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맛이 짭조름해서 담백한 빵이 먹고 싶었다. 대신 고기가 있었다. 루루는 작은 고기 한 점을 빼서 겉이 잘 탔는지 확인하고, 신중하게 살을 떼어먹었다. 완전히 익어 껍질이 바삭했다. 베어물면 아직 지글지글하는 껍데기와 핑크빛 나는 야들한 속살이 느껴졌다. 어쩐지 달착지근했다. 치즈와 같이 먹기에는 짰지만, 그렇지만, 맛있었다! 토끼고기는 결대로 찢어지는 것이 닭고기와 비슷한 식감이라 루루는 마을에서 하는 식사를 떠올렸다. 그 여관, 아저씨께서 정말 친절하셨는데.

흰 빵을 주셨더랬다.

완전히 밀로만, 우유와 계란을 듬뿍 넣은 빵 한 덩이. 껍질은 부드럽고 눅눅했는데 민트 어린잎사귀 뒷면처럼 부드러워서 이로 쉽게 잘렸다. 약간 질긴 듯이 쫀쫀하게 잘리는 겉과 몽실몽실한 크림처럼 부드러운 안쪽이 이상했다. 루루는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며 빵을 전부 먹어치웠다. 손가락을 살짝 핥아보면 단 맛이 났다. 사탕수수 즙이 들어가 있어서 맛보는 내내 이상하다,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루루는 검고 거친 빵이 좋아. 늘 먹어온 것처럼 사냥해 잡은 질긴 고기가 좋고, 갓 벗겨서 말리고 무두질해야 하는 가죽의 냄새가 좋다. 간혹 여우 눈을 제대로 맞춰서 잡으면 그 가죽은 곱게 벗겨 팔았는데, 그때 가죽을 받고 돈을 주는 아주머니는 돈을 짤랑짤랑 세는 버릇이 있었다. 오른손에 쥔 동전이 손가락 장갑을 낀 왼손으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 짤랑, 짤랑, 루루는 그 손을 유심히 보는 것이 좋았다. 뒤집히며 떨어지는 동전의 앞뒷면은 마치 움직이는 달 같아서.

, 향낭과 과일을 파는 집 할머니는 어땠던가. 치맛자락을 펄렁거릴 때마다, 이가 낀 모자를 벗을 때마다 사향 냄새를 풍기던 할머니는 동전을 하나씩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으로 계산을 끝마쳤다. 그러고는 깨진 앞니를 상냥하게 드러내어 웃고, 손에 꽃사과 한 줌을 쥐여주고는 했다. 루루는 빵을 받아먹거나 자그만 사과알을 씨까지 아작 씹어먹고 아큼, 하며 시어했던 것으로 각 마을을 기억했다. 모험이란 머물지 않고 영혼도 떠도는 것이니 기억이 영원히 머물진 않겠지만, 사과의 맛과 쩔렁거리는 동전 주머니, 과일 집 천정에 걸린 커다란 코카투 새장 같은 것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루루는 생각했다. 그 새는 하늘을 날아본 적이 있을까? 못 날아 보았다면, 아주 어릴 적에 날개 끝을 잘리고 만 걸까? 끄트머리가 조금 없는 날개로는 비틀거리며 날아갈 수 없는 걸까?

어쨌든, 그날의 사과는 맛있었고 하늘은 푸르렀으므로. 루루는 볕에 찡그리며 손차양을 치고는 날 좋을 때만 보이는 먼 설산을 바라보았었다. 시큼한 과일과 사향 냄새가 섞여 여름 아지랑이처럼 어지러웠다. 노새에 허벅지를 딱 붙이고 가다 보면 평원이었다. 그림자는 큰 나무보다 크게 자라고 태양이 먼 곳에서 비추어 더는 차양이 필요가 없었다. 노란 곳에서 파란 곳으로, 루루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루루는 지금 말린 라즈베리를 먹고 있었다. 앞니로 살짝 씹어서 야금야금 먹으면 쿰쿰하고 신 맛, 곧 달달한 끝맛이 비쳤다. 말린 과육은 그럼에도 쉽게 상해서, 비가 내리면 먼저 먹어주는 것이 좋았다. 사실, 그런 거 없이도 그냥, 맛이 있으니까. 루루는 장난 삼아 크랜베리 한 줌을 쥐고 입안에 한꺼번에 털어넣어 보았다. 우물거리는데 어금니가 찐득찐득하게 달라붙었다. , 하는 소리가 들렸다. 루루는 어리둥절하게 지금 내가 목이 막혔나 싶었다.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땐 이미 활을 쥐고 있었다.

젖은 여우가 굴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구운 토끼를 노리나?, 했지만 꼴이 퍽 처량해보이고, 뱃가죽 말라붙은 것이 불에 덤벼들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마지막 힘을 짜내서 인간의 식량을 축내려 하나. 루루는 활시위를 쥐고 당겼다. 짧은 화살 끝이 자연스레 여우의 눈을 향했다. 루루는 그대로 가만히 여우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여우는 둥글고 갈색인 눈동자를 치우거나 비굴하게 내리깔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고개를 내리고 털을 세우고, 루루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지켜보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여우의 한쪽 눈은 말간 하늘처럼 푸르렀다. 루루는 활시위를 내리고, 먹고 있던 고깃덩이에서 살 한 점을 베어내어 던져주었다. 여우는 킁킁대더니 진흙이 묻은 살점을 얼른 주워 먹었다. 그리고 동굴 안쪽으로 살짝 더 다가와서 기다리듯이 앉았다. 루루는 한 점을 더 던져 주었고, 여우는 조금씩 더 가까워졌고, 그렇게 둘은 불은 바라보며 거리를 둔 채 함께 앉았다. 루루는 아직 좀 어리둥절했다. 여우가 사람 손을 타는 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우 울음소리는 강아지나 고양이의 기분 좋은 가르랑거림과는 거리가 머니까.

하지만, 식사에 초대할 이가 있다면 좋지 않은가? 둘은 사이좋게 토끼 한 마리를 나누어 먹었다. 네가 아니라 사슴이 왔다면 잡았을 거야, 왜냐면 사슴은 고기를 먹지 않으니까, 루루는 여우에게 속삭여주었다. 하지만 루루가 사슴에게 말린 과일을 양보했을 거라고 여우는 믿는 듯했다. 여우는 알았다, 하며 폭 한숨 쉬듯이 눕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루루는 여우를 많이 잡아 보았지만, 눈이 푸른 것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 눈을 감기고 싶지 않아 손짓을 휘휘 저어보았다. 여우는 귀찮다는 듯 가늘게 눈을 뜨고 루루를 바라보았다. 불에서 멀찍이, 여전히 불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불을 오래 보면 눈이 하얗게 먼다는 걸 여우도 아나 봐. 루루는 그에게 이름을 물어보고픈 충동을 느꼈다. 대답해줄 리 만무하지만.

여우가 가만히 끙끙거렸다. 말라가는 털가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 거칠고, 진흙자국이 없는 속털은 부드러웠다. 여우의 귀 끝은 희었다. 분명 아름다운 가죽이었지만…….

루루는 송진 한 알을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 하는 소리가 났다. , 여우가 튕겨올랐다.

루루는 계략한 것처럼 후후 웃었다.

 

 

 

동화는 늘 이렇게 끝이 난다. 그리고 오래오래, 둘은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시작된 이야기, 조그맣고 꾸준한 서사시. 그래서 이야기는 이렇게 말한다.

유루테오일은 야무무의 손길에 깨어났습니다. 추운 새벽이었어요.

불은 깜부기만 남고, 여우는 아침안개 속으로 사라졌답니다. 루루가 말했습니다.

 

야무무, 루루 정말 아름다운 여우를 봤어,

그런데 꿈이 아니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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