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죄 들어냈다. 얇은 여름옷도 겹겹이 개어 두니 리빙에 가득 들었다. 계절을 갈아치울 때마다 좁은 수납칸에 곤혹을 치르는 게 제삿날보다 골치스러웠다. 나는 쌓아둔 겨울옷과 석유냄새 나는 박스에 담아 둔 버릴 옷더미 사이에 앉아 턱을 괴었다. 오후가 퍽 쌀쌀했다. 빠끔 열린 반지하 창 안으로 아스라한 무지개가 어룽졌다. 이번 집은 그나마 나은 축이었다. 습기가 차긴 해도 창문이 넓으니. 취객이 고개를 들이밀고 창살 사이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른 전적이 있기야 했지만(그리고 그것이 이사의 이유가 되긴 했지만) 잠자고 씻기에는 모자라지 않았다. 제일 괜찮은 건 창고의 존재였다.
그것이 대체 왜, 어떻게 건축 설계에 포함되었는진 아무도 몰랐다. 집주인조차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말을 피할 뿐 얇은 판자문을 두고 입벌린 길고 시커먼 막장의 존재에 대해 거론하는 사람은 없었다. 막다르고 짧은 복도 같은 공간은 딱 내가 누울 만한 길이에 도넛상자 두어개가 들어갈 만한 너비였다. 손윗형제는 관 모냥 같다며 빌어먹을 농담을 해대다가 모친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등에 빨간 손자국이 오래오래 남았으면 하는 맘이었지만 나는 비슷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타일로 대충 바닥을 때운 관짝, 딱 그 모양이었다.
그래도 화장실보다 습기가 덜 차며 일반 택배상자가 잘 들어가는 크기여서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놔두기에 충분했다. 관이란 것도 나름의 수납공간이니까 당연한가, 생각을 하다가 팔에 오른 소름을 쓸어내렸을 때도 있었다. 등이 달리지 않아 아주 어두웠는데 그게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는지 개강총회 뒷풀이 후에 필름이 끊겨선 그 안에 누워 아침을 맞은 적도 있었다. 창고 안은 이마를 딱 붙이면 좋게 몸에 맞았고 어느정도 훈기까지 돌았다. 비록 밤 내내 누가 뒷덜미에 입김을 부는 것 같아 악몽을 꾸었긴 해도.
자취는 필연적으로 자질구레한 물건 수납의 곤란과 함께한다. 창고는 그런 물건을 처박아놓기에 적당했고, 따라서 버리기도 귀찮은 교양서적이나 전애인이 주었던 구질구질한 선물 따위는 그곳에 던져졌다. 그래, 그러고보니 창고 안도 청소해야만 했다. 나는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창고 문은 사람 아가리처럼 훅훅 쪘다. 마치 이곳만 여름을 덜 잊은 것 같았다. 나는 열 때마다 요란한 창고문이 닫히지 않도록 발을 끼워넣고 그 안으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거기에 전구를 단 건 최근의 일이다. 지켜볼 것이 생겼기 때문에...
남자는 중장년층에 어디어디 땅이니 거래처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 듯 느글느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철창이 누구네 개집인 줄 알고 겁없이 고개를 들이밀던 꼴은 볼 수 없이, 이제 청테이프를 붙인 채 주름이 자글하도록 눈을 치켜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백열등을 탁 켜니 동트는 것처럼 따뜻한 불빛이 남자의 눈동자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처리를 고민해두느라 벌써 이틀 째 굶긴 채였다. 혹시나 방심한 새에 도망치거나 하면 수납공간의 곤란을 다시 겪게 될 테고, 온통 아스팔트니 콘크리트를 깔아둔 서울 한바닥에서 흙을 찾아 삽질하고 싶진 않으니까. 남자는 잔뜩 구겨진 양복을 입고 무어라 웅얼거렸다. 나는 귀를 좀 파다가 불을 껐다. 조악하게 늘어진 알전구가 뜨끈한 필라멘트 궤적을 그리며 좌우로 흔들렸다. 남자는 분명 그 빛을 보고 있을 것이다. 목숨 마지막 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그 짓을 장려하기로 하고는 문을 닫아 두었다. 사람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저게 마지막 희망이 될 테니 더 그러하다. 미장용 백쎄멘을 물에 개려면 날이 더 익어야 할 테다. 저녁엔 문틈을 바르고 페인트칠을 한 뒤에 벽지를 붙여야 한다. 내가 손수 '리폼'하겠다 하니 집주인은 참 좋아하더라. 어차피 설계상의 잘못, 벽너머에서 시체 한구쯤 썩는다 해도 눈치챌 사람 쉽게 없겠지. 반지하에선 으레 쓰레기 냄새가 나지 않는가. 김밥 좀 사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