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을 하면서 그는 두부를 쥐여주었다. 따끈따끈했다. 연구소에 간수가 있던가요? 그나저나, 무지하게 심심한 맛이잖아요, 이거. 소이 소스는 어디 갔어요.
그래도 웰치스 루이뵈르는 두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심심하고, 삼삼하고. …설 묵은 치즈 맛이 났다.
종이배가 점점 젖고 있었다. 흰 배는 검은 물 위에 떠 있었고. 삼각돛을 만지작거리는 웰치스 루이뵈르가 있었다. 웰치스는 한 손에 주먹만 한 두부 덩어리를 쥔 채 상체를 일으켰다. 강은 너무나 검어서 물결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희부옜다. 거대한 초롱 아귀가 입을 벌리고 있는 바로 근처인 것처럼. 술 냄새를 맡아본 웰치스는 간단하게 확인했다. 이건 술이다. 마론이 오디세우스에게 선물하고,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에게 헌주한 후 그 자신은 누구도 아니게 된 바로 그 포도주였다. 웰치스는 외눈박이 괴물처럼 거나해지고 싶지 않아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니, 어쩌면 하계의 신들에게 바친 제물을 녹인 석유에 불과할지도 몰라. 모든 반짝이는 것들은 결국 검게 쇠하고 마니까.
웰치스는 다시 바로 누웠다.
루 라바다에게는 밥투정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구소의 식단은 영양가 풍부하고 균형이 잘 맞았지만, 극도로 삼삼한 맛에다 무엇보다 단조로웠다. 식자재가 하품질인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 채소들에선 간이 조금 덜떨어진 소스 맛밖에는 나지 않았다. 마체테가 들고 온 두부도 그랬다. 아주아주 미미한 맛.
식사 거리를 옷 속에 숨겨 변기에 내린 것은 금세 들켰다. 마체테는 새 옷과 물수건과 봉지에 든 두부를 건네주며 말했다, 맛을 골똘히 느껴 봐. 맛이란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마음만으로는 알 수 없는 예민한 구석이 있지. 그러고는 극단적으로 정제되어 물처럼 찰랑거리는 간장을 뜯어주었다. 간장에서는 톡 쏘는 단맛과 아주 약간의 감칠맛이 났다. 루 라바다는 ‘감칠맛’이라는 것, 그러니까 ‘맛’이라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고 생각한다.
“소스를 준 건 비밀이야.”
종이봉투에 맥주를 감춘 드라이버 같은 말투로.
감칠맛. 그리웠다. 루 라바다는 키클롭스와 오뒷세우스를 동시에 코즈믹으로 몰고 간 술-석유의 강을 내려다보았다. 얼굴이 엷게 비치는 듯도 했다. “그러니까 소이 소스는~ 어디로 간 거죠?” 입술이 달싹이는 모양은 잘 보이지 않았다. 뱃전에 물결이 일었기 때문이다.
간장이며 하다못해 칠리소스도 없이 두부를 베어 물자 한참 담백해 입이 뱉고 싶어 하는 맛이었다. 하지만 식감만은 커다란 행복을 입에 넣은 만큼 풍만해서, 루 라바다는 계속 씹었다. 몇 번 입질하면 금세 사라지는 양이라 곧 축축하고 고소한 손바닥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즈음 되니 목이 말랐다. 그는 손을 모아 수면에서 훔친 술을(술이었다!) 입술에 가져다 댔다. 오래 끓인 포도주처럼 정말 단데, 끔찍한 갈증은 사그라들었다. 신의 음료가 그렇다는 것처럼.
루 라바다는 거나하게 취했다.
종이배가 더 젖어 있었다. 밑부터 검보라색으로 물든 조각배가 점차 가라앉을 때, 루는 폴짝 뛰어서 완전히 침몰하기 전 뭍에 오를 수 있었다. 거긴 식탁이었다.
취했나 보네, 루는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쭉 혼자잖아?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루는 벗은 발로 접시를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접시 위에는 칠면조며 케이크, 구운 콩, 재첩 수프 같은 음식이 전후 없이 마구 놓여 있었지만, 물병은 없었다. 물병인지 술병인지 모를 것이 식탁 끝에 있기에 루는 두 손을 뒷짐 지고 천천히 걸었다.
이곳은 온통 흑백인데 술로 만든 강만이 부드러운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왼쪽으로 늘어선 기암괴석에 비치는 물그림자가 은은한 적색이었다. 루는 이에 낀 두부를 우물거리면서 다시 앞을 보았다가─앞과 뒤가 있다. 세계를 인식해 세계 자체로 만드는 주체가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다. 루 라바다는 그 ‘뒤’를 흘끔거리던 참이었고─마체테와 부딪혔다. 마체테는 손을 내밀어 루를 식탁에서 내려주었다. 마지막 접시를 밟아 발이 소스로 얼룩져 있었다.
“보아하니 잘 먹진 않은 것 같구나.”
그래서 루는 이것이 꿈이란 걸 깨달았다.
“아침까지 아무것도 못 먹을 텐데.”
마체테는 연구복 주머니에서 고독을 꺼냈다. 희고 민숭민숭하고 설익은 치즈 맛이 나는 것. 거기에, 극도로 정제된 간장을 뿌려 주었다. 심장을 쥔 것처럼 둥글게 만 그의 손가락과 손등뼈 사이로 황홀한 금빛을 띤 간장이 툭 툭 흘러내렸다. 루는 그것을 공손하게 받아 조금 뜯어 먹었다. 루의 눈에서도 부연 빛이 흘렀다.
거기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술의 달곰한 맛도, 간장에서 나던 미화된 감칠맛도, 숙취도… 하다못해 맹물에서 날 법한 ‘좋다’거나 ‘싫다’라는 감촉의 느낌마저. 루 라바다는 잘못 만든 두부처럼 둥그런 덩어리를 조금씩 뜯어먹다가 결국 손을 떨어뜨렸다.
“먹는 것에는 입맛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있댔잖아요.”
“이번 것은 별로인가?”
“맛이 있지는 않아요. 아무 맛도 나지 않죠!”
“그건 안 됐구나.”
“어쩌면 우리는 그저 있는 그대로 공명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이제 무슨 소용이니.”
마체테는 입을 벌려 남은 조각을 다 털어 넣고 우물거렸다. 마체테의 손에 미끈미끈하고 조금도 고소하지 않은, 물기만이 남았다.
루 라바다가 말했다.
“거기, 있어요?”
마체테는 웃었다. “아니.”
웰치스는 극심한 갈증과 함께 깨어났다. 아침이었다. 중간에 깨어나서 자리끼를 마신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목이 마를 만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뺨이 팽팽하게 당겨왔다. 분명 꿈에서 울었지. 그런데 왜 벌써 눈물이 말라 있을까.
입가에서 짠맛이 났다. 그는 어제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둔 두부 요리를 생각했다. 튀긴 두부는 중화요리에 가까웠지만, 꿈에 나온 그것은 아무 조미도 되지 않았으니까 다른 맛인데. 하지만 아침으로는 두부를 먹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꿈에서 수프를 마셨는지 어쨌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짭조름한 맛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으니 물 대신 마셨겠구나 여길 뿐. 꿈은 꿈의 일, 인제 와서는 상관없을 터였다. 배가 고픈데 막상 먹고 싶은 것은 없었다. 생각나는 요리들이 전부 머릿속의 것이어서.
마체테가 “아니”라고 말한 순간부터 눈물이 마르기까지의 공백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루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도통 떠올릴 수 없었다. 웰치스 루이뵈르는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타인은 타인이 아니고, 마체테는 그저 ‘거기에 없’을 뿐이었는데. 그렇다면 그 어정뜬 공간에는 무엇이 존재했을까.
당신의 고독을 그때만큼은 함께 느꼈을지도 몰라. 기억하지 못한대도 분명.
그러니까, 아침으론 역시 두부 탕수를 먹기로. 웰치스는 빈 물컵을 들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양말을 신고 있어서 냉기는 멀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