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가 지나갈 때, 모종의 일로 기분이 들떴는지 히죽거리는 팔공을 보고서, A는 함께 걷던 연인에게 속삭였다. 저 여자, 울기는 할까? 이 근본 없는 의문은 보편적 인간과 그의 연인에게 비슷한 공감류를 낳았는지 B는 기묘하게 찡그리며 대답했다. 뭐, 언젠간 그렇겠지.
팔공은 들었다.
대답해주자면.
상해의 기인도 운다. 물론. 축축하고 보드랍고 미끄러운 눈물을 직접 잣는다.
팔공은 굳이 거울을 보며 안대를 벗었다. 먼저 엄지를 안대 밑으로 슬쩍 밀어 넣어 손에 닿는 서늘한 촉감을 즐긴 다음 위로 스르르 미끄러뜨리는 것이다. 그러면 인조 거죽으로 만든 안대는 머리 뒤쪽으로 떨어져 나가고 팔공의 귀염둥이들이 몸을 내린다. 의지를 갖은 눈물처럼, 지네 두 마리가 팔공의 눈가에서 턱과 콧대 위로 검게 기었다. 중력을 거스른 이 ‘눈물’은 팔공에게 가볍게 애틋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우는 사람이 자신 앞의 거울을 바라볼 때와 한치 다름없이.
팔공은 지네를 떼어내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팔공이 기르는 두 마리 폐허의 산 증거이며, 팔공과 달리 잉태할 것이다. 아마… 둘 다 수놈이 아니라면.
뭐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아쉽지만, 그쯤 재밌어하고서 거울 아래에서 먹이통을 꺼냈다. 귀찮고 익숙한 삶의 종속이 남는다.
팔공이 발가락으로 더러운 선풍기를 켠다. 낮고, 낡았고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누런 방 안의 공기를 털털거리는 날개가 노역하며 환기시킨다.
통 안에는 다 죽어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미와 바퀴벌레가 무더기로 있다. 축축한 점막 안에 도로 끼워 넣을 것이니 약을 뿌려서도 귀염둥이들의 취향을 고려하자면 완전히 죽여서도 안 되는데, 팔공은 벽을 지루하게 기어가는 가여운 거미와 바퀴벌레 투기장에서 진 떨거지들을 동전 한두 개 주고 얻어먹이는 방식을 택했다. 이편이 싸게 먹히며 때려잡다가 터지는 것보다는 손에 덜 묻고 냄새가 안 났다.
그리고 재미있잖아. 원래 패배자는 이렇게 먹히는 것이다. 앙.
가끔은 침을 뺀 말벌도 준다.
곧 도마뱀을 먹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테스트해봐야지. 팔공은 길길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작은 통 속에 털어 넣은 퉁퉁한 지네 둘이 서로 얼기고 설키며 파르르 떠는 먹이를 악악 씹기 시작한다. 저 독을 어디에 쓸 곳이 있을 것이다. 팔공의 잉태아들은 어떤 산출을 방해할 것이고, 팔공은 그 상상이 미덥다.
먹을 수도 있겠지. 지네에는 매운맛이 들어 있다고 한다. 요리에 뿌려서 대접하면 꽤 좋은 도박이 될 것인데, 여기까지 생각하자 귀한 것을 접대하는 것처럼 기분이 불쾌해지고, 동시에 귀한 것을 먹다 뒈져 나빠지는 불특정한 인간이 연상되어 즐거웠다. 하기야 상해 사람들이 못 먹는 게 뭔들 있겠는가. 지네도 시장 복판에 나가면 꼬치에 꿰여서 관광객들 입속으로 들어갈걸. 역시 관두는 게 낫겠다. 그런 지리한 행동에 쓸만한 아이들은 아니다.
지네의 먹는 속도가 느려질 때 팔공이 발을 들어 통을 툭 쓰러뜨렸다. 그 바람에 거울 앞에 있던 칼이며 담뱃갑 재떨이가 전부 쓸려 우르르 떨어졌지만, 선풍기 바람에 담뱃재가 다 날린 참이므로 별걱정은 없었다. 이럴 때면 팔공은 꼭 신이 된 것을 느낀다. 천팔공 또한 이런 식으로 버린 자식이 되었을지 어찌 아는가.
탕아의 인생은 즐겁지 않니, 팔공은 재를 펄펄 피우는 담배를 문 채 쭈그려 앉아, 유리가 깨져 흐르는 유탁한 스킨로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은 눈 하나도 움틀 거리는 지네처럼 방향을 알 곳 없고 희멀떡하기만 하다. 나머지 눈 하나에는 먹이로 거미를 키울 수도 있을 테지. 그림책에서는 말야, 마녀는 황소개구리와 도마뱀과 지네와 거미를 뱉으며 말한댔다. 그건 참 재미있는 이야기였지. 그토록 추하며 박한 마녀가 죽지 않았어.
쓰러진 통 안에서 지네 한 마리가 기어 나온다. 먹이에 되레 잡아먹히진 않은 모양이다. 통은 누르스름한 부스러기를 남기고 비어있다. 포식했군. 노랑 줄무늬거미 다리는 맛이 없어?
잠깐이나마 신이 된 팔공은 얼굴을 이리저리 부벼대는 지네를 집게손가락으로 들어 눈깔이 빈 눈에 밀어 넣는다. 하나. 그래.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