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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ㅈ님

나사르 본주 2021. 6. 28. 15:12

드라이브 커미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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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디로 가든지 계속, 쭉 가다 보면 바다는 나올 거라고, 멕시칸 모자를 쓴 보안관은 챙을 만지며 말했다. 굵고 터럭이 난 손가락에 흠집이 많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박혀 있었다.

L은 조수석에서 지도를 펼쳤다. 글씨조차 가물가물하게 해어진 데다가 축척도 맞지 않는 지역 지도였다. M은 운전대를 쥔 채 몸을 기울여 이마를 기댔다. 뺨이 발간 게 꽤나 더워 보였다. “덥지 않아요?” 묻는 건 L에게였다. “그다지.” R는 전혀, 라고 말하듯이 대답했다. “헐벗고 있으니 그렇죠.” L이 무심한 손길로 지도를 접었다. 해가 지고 있으니 뚫어지게 봐봐야 소용없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좋아요. 어디까지 가야 하는데요?”

말은 바로 해야죠. 도망치는 자에게는 낙원이 없다는데

, 또 고루한 소리. 산이든 바다든 나타나면 그때 멈추는 거야.”

M은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둘 중 뭣도 없는 황량함만 지속되는걸요. 그는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훔칠 수도 없는 신기루만 망향처럼 떠 있었기 때문이다. 회전초는 이것과 저것의 차이가 없이 때때로 태산처럼 몰려왔고, 눈을 빛내는 M에게 L은 저건 산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차 빌린 거 아니냐고 보안관이 참견해왔다. 번호판을 본 모양이었다. 아님 훔쳤냐고 묻는 것 같아 M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뒷좌석에 늘어지게 누워서 멀미를 하던 R가 그때서야 일어서서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열린 창의 테두리를 붙잡았다. L이 위험하다고 잔소리하기 전에 그는 말했다. “빌렸지.”

그럼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냔 말이 돌아왔다. “?” R는 너무 고리타분해 도리어 의미 생경한 격언을 들은 것처럼 되물었다. L이 지도를 구기는 소리가 났다. 종이를 저 지경으로 다루어 놓았으니 양피지마냥 부드러워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이 앞으로는 쭉 사막이오.

전에는 바다가 있다고.”

- 검문소 몇 개 넘으면 있겠지.

대체 어디로 가는 거요? 챙을 슬쩍 들추어 머리숱 빠진 이마를 드러내 보이는 보안관에게 L은 단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디로든 갑니다.” M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기름이 떨어지지나 않았는지 확인해보았다. 아직은 충분했다.

아직은,

그들은 기이한 여행자였다. 운전석에 앉은 아가씨는 푸석해진 뺨을 더듬으며 낭랑하게 투덜거리고 있었고, 사뭇 뻔뻔스러운 얼굴을 하고 안경을 걸쳐 쓴 남자는 이 더위에 긴 셔츠 차림이었다. 둘 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는데 뒷좌석의 인간은 머리카락을 차 바닥까지 늘어뜨린 채 창턱에 기대어 히죽 웃어 보였다. 공통점은 신분증이 없다는 거였다. 어떻게 면허증조차 없을 수 있냐고 묻자,

있었는데.”

하고 지도를 접어 들며 누군가 중얼거렸다. , 혀 차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자동차가 거칠게 출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차종이었다.)

기이한 차례로 앉아 있어 순번을 매기라면 헛갈릴 만한 인간들. 보안관은 이 해이한 마을을 그들이 지나치도록 두었다. 오리건의 지명수배자만 아니라면 좋았다. 저 교묘한, 원형을 연상케 하는 삼각형은 구멍 난 타이어 같은 느낌을 주어서 언제까지고 달릴 수는 없을 거란 믿음이 있기도 했다. 보안관은 노련했고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결국 타이어가 펑크 난 건 한 시간쯤 더 달렸을 때였다. 별이 총총히 박힌 밤이었고 보랏빛이 울그부레한 저녁놀은 한참 지난 뒤였다. 간간이 흰 글씨로 빛나던 표지판도 야광 칠이 떨어졌는지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초췌한 나무처럼 쇠기둥만 섰을 뿐이었다. 그때쯤에 M은 못 해 먹겠다며 운전을 멈추었다. “오늘은 끝!” “자정까진 시간이 남았는데.” L이 중얼거렸다.

그때 R가 차에서 스르르 내렸다. 굵은 뱀이 지나가는 것 같은 쉿쉿소리였고 차 문이 지나치게 달칵거리지 않았다면 몰랐을 터였다. L이 따라 내렸고, 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키득거리며 M이 따라갔으므로 차 안이 텅 비었다.

암초 하나 없이 출렁거리는 어둠의 정경. 헤엄칠 수도 있겠다고 M이 속삭였다. 농밀한 히스 향을 품은 공기가 입술을 콱콱 물어대서 크게 떠들기는 힘든 일이었다. R는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경계에서 반걸음쯤 더 가 있었다. 지팡이를 성가시게 빨아들이는 모래에 혀를 차면서 L이 다가갔다.

뭘 봅니까.”

L이 저 물결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푸르고 깊은 눈길에도 암흑은 물러서지 않았다. 무언가를 포착하는 대신 그는 놀랍게도, 잉크 냄샐 맡았다. 손에 여태 쥐고 있는 지도에서 풍기는 옅고 오래 묵은 색조의 향기가 공격적인 꽃냄새 사이로 끼어들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잠을 자고 있는 거야.

 

가 이야기했다. “그냥 여기서 묵자.” R가 돌아보며 자못 해사한 얼굴을 해왔다. 깊은 안와며 속눈썹 그림자가 졌는데 왜 그런 감상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농이 트렁크와 함께 무거운 모래를 끌며 걸어왔다. 발걸음이 푹푹 패였고, 잿빛 눈이 인조적인 불빛에 자못 영롱해지는 걸 보고서 R는 살포시 웃었다. L은 조수석에 다리를 구겨 넣는 것도 못 할 짓이라면서 이내 고개를 돌렸다. 텐트는 던지기만 하면 되었다. 쇠 살이 없어서 어떻게 서는지 흐물흐물하기야 했지만. M은 신기루가 보이는 바에 이상할 것도 없다면서 한숨을 내쉬고 이 근교의 이질적인 시간대를 모르는 체했다. 사실, 모르고 싶은 것이 더 많았다.

어둠을 틈타 스미는 것은 유서를 베껴 쓰는 것처럼 회개한 듯이 희미한 문체였다. 나란히 하늘을 보고 누웠는데, 어째서 이 텐트는 이토록 넓고, 뼈대가 없고 천정이 뚫려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어디까지 갈 셈이냐고 M이 물었다.

신이 주무르고 간 붉은 색은 오래 저문 뒤였다. 현명한 밤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누르는 손길을 느꼈다. 도시 쥐 같은 이 영안이 마음에 드는가 보지 하며 그가 웃었다.

은하수는 아스팔트 위를 지나는 하양 페인트 같았다. 여기에는 가름질할 몇 차선 도로 따위는 없는데도 뭘 나누고 있는지. 모래에 가끔 박혀 새가 쪼아먹는 달콤한 돌조각들이 바로 별이었다. L은 발목을 감는 환지를 느꼈다. 발이 저려온 것이다.

견디다 못한 자동차가 푹 가라앉는 소리. , 모래무지가 바뀌는 소리일지도 몰랐다. 크고 굵다란 밧줄이 올가미 매듭을 짓고 있는지도. 그걸 쥔 손가락은 빨갛게 달아오른 아침인지도.

영영 모를 터라고 생각하며, R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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