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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ㅍ님

나사르 본주 2021. 3. 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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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희부연 햇살이 흘러넘치는 아침이었다.

  침대에 누운 채 정신이 번쩍 뜬 에스텔은 맨발로 후다닥 내려섰다. 차가운 나무 바닥에 발을 간질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까치발을 하고 커튼을 젖힌 아이가 싱긋 웃었다. 이웃집 담장으로 뛰어오르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의 정경.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슬슬 주민들이 나와 잔디와 씨름을 할 시간. 장미 봉오리가 수줍게 벌어지는, 이른 아침 녘 새초롬한 연분홍빛! 에스텔라스 그레텔의 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에스텔은 벌써 코를 킁킁대고 있었다. 부모님이 케이크를 준비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트에서 바닐라 향기가 나는 딸기 케이크로, 크림이 뭉그러지지 않게 하려면 말린 딸기를 아낌없이 부었을 게 분명했다. 집에서 만든 투박하고 따뜻한 롤케이크도, 또 어쩌면 머핀도 함께.

  하지만 케이크를 먹으려면 아침 식사를 해야지. 에스텔은 척척 잠옷을 갈아입고, 부드러운 슬리퍼를 신고 문을 나섰다. 이 층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아 있으니 난간 사이 구멍으로 머핀 쟁반을 든 아빠가 보였다. 에스텔이 날 듯이 계단을 내려가자, 어어 조심하란 말이 쏟아졌지만, 에스텔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도도도 달려가 식탁 앞에 앉았다.

막 달걀 요리를 마친 엄마가, 눈앞에 접시를 놓아주며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 딸.”

  “맛있겠다! 잘 먹을게~”

  “오늘은 특별히 스크램블이야.”

 

  아빠가 오븐 장갑을 벗으며 머핀을 얹어주는 걸 못 참고, 에스텔은 얼른 포크를 들어 볶은 달걀을 입에 넣었다. 포글포글하고, 조금 짠(엄마의 요리실력은 안 좋았지만─늘 먹어온 에스텔에게는 맛있었다) 음식이 입안에서 가득 부서졌다. 아빠가 옆에 서서 머핀을 잘라 달걀을 올려주고, 삶은 당근 조각도 몇 점 슬며시 내려놓았다. 에스텔은 신이 나서 아침 식사를 하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음식을 보자 배가 고팠던 것이다.

  어젯밤에는 얼른 생일날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척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을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된다고 만류 당할 정도였다. 평소라면 책을 더 보겠다느니 오늘은 기필코 심야 드라마를 감상하겠다느니 고집을 부리는 아이로서는 기특한 일이었고, 에스텔이 평소보다 일찍 눈을 뜰 걸 알았던 부모는 여덟 시 반이 되어서야 허락해주었다. 아직 저녁달이 보일 때였다.

  토마토소스가 든 스크램블을 몇 입 먹고 나서야 허기가 가신 듯, 에스텔이 오물거리며 말했다.

 

  “참, 아까 고양이를 봤어.”

  “고양이?”

  “옆집 테리. 또 도망가.”

  “돌아올 거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빨간 목줄을 한 흰 고양이 테리는 정말로 매일 저녁 돌아왔던 것이다.

  갑자기 에스텔의 눈이 반짝거렸다. 마침 생일이고 하니.

 

  “나 고양이 키우고 싶어!”

  “음~ 아직은 안 돼.”

 

  거절은 다정했지만 단호했다.

 

  “왜?”

  “열다섯 살 생일날에 같이 보러 가자.”

  “약속이지? 기억할 거야. 써놓을 거야!”

  “그래, 그래.”

 

  정말 고양이를 데려오게 될 줄은, 보호소에서 눈이 마주친 그 고양이와 딸이 한눈에 빠질 줄은 부모는 몰랐을 테다.

  에스텔이 기대하기 때문에 생일파티는 저녁이 아닌 아침이었다. 마침 주말이었고, 에스텔의 친구들도 몰려와서 조그만 파티가 되었다. 에스텔은 고깔모자를 쓰고 공중에서 터진 색종이 조각들을 맞으며 케이크를 잘랐다.

  케이크 시트에서는 바닐라 냄새가 났다.

 

  잠들기 전에, 에스텔은 선물로 받은 고양이 인형을 끌어안고 졸음을 참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옆에서 책을 읽어주던 아빠가 웃으며 물었다.

 

  “생일이 끝나는 게 아쉬워?”

  “당연하지. 오늘처럼 좋은 날은 없을 건데.”

 

  아이들이 으레 하곤 하는 애늙은이 같은 소리였지만 아빠는 자상하게 웃으며 아이의 코를 건드렸다.

 

  “좋은 날은 계속 올 거야. 내일도 그렇고, 내년도 그렇고.”

  “생일이 안 오게 되면?”

  “그런 날은 없어. 그리고 에스텔이 크면, 친구들도 더 많아질 거고. 고양이도 있을 거고, 훨씬 행복해질 거야.”

  “고양이 정말이야?”

  “그럼.”

 

  에스텔은 안심하며 침대에 기어들어 갔다. 창 바깥에서는 옆집 고양이 테리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에스텔은 상상했다. 언젠가 다시 봄이 오면, 아주 먼 날에는 옆에 고양이와 여러 가지 빛깔의 종잇조각, 이 층짜리 케이크, 우아하고 어른스러운 커피잔을 들고 탄산도 마음껏 마시는 그날이 오면.

  에스텔은 멋진 빨간 지붕 집에 살고 있겠지, 테리의 목걸이처럼. 그리고 그 옆에는 어쩌면 왕자님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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