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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23.06.19)

나사르 본주 2024. 8. 19. 09:46

이봐

 

 

 

우리의 눈 색이 같다는 걸 뒤늦게 안 것 같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던데 내가 애써 잊고 있었는지도, 무시하고 있었다는 게 맞는 얘기겠지. 네가 비웃는 게 눈앞에 선하다. 실제로 너는 여기에 있다. 사후 세계가 있다면 공통된 불구덩이일 거라는 빌어먹을 상상력이나 가지고 있다만 네가 거기에 없었으면 싶다. 그러니 이 일방적인 바람이 환각을 만든 것일 테다. 내게 너에 대한 어떤 의무가 있다는 망상은 진실이 아닌데, 꿈 속은 달랐다. 나는 내게 뭐라도 있기를 바랐다.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떨어질 때 넌 잠깐 시선을 비췄을 뿐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터인데, 망할 머릿속에서는 마치 위층에서 자결하는 사람처럼 정확히, 거꾸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이런 끔직스런 걸 바라는 데에는 네 최후가 지나치게 허망한 까닭도 있다. 그렇지 않은 죽음이 있겠느냐만. 따라서, 네 비난은 정당하다고도 할 수 있다. 어이. 고개 숙이지 마. 닿을 것 같잖아. 닿으면 알게 되잖아, 너 진짜가 아니라는 걸. 그래 거기서 보기만 해봐. 조금 더 말할 테니까. 우리 눈 색이 다르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흑백논리가 어리석다는 걸 말야. 세상은 스펙트럼이고 그러니까 너는 어디에선가 때로는 바로 내 침실에서 살아 있기도 한 것이다

 

 

 

있지, 사랑한다고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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