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지, 죠니? 잭이 물었다. 막 일어난 참인지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죠니는 코끝이 차가워지는 기분에 눈을 떴는데, 바로 앞에 잭이 있었다. 그는 황급하게 일어나 앉다가 겨우 정신을 추슬렀다. 잭은 막 씻고 나와 머리가 젖어 있었다. 죠니는, 무심코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왁스를 바를 때처럼. 그는 뒤늦게 흰 케이크 상자 비슷한 걸 든 잭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 그거. 어제 사놓은 스시. 맘에 들지?”
“음.”
잭은, 다시는 이 스시집에서 음식을 사지 말란 얘기 대신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그는 그저 눈을 돌려 박스에 적힌 가게 이름을 외웠다. 실수로라도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캘리포니아 롤 같은 이상한 ‘스시’가 나을 정도였다, 그 비린내란.
그는 박스를 테이블 위에 살며시 내려놓고 젖은 머리카락을 탈탈 털었다. 죠니는 잭이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어내는 걸 멍하니 보았다. 간밤에 꿈을 꿨는지 묘한 기분이었다.
시계는 막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여명이 푸르스름했다. 기분 이상할 만하군, 그는 어지러운 심사를 살피는 걸 가볍게 미루고 식탁에 가 앉았다. 잭이 냉장고에서 유리 볼을 꺼낸 뒤 다시 물었다. 이건? 죠니는 쓱 웃으며 방종한 목소리로 답했다.
“과카몰리는 몸에 좋아. 맛도 그렇지!”
“그래.”
잭은 희뿌옇게 물기 낀 볼을 꺼내 내용물을 그릇에 나누어 덜었다. 나무 숟가락이 유리그릇에 툭툭 닿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손을 보면서, 죠니는 무심코 스시 하나를 집어먹었다. 한 두어 번 정도 씹은 것 같다. 그는 먹은 것을 도로 뱉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얌전히 일어나서 토스터에 식빵 두 장을 넣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째깍째깍 소리. 잭은 프라이팬에 달걀을 깨 넣고 있었다.
기름 냄새가 났다. 죠니는 잭이 알끈이 묻은 손가락을 입술로 훑는 걸 보고는 아보카도 껍질이 쌓인 개수대로 눈을 돌렸다. 저걸 치워야겠네, 따위의 정신 사나운 생각을 하고. 때문에 둘이 식탁에 마주 앉았을 땐 부엌이 퍽 깨끗해져 있었다.
덜 마른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잭의 어깨는 약간 젖어 있었다.
“어제는 느지막이 들어왔지.” 잭이 말했다. 묻는 어투였다.
“어, 빨래 돌려놓고 잠들어버려서.”
“조심해, 죠니. 밤의 도회지는 위험하지 않나. 너는 빨래방에서 음악을 듣는 버릇이 있지. 다른 사람이 있을 때도 말이야.”
그러는 너도 새벽에 어딜 다녀오던데. 죠니는 입꼬리를 올려 흠뻑 웃으며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입에 넣고 나서야 구운 빵 위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잭은 손을 뻗어 그쪽으로 버터를 밀어주었다. 씻고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조금 축축해 보이는 손이었다. 죠니는 무심코 버터나이프를 집으려다가, 그 손을 쥐고 말았다. 둘은 동시에 의미 다른 탄식을 뱉었다. 손은 서늘했다.
죠니는, 잭이 조금 전 물잔을 만졌단 걸 기억해냈다. 잭은 손을 놓아주길 가만히 기다리는 모양이었는데, 어쩐지 심술궂은 맘이 들어 이쪽으로 당겨왔다. 식탁이 덜컹 흔들렸다. 잭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봐, 재키.”
“왜 그러지? 접시가 떨어질…”
다음 순간, 그는 입을 다물었다. 죠니가 입을 벌려 손등에 입 맞췄다. 물컹한 음식을 빨아먹듯이 노골적인 입맞춤이었다. 죠니는 시선을 들지 않았다. 어둑한 조명 아래서도 그의 귓가가 불그스름했다. 잭은 식탁 등이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죠니.”
“응.”
“괜찮은가? 걱정이 되는데. 네가 이런 짓을 하는 건, 그러니까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게 처음이지 않나 싶어서.”
“잭.”
잭은 대답하는 대신 다른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의심이나 욕정은 한치도 없는 선 굳은 표정, 죠니는 미약한 욕구가 피어나는 걸 느꼈다. 음심이라기엔 유치했고, 사랑이라기엔, 글쎄. 죠니는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불안이라 흘려넘기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움직일 용기가 들었다. 그는 잭의 손을 놓았다. 잭은 친구가 개처럼 핥아놓은 손등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죠니가 제 밑에 앉을 때까지.
잭은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는 솔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티 없는 성정답게 그대로 입을 열 제, 죠니가 정강이에 입술을 댔다. 그때껏 유카타를 느슨하게 입고 있던 잭은 옷이 벌어지는 걸 보고서 급히 넓은 어깨를 움켜잡았다.
죠니는 슬금슬금 파고들었다.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움켜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잭은 결국 숨을 터뜨리며 등을 뒤로 기댔다. 고개를 꺾어 천장을 보았고, 더는 옷을 힘주어 여미지 않았다. 그만할까, 죠니가 물었다. 잭은 대답할 수 없어 숨을 가라앉히다가 친우의 눈을 마주했다. 충직한, 검은 눈. 불그스레해진 눈시울을 본 죠니는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잭은 손목을 물었다. 간헐적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고통을 참는 것과 비슷했는데, 아플 때보다 예민하게 답해왔다. 숨을 들이켜면 목젖이 움직였고 죠니는 그런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살며시 입을 뗄 때, 그의 입술 사이로 비린 젖 같은 점액이 늘어졌다.
“죠, 니.”
“잭? 괜찮아?”
“그,”
절정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로, 잭은 금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죠니는 유순하게 뺨을 기대다가 얼굴을 훅 붉혔다. 그, 미안, 그가 말했다. 잭은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 선 가는 손목 바깥쪽에 울혈처럼 잇자국이 올라 있었다. 죠니는 입술을 핥았다.
잭은 흐트러진 자세를 추스르고 다시 바르게 앉았다. 전보다 머리카락이 말라 사그락거렸다. 죠니는 앞섶을 숨기듯 등을 돌리고 개수대에서 입을 헹궜다. 물이 빠져나가는 소리만 들리는 어슷한 침묵 속에서 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삼키지는…….”
“삼켰어, 잭.”
“그래.”
드물게 말이 끊어졌다. 숨을 가누느라 그런 걸까, 생각하던 죠니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 하며 잭이 다시 말문을 텄다.
“괜찮아. 죠니.”
“뭔…….”
“친구 사이에는… 실수를 바로잡아주는 올곧음과, 어떤 상황에서도 신의를 지키는 충직이 동반되지. 그러니 괜찮다. 누구나 한 번의 실수를 하며 살아.”
재키, 나는. 죠니는 뒤를 돌아보다가 말았다. 머릿속이 차게 바랬다.
그는 자리에 바로 앉아서, 어느새 떨어진 플라스틱 스푼을 주워들었다. 스푼을 물잔에 넣어 대충 헹구고 나서 그는 과카몰리를 퍼먹었다. 식은 토스트가 질깃했다. 그는 오래 씹었다. 밤새 숨죽은 양파가 으슥으슥하게 씹혔다. 죠니는 과카몰리에 레몬즙을 많이 넣는 습관이 있었다. 단순히 계량에 손 놓은 것뿐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혀가 굳는 신맛이 달가웠다. 그는 아침을 우물거리면서 입안에 들어찬 역한 맛을 지웠다.
눈이 시었다. 잭은 고개를 내리고 접시에 오른 삶은 달걀을 바라보았다. 그는 비린내를 맡고 있었다. 요리하며 입술로 핥아 먹은 알끈의 비린 맛, 식은 달걀의 기분 나쁜 냄새, 잘못 만진 생선회가 풍기는 악취, 같은 것. 그는 식사를 관두고 다 먹은 체 입을 닦았다. 마른 입술에 물을 축이려다가 죠니가 스푼을 휘저었단 걸 알고는 완전히, 식탁에서 손을 떼었다.
죠니는 뺨이 동그래질 정도로 음식을 잔뜩 물고 있었다. 퍽퍽한지 씹는 속도가 느릿느릿했다.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스쳐 지났다. 죠니는 입에 든 게 먹어도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한 살 내음이 났다. 그는 구역감을 참아 넘겼다. 목구멍이 홧홧했다. 몸이 다 마르는 기분.
그는 더러운 물잔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탁, 그리고 일어서는데, 이마에 뭔가가 부딪혔다. 식탁 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