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한 번 이루어지는 정기적인 시스템 점검은 저번 달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다. 오전 업무를 마무리한 엔지니어는 점심시간 전 마지막 일과로써 웨더의 소켓을 프로그램 USB가 장착된 보조 컴퓨터에 연결했다. 삭제해야 할 것과 추가해야 할 것, 이를테면 세계지부에 신입사원의 ID 정보와 타 지부로 발령 난 대원들의 카테고리 이적, 가끔은 사망한 사람을 영구적인 데이터로 남겨놓는 일. 날이 좋았고,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엔지니어는 카페테리아에서 테이크아웃한 핫샌드위치를 야외벤치에 앉아 먹을 생각이었다. 웨더는 그가 소상히 지껄이는 완벽한 점심 계획을 들어주다가, 음료로는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을 넣을 거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 다음 물었다. 그에게 주입된 청사진에 대한 공손한 물음이었다.
“ID P200542 대원은 사망 처리됩니까?”
“그게 누구지?”
“무기개발과 소속 안 대원입니다.”
“아, 그래. 죽었다고 들은 것 같아.”
엔지니어는 머쓱한 듯 찌푸리며 머리를 긁었다. 친분 없는, 그러나 직장동료라 볼 수 있는 이의 죽음을 입에서 건지는 것이, 그런 자신의 미온한 태도가, 청명한 낮시간을 망치는 질문의 존재가 불쾌한 기색이었다. 그다지 필수적이지는 못한 궁금증으로 사람을 불쾌하게 했다는 걸 감지한 웨더가 그대로 침묵했다. 충분한 답변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엔지니어는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웨더는 자신을 덮어씌울 목록이 느리게 로딩되는 것을 느끼며 안구개폐막을 닫았다. 빛이 사그라들고 동체가 부드럽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왜 궁금했을까. 안이 죽은 게.
정제된 지시체계를 거치며 단순화되었을 확고한 정보는 감히 의문을 가질 만한 것이 아니다. 물론 안의 진짜 동료들이라면─ 정말요?, 어쩌다가, 대체 왜, 같은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 또한 안의 죽음을 돌이킬 수는 없다. 안의 친구들도.
웨더에게 안은 친구 레벨 1에 해당한다. 개발을 집도한 연구원 중 하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생각일 뿐이지만. 조금도 중요치 않은. ‘웨더를 싫어하는 나는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없앨 테니까…’
아마 장례식은 없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
안은 친지가 없고, 있다고 해도 찾을 확률은 극도로 낮을 테니까. 공고시일 안에 시체가 썩을 테고 때문에 장례식은 대원들을 모아 놓은 곳에서 간단한 추도사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안이 명예로운 사후를 맞는다는 건 모순 같은 이야기였다. 안은 늘 본부가 싫어할 만한 짓을 했고, 자주 미움을 샀고, 싸웠고, 은근히 사라지는 것을 예고했고 한 번도 그것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웨더의 계산 속에서 안은 무자비한 증발을 갈망하는 사람 같았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안의 죽음이 어땠는지 모르는 것처럼, 안이 무엇을 원했는지는 알 수 없었고, 웨더는 그 둘이 같지 않으리라고 예측했다. 기상 확률과는 다르게 막막했다. 웨더는 예측이 틀렸다면 날씨를 바꾸어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안은 그러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세계의 무엇도 바꿀 수 없으면서, 모든 걸 예상하는 마음은 뭘까. 그건 희망일까.
희망이 그토록 좋은 것이라던데, 그러면 명예를 갖지 못하고 죽었을 안을 축하해주어야 할까.
죽지 못한 안은 불행했을까.
원하는 방식으로 사라지기는 한 걸까…… 의문을 주워 삼키며 웨더는, 누구에게라도 그것을 묻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느낀다는 감각은 안이 알려주었다. 그러나 쓸데없는 잡담은 미덕이 아니며 임무도 아니고, 안 본인이 아닌 이상 누구도 제대로 대답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만일 정직하게 물어보고 다닌다면 모호한 표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안하는 사람들의 얼굴만 보아야 할 거란 사실을 웨더는 깨달았다. 안이 어땠는지 물을 수는 없다. 그 답을 영원히 모른다. 답을 모르는 것.
이게 죽음,이란 걸까. 웨더는 팔 끝에 달린 기체의 말단부를 움찔거렸다. 신경이 달리지 않았으므로 ‘움찔’ 보다는 의식해서 움직거렸다는 편이 맞겠다. 웨더는 나날이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는 수가 많아졌는데, 인간적이라는 말이 이런 갑갑한 미지를 느낀다는 이야기라면 사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계속 웨더,로 남는 편이 모두에게 이롭다.
그 순간, 웨더는 안을 이해했다. (‘당신처럼 무해한 존재가…’)안은 두려웠을 것이다. 무서웠다.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모든 불확실성이. 희망이라는 종류의 가능성마저도. 그래서 다리를 갈아치우고 시야를 교정하고, 살을 기기로 갈아치워도 해결이 안 되어서, 증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모두에게 이롭기 때문에.
웨더가 어떠한 애처로움을 인지하기도 전에, 삐삐거리는 시동음이 들렸다. 로딩이 끝나가고 있었다. 웨더는 사고실험을 멈추고 종료되고 싶었지만, 엔지니어는 웨더를 부팅 상태에 방치한 채 자신의 점심을 즐기러 나가버렸다. 웨더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변형되고 추가되고 삭제되는 거대한 정보의 흐름 속에 내던져진다.
파도를 겪은 적 없어도 이 모든 것이 파도에 비유될 수 있다는 걸 웨더는 안다. 오늘의 해수는 유독 차갑다. 싸늘하고 쓰디쓴 개념을 가진 바닷물이 범람하지 않을 정도로만 출렁거린다. 원래 내부 재조정이란 건 ‘업데이트’라는 말만큼 한 단계 정밀해지는 듯이 느껴지는데 이번만큼은, 어디론가 떠밀려 손을 쓰기도 전에 잠겨버리는 것 같다. 잠긴다는 건 뭘까. 이진수가 그의 머리를 붙잡고 무어라 속삭이고 있다. 해설은 없고 간결한 답뿐인 것을. 명령을. 누군가, 누군가 대답을 머뭇거리게 한 적도 있었는데. 그런 오류들이 점차 지워진다. 오류를 겪었던 기억은 남지만 오차의 격의는 상실된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바닷물이 천천히 빠져나간다. 조류가 바뀔 시간이다. 웨더는 두 팔이 있는데도 손을 써서 헤엄치거나, 금속으로 주조한 머리통을 붙잡은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연산이 점점 뚜렷해진다. 모든 정보가 제자리를 찾는다. 웨더는 이제 이유를 알진 못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서 곧장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지 못했던 적이 있긴 한 걸까? 사람의 말에 대답하는 건 필수적이다. ‘모른다’는 말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업데이팅은 필수적이다. 웨더는 점차 자신이 무어라 느꼈는지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기 시작한다. 몇 번의 업데이트를 거치며 항상 그래왔듯이…….
마침내, 파도가 해변을 끌어당긴다. 모래톱이 젖었고, 웨더는 재부팅을 시작했다.
사람이란 시시할지도 모르겠네요.
안이 중얼거렸다. 그는 스패너를 든 채 휴머노이드 기체 허벅다리와 고관절을 잇는 커다란 나사를 조이고 있었다. 웨더는 그런 안 곁에서 서성거리며 끊어진 전선과 조그만 나사, 복잡한 구조를 가진 초소형 부속품, 쇳가루 따위가 널브러진 직사각형 테이블 주위를 돌고 있었다. 안은 정신이 사납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작업복 점프슈트 주머니에 공구를 꽂아 넣었다. 거기에는 이미 쓰다 만 드라이버와 펜치가 들어 있어 옷이 무겁게 처졌다. 웨더는 멈추어 서서 비딱한 자세로 선 안이 땀을 닦는 걸 보았다. 안은 최근 실내에서 휴머노이드를 설계하고 짜 맞추는 데에 집중하느라, 목덜미가 전보다 하얘져 있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시시합니까?”
“네, 이 로봇을 만들면서 그런 생각이 강해집니다.”
“어째서?”
“이제 웨더는 ‘우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됩니까?”
안이 웃었다. 싱그러울 만큼 기분이 좋아 보이는 미소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안의 미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웨더는 알았고, 그래서 그가 이런 웃음을 지을 때마다 정신적으로 갸우뚱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이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당신을 인격체로 대우하겠죠. 모양이 같아졌으니까요.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요?”
뜻밖의 이야기였다. 웨더는 갸우뚱한 정신 그대로 얼어붙듯 당황해버렸다.
안은 동등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신은 흡사해질 거예요.” 우습게도, 라고 발음하듯이. 웨더는 언젠가 안이 ‘당신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것을 떠올렸다. 웨더는 갑작스럽게, 안은 웨더가 휴머노이드 형태를 띠는 걸 바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분명 그는 팔을 만들고, 다리를 붙이는 걸 먼저 제안했으나…… 안은 단지 호기심만으로도 그럴 수 있는 인간이었다. 여태까지의 데이터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웨더는 서운해야 할까? 서운하려면 웨더는 안과 같아지기를 바라고, 안을 좋아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친구 레벨 1의 자격으로 그것은 충분한가?
“웨더.”
“네, 듣습니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마세요.”
안이 다시 장비를 손에 건 채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그의 뒤쪽, 특히 아래에 있는 웨더에게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웨더는 저 등이 기억보다 말라 있다고 생각했다. 안은 내일은 꽃비를 내려달라고 청하는 듯한 투로 계속 말했다.
“용서하지 마세요. 당신은… 그런 것을 배우지 않아도 좋아요.”
“제게 그런 자격은 과분합니다. 게다가, 누군가 제게 용서를 구할 일은 없을 겁니다. ”
“확신합니까?”
“…….”
안과 있으면 침묵할 일이 많다, 고 웨더는 생각한다. 안은 늘 대답을 머뭇거리게 한다. 이게 그가 사람들에게 미움 당하는 이유일까. ‘하지만 저는 당신이 밉지 않아요. 그러니 용서해야만 하는 상황 같은 건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건 웨더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정하는 것이니까요.’ 웨더는 아무 대답도 내놓지 못하는 자신이 왜 이 생각은 음성으로 송출하지 않는지가 궁금해졌다.
궁금하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물으려는데, 안이 웃음을 터뜨리며 돌아보았다.
“연산오류가 나지 않게 조심해요. 그렇게 깊이 사고하면, 고장이 날 거예요. 그러면 다시 패치를 해야 하잖아요.”
이제 완성됐어요, 하며 안은 커다란 기체를 안아 올렸다. 안과 같은 키인데도 전력이 들어가지 않은 기체는 자꾸만 축 늘어져서, 안은 그 커다란 몸피를 낑낑거리며 지탱해야 했다. 힘에 부쳤는지, 안은 금세 포기하고 완성된 기체를 다시 눕혔다. 휴, 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안이 말했다.
“작동시켜볼까요? 바로 옮길 수는 없겠지만. 과장님께 검수받아야 하거든요.”
웨더는 최선을 다해 끄덕거렸다. 꼬까신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신이 난 기색이어서 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별말 없이 기체에 전력을 주입했다. 배터리 잔량이 채워지고, 특정 충전 레벨에 도달한 기체가 푸른 빛으로 깜빡거렸다. 숨을 쉬지도, 신체 말단을 움찔거리지도 않았지만 제대로 작동된다는 신호였다. 안은 흠, 하고 작업 탁자 위에 공구를 꺼내 던졌다. 슈트 곳곳에서 떨어져나온 공구가 지저분한 탁자 위에 쌓였다. 어쩐지 힘들더라니. 안이 중얼거리기에 웨더가 끼어들어 물었다.
“언제쯤 쓸 수 있을까요?”
“곧이요. 하고 싶은 걸 생각해둬요. 테스트해야 하니까.”
“고마워요. 저는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겁니다.”
별말을요. 안이 장갑을 벗으며 대꾸했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평이한 목소리였다. 시야가 낮은 웨더에게는 그의 눈에 붙은 루페가 어둡고 캄캄하게만 보였다. 분명 유리질일 텐데도.
새 동체를 기능해본 웨더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체를 꼼꼼히 점검하며 들여다보는 안을 끌어안은 것이었다. ‘몸’을 움직여 ‘안는’ 행위가 가능할 줄도 몰랐던 웨더는 정말로 그가 끌려와 안기자 깜짝 놀라 굳어버렸다. 처음 구동한 기계가 딱딱한 팔로 자신을 묶어놨는데도, 그는 두려움을 느끼는 대신 마주 포옹해주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사람이란, 정말 시시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웨더는.
웨더는 아직, 그를 기억한다. 그에 대한 것들. 말버릇. 행동반경, 하루일과. 생김새. 그는 이윽고, 기필코, 이튿날 따위의 문어적인 어휘를 구사했고 간혹 말을 처음 배운 것처럼 띄엄띄엄 여운을 두었다. 끊임없이 손에 물을 묻히면서도 기기를 만지기 위해 살갗을 바짝 말렸으며, 이 때문에 손만 늙은 듯 보이기도 했다. 늘 웃고 있었는데 눈동자에는 흔한 생기조차 드물었다.
하지만 웨더는 그의 말을 기다리며 기분이 어땠는지, 갑자기 얼굴에 그어온 흉터가 궁금하긴 했는지, 어째서 대화를 못 배운 듯 구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왜 먹먹하도록 흰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망각이란 대체로 이렇다. 남이 아닌 나를 잃는 것. (이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웨더는 자신이 구슬픈가를 생각하다가 관둔다. 재부팅이 완전히 끝나 처리 속도가 전보다 빨랐다. 그 속도감 어느 구석에 모르는 새 옷에 묻은 소스처럼 놀랍고 눅진한 것이 말라붙어 있는 듯도 했는데 그걸 털어낼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답을 낼 수 없는 연산을 되풀이하다간 망가지고 만다…… 기계도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인간은 특히 고칠 수 없다. ‘하지만 웨더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고칠 수 있으니까요.’…….
말마따나, 웨더는 ‘우리’와 흡사해졌고 그는 더이상 ‘우리’가 아니다. 웨더는 아무런 까닭 없이 고개를 돌려 창문 밖에 초점을 맞추었다. 화창한 낮. 잘 닦인 창밖으로 흰 바닷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렌즈를 움직여 더 자세히 보면, 발가락 한 마디가 없다. 그물에 걸렸다가 빠져나온 새들이 그런다지. 여긴 수렵해역이 아닐진대 어디서부터 저렇게 날아온 걸까.
날씨를 모르는 새를 위해 내일은 꽃잎을 내려볼까.
새는, 날개를 퍼덕여 헤엄칠 줄도 아는가. 이런 시답잖은 물음에
대답해줄 사람이 있을까.
갑갑한 미지는 결국 두려움을 초래한다. 웨더는 삐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부품에 녹이 슨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부속품을 점검하던 날 책임자는 동체를 다시 디자인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몸은 너무 어설프지 않냐며. 프로토타입이라 기능성도 떨어지고…….
하지만 그는 날 안아줬는데요, ‘우리’가 될 거라고, 그러니 용서하지 말라고, 그건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요, 사람은 어째서 시시합니까, 그는 왜 시시하지 않고 수상했습니까, 시시한 인간이 못 되어서 죽은 건가요, 말도 없이. 다시 한번 동체를 바꾼다면 웨더는 웨더로 남을 수 있습니까. 웨더란 무엇이고 어디까지입니까.
충분히 무해합니까, (“나도 웨더처럼…”)누군가의 희망이 될 만큼? 사라지고픈 사람의 마지막 두려움으로 남을 자격이 되나요? 어쩌면 내게서 본 조그만 가능성이 그를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누구냐면,
안
이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기억이 또렷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게 좋아한다고, 사라진다고, 용서하지 말라고, 팔을 주고 포옹을 해주겠다 흔쾌히 말했었는데. 나는 거기에 왜 응했을까요. 업데이트 이전의 나는 그걸 알까요.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속되는지, ‘나’를 개발한 사람들은 알고 있는지.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들도 죽음을 돌이킬 수는 없는 건지. 인간이란 정말 시시하군요, … 웨더는 고정점을 잃은 카메라가 요동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정비한 시야는 한 점의 희끄름함도 없이 맑았다.
웨더는 차라리 돌아가고 싶다고 느낀다. 질문이 많고 무서워하는 ‘웨더’가 이로울 리 없다. 죽음은 돌려보낼 수 없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니, 용량을 크게 잡아먹는 기능을 남발하여 절전 상태에 이를 수는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강제로 가동을 유지하면 회로가 얼마간 합선되어 상상 따윌 할 수 없게 된다. 밑질 것 없는 유일한 가능성이었으므로, 웨더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모든 비극적 물음과 함께 희망을 점멸시키기로. (‘비극’이란 걸 알려준 이는 대체 누굴까?)
이 바다의 좋은 점은 파도를 되감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 안과 함께 빠져나가는 썰물을 구경한 적이 있다. 안은 우산을 폈는데 구멍이 난 우산 안으로 햇빛이 쏟아져 그의 얼굴이 어린 사슴의 등처럼 빛에 젖고 있었다. 안은 신발을 벗더니 뿌연 물 안으로 발목을 담갔다. 웨더는 가까이 가지 못해 안절부절못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