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끝에서 여주인공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게 단지 물을 감각하기 위한 수영인지 자살인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감독의 의도는 대다수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겠지만, 둘에게만큼은 무지하게 찝찝한 기분만을 안겨주었으므로, 앨런은 벌떡 일어나서 복도로 나갔다. 기분이 상했나. 뭐 상관없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던 신닌은 곧 문이 벌컥 열리자 어깨를 움찔하며 고개 들었다.
앨런 스타스였다.
“……뭐야? 왜 또?”
“음? 맥주 가져왔는데.”
“…왜?”
“시리즈 연달아 볼 거 아니었나?”
신닌은 기억을 더듬어… 지나가며, 이 감독 필모그래피 궁금해, 라고 얘기했던 걸 상기했다. 진짜 지나가는 얘기였는데. 그는 조금 머쓱해진 기분을 짓뭉갠 발음으로 툴툴거리며 숨겼다.
“그럼 얘기를 하던가. 가는 줄 알았지.”
“뭐, 됐어.”
앨런은 신닌에게 맥주 캔 하나를 던졌다. 용량이 앨런 것의 두 배는 되었다. 꼬마캔을 쥔 앨런은 딸랑이를 쥐기에는 지나치게 큰 소년을 연상케 했으므로, 그는 약간 웃었다.
“왜 웃냐?”
“아니 그냥. 바에 사람 많아?”
“조금. 주문이 약간 늦을 정도, 평소보다는.”
“용케 빨리 왔네.”
“새치기.”
란도 신닌은 뭘 잘못 들은 듯이 앨런을 빤히 보았다. 앨런이 뒤로 문을 닫고 소파에 털썩 앉으며 다시 말했다. 천천히. “새치기했다고.” “…답잖게,” “농담이야. 양해를 구하고 먼저 주문했지.” “놀리냐?”
앨런이 피식 웃었다. “아니.”
영화는 유독 잔잔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앨런은 관심 없는 듯하면서도 푸른색으로 가득한, 여명이 비치는 창백한 집안과 비구름이 몰려오는 칙칙한 바닷가를 비추는 화면을 줄곧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신닌은 그것을 보며 지루한 영상을 견뎠다.
사운드는 그나마 들어줄 만했다. 실은 전작부터 취향 이하인 작품의 연속이었는데 앨런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람까지 죽는데도.
아니지, 란도 신닌은 생각을 고쳐먹는다. 이 되먹지 못한 영웅 자식은 그 마지막 장면을 다르게 해석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냥 바다 수영을 하러 가는구나 여겼을 수도…… 하지만 란도 신닌이 보기에 그것은 자살이었다. 명백하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
그는 문득 이 밀실을 나간 ‘우리들’을 상상한다. 한여름 밤중에 오픈카로 한참을 달려 시끄럽고 천박한 펍에 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밤새 퍼마시고 조금도 취하지 않은 앨런에게 운전을 맡긴 후에 막 문을 연 다이닝에 가서 치즈버거와 밀크셰이크를 마실 수도. 아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죽지만 않았다면.
…같이 살아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너든 나든.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 이제 란도 신닌에게 가능성이란 한정된 자원이다. 하지만 어쨌단 말인가, 밖에서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지금이. 차라리.
앨런이 이쪽을 보고 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영화 끝났는데.”
“어, 알아.” 짐짓 졸린다는 듯한 목소리로.
“뭘 봐?”
“휴짓조각도 허락받고 보라 하겠다?”
참 나. 앨런은 별 대답 없이 다음 비디오를 넣었다. 저 지루한 영화를 곧장 보라니,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인데. 신닌도 별생각 없이 말을 꺼냈다.
“다음에 새치기 또 해.”
“그러지 뭐.”
“진담 아니지?”
“당연한 걸.”
“그리고 치즈버거 먹어.”
“뭐라고?”
같이. 치즈버거 먹자고. 콜라랑. 또 밀크셰이크랑. 앨런이 미친 사람을 가늠하듯 신닌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란도 신닌은 자신의 친우가, 죽은 사람의 눈길을 오래 버티지 않으리란 걸 안다. 이것 봐. 저렇게. 신닌은 클클 웃고서 물방울이 적잖이 흘러내리는 캔맥주를 단번에 반쯤 들이켰다. 차갑고 미약한 취기가 잠기운처럼 이마를 어루만진다.
“그래, 뭐. 할 수 있으면.”
그러니 이게 진담인지 거짓말인지도 분간 못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돌이킬 수 있는 것을 마주할까, 언젠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언젠가는 그리 길지 않을 텐데도 이런 생각을 하고 마는 건 분명히 아릿한 술기운 때문이다. 앨런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치기해서 사 오지, 치즈버거.”
둘은 잠깐 침묵했고, 곧 웃음을 터뜨렸다. 신닌은 아무 말 않았다. 악의를 가늠하기 싫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