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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ㄱ님

나사르 본주 2021. 10. 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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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정기적인 행사가 있다. 피부 빛이 유례없이 진해지는 날이 일 년에 한 번이면 꼭 오고 마는데 할로윈이 바로 그날이다. 온갖 시체가 일어서고 가난한 아이조차 침대보를 뒤집어쓰고 어른들은 카우보이나 경찰(공무원 복식을 빌리는 건 불법이다)을 흉내 내는 10월 말. 전통적인 행사조차 이 정도는 아니지만 할로윈은 상업선을 타며 무척 유명해진 덕에 10월 초입만 되어도 로어는 건강해졌다. 이번 해는 1013일이 금요일인 터라, 13일의 금요일이란 말이 일찍부터 돌면서 로어의 살갗은 하얀 분이 소복이 앉을 만큼 검은 포도처럼 짙어져 있었다.

로어는 건강한 빛깔의 입술을 슬쩍 오므리며 불만을 표했다. 애교스러운 짓이었지만 제나는 단호했다.

오늘은 길거리에 뭐가 있을지 몰라. 돌아다니려면 꼭 신발까지 신어야 해요.”

가을철이 다 되어, 호박을 굽는 냄새가 길거리에 진동할 지경이었지만 로어가 신는 건 샌들이었다. 그래서 로어는 하얀 원피스에 가죽 샌들을 신은 채 길거리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삼하인에서 튀어나왔다고 해도 믿을 모습이었다.

제나는 집에서 장난치며 노크하는 어린이들에게 사탕이니 초콜릿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로어는 자신이 전신 분장을 한 줄 아는지, 일부러 툭툭 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처음엔 성가셔 짜증 부렸지만, 나중에는 일부러 악수까지 하며 그들이 공포에 질리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꽤 써먹을 만한 모습들이 많았다. 이번 해에 개봉한 공포영화 캐릭터는 참된 비명을 사고 있었다. 로어는 활기찬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가서 그가 어린애 같은 소리를 지르며 대로 한가운데를 향해 달려가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심심해지는 것도 곧이었다. 로어가 중얼거렸다. “제나, 언제 와?” 요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늦어지는 모양이었다. 굽던 쿠키가 타버렸다거나 어린애들이 징징댄다거나…… 물론 그건 로어 입장에선 알 바 아닌 일이었지만 살림을 꾸리고 최소한 이웃과 마찰 없어야 할 제나에게는 그럴 만한 일이었다, 아쉽게도……. 로어는 나무 밑에서 고개를 들고 호박 등과 할로겐 조명 등으로 밝혀진, 더러운 길거리를 쳐다보았다. 본래 조용한 곳인데.

언젠가 제나는 돌아와야 할 망자가 될 것이다. 로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플라타너스 낙엽이 떨어지며 로어의 얼굴에 철썩 들러붙었다. 곧 형형한 눈빛이 드러나긴 했지만 어쩐지 청승맞은 꼴이었다. 광대 복장을 한 이가 이를 드러내며 얼굴을 들이밀고 도망갔다.

로어의 안색이 희미하게 밝아졌다가 돌아왔다. 멀리서 누군가 이 난리통을 비집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게 누군지 로어는 알고 있었다. 그는 총총 달려서 애 하나를 넘어뜨리고 등 뒤에서 들리는 항의를 무시했다. 어쩌란 말인가?

무시무시한 불멸의 존재에게조차 시간은 공평하고, 그래서 그때까지 로어는 모두를 등한시할 수 있었다. 저 사람만 있다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취급을 견딜 수도 있었다. , 괜찮은 일이었다. “로어!”

제나가 저기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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